<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비 내리는 내장사

구름이 용틀임을 하며 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다. 자연의 오묘함에 새삼 감동하게 된다. 사람이 제 아무리 잘났다고 우쭐대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모습이다. 곱게 물들어가는 풍광에다, 구름이 용의 얼굴을 한 채 승천하고 있으니 웅장하기까지 하다. 산의 어디를 보아도 다르게 느껴진다. 봉우리의 특징에 따라 구름의 모습도 달라진다. 변화무쌍한 모습이 더욱 더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



집을 나설 때는 다소 망설였다. 가을비가 나서는 걸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출발했다. 비가 내리니 내장사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을 내장사, 평상시엔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단풍 구경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가는 내내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비속을 뚫고 내장사로 향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자동차가 물결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단풍 구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자동차가 경내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내장사를 굽어 돌아가는 우회도로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내장사는 이미 한창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고운지 넋이 나갈 정도다.

경내로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곳곳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색다른 풍경이 위안이 돼준다. 구름이 덮인 풍경은 덤이다.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올라가는 용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나 또한 신선이 된 기분이다.



내장사는 단풍의 명승지다. 비가 내리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비라도 내리지 않았다면?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비가 내리는데도 이렇듯 환상적인데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여지는 가을 내장사에 마음을 모두 다 빼앗겼다. 나 또한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여지고 만다. 물들여진 마음으로 가을을 본다. 내가 가을에 물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가을이 나에게 물들여진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비 내리는 가을 내장사의 운치가 또 다른 감동을 한껏 선사한다.



자연과 나는 하나가 된다.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하였다. 바라보는 모든 세상이 가을 색이다. 모든 것이 곱게 빛난다. 어디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아직 물들지 않은 초록의 이파리들까지도 빛난다. 단풍 든 다른 이파리들과 함께 어우러지니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단풍이 고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 그 것은 희망으로 빛나는 내일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왕성한 지난여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내일을 기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짐으로서 희망을 잉태할 수 있다. 겨울을 잘 보내야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마무리 과정의 마지막 화려한 모습이 바로 단풍이다. 그 빛깔이 진하면 진할수록 더욱 더 가슴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불타오르고 나서 미련 없이 마무리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본디의 뿌리까지 활활 태워버림으로서 모든 것을 갈무리한다. 남김없이 갈무리함으로서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비 내리는 내장사의 풍광에 푹 젖었다. 자연은 언제나 의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장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쉽기는 하였지만, 우회도로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곱게 물들여지고 있는 내장사의 절경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보여주는 가을 내장사처럼 살고 싶다.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올 가을의 단풍은 색깔이 너무 곱다. 특히 내장사의 단풍은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가을 내장사의 절경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도심 가로수의 가을 빛깔

어쩌면 저리도 고울까? 도로가에 심어진 가로수가 가을 빛깔로 곱게 물들여졌다. 어떤 나무는 연 노란색으로 빛나고, 어떤 나무는 붉은 빛깔로 반짝인다. 가로수는 모두 느티나무다. 같은 느티나무면서도 어쩌면 저리도 다르게 물이 들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가을 빛깔로 물들여져 있는 가로수의 빛깔에 감동하게 된다. 가을은 정녕 나무 이파리에서부터 오는가 보다. 여름 내내 뜨거운 햇살로 달구어져 있다가 가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 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가을에 취하니, 나 또한 가을 빛깔로 물들여진다. 도심 가로수의 가을 빛깔에 마음을 모두 빼앗겨버렸다. 집을 나설 때에는 망설였다. 밀리는 자동차의 물결도 싫고 배기가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도 싫었다. 그래서 도심 나들이를 삼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가을 빛깔로 물들여져 있는 가로수를 보고 나니, 나서기를 아주 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만 있었다면 도심의 가을을 보지 못하였을 것 아닌가? 순색으로 물들여진 도심 가로수의 고운 유혹에 깊이 빠졌다.



가로수의 가을빛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언제였던가?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어리광을 피웠던 일들이 전설처럼 주저리주저리 이끌려 나온다. 사는 것이 바빠 어머니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잊고 있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으면서도 뻔뻔하게 잊어버린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가로수의 가을빛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절실해지는 어머니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감미롭다. 어머니의 사랑 넘치는 목소리가 들리고, 평생을 하루같이 자식만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진다.

가을 빛깔은 평화로운 힘이다. 격정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격정의 근원인 욕심과 이기심을 털어버리게 한다. 모두 다 벗어버리고 가을빛에 젖어드니,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하늘을 붕붕 떠올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가을 하늘을 마음껏 비행할 수 있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도심 가로수의 빛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곱게 물들여진 가로수를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무작정 그렇게 걸어가노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날 것만 같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걸망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걸어가다 그리운 사람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필요 없다. 서로 마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손잡고 함께 걸어가면 되는 일이다. 그 것으로 족하다. 이 좋은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야! 좋다. 정말 좋은 가을이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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