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애현/ 은행나무

 ‘과테말라의 염소들’은 시종일관 담담하다.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주변의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매몰찬 듯 하지만 정이 넘친다. 운율이 넘치는 문장에선 큰일을 소소하게, 격정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노련한 필력이 돋보인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생명의 원천인 ‘젖’에 대한 기묘하고 재기 발랄한 은유. 이렇듯 제각각인가 싶던 ‘호세’와 ‘나’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이야기는 마침내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낸다.
과테말라에서 다섯 마리의 염소를 키우며 염소젖을 파는 이 호세와 대한민국에 사는 이십 대 여성인 ‘나’와의 공통점은 전혀 찾을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점점 여기저기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조각들이 모이더니 급기야 내가 호세인지 호세가 나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 둘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애증과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염소와 나의 친구들에 대한 질투가 그것이다. 이 기막힌 우연에의 해석은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듯 보였던 지구 반대편의 이십 대는 사실, 작가의 치밀한 의도 하에 만들어진 필연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아플 수도 있는 하나의 이야기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는다. 현실에서 도망치고만 싶은 이십 대의 솔직한 고민,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88만원 세대의 불안한 일상을 담은 이 책은 사랑하는 가족이 겪는 아픔에 대해 독자들의 감정을 이입시켜 마치 소설 속의 인물들이 나인 것 같은 동일시의 감정을 끌어낸다. 이와 함께 다양한 인물의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김애현 작가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캐릭터들은 제각기 살아 움직이며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고, 슬픔 언저리에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288면/ 12000원  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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