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네 번째 이야기-황금 똥

갑자기 왜 얘기가 삼천리로 빠졌냐구?? 바로 막걸리 때문이다. 화자는 전언했듯 막걸리를 좋아한다. 어릴 때의 이런 기억이 강하게 작용한 탓일 게다. 술과의 첫 인연을 맺게 해준 막걸리이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외에도 이유는 많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사실 막걸리의 존재를 잊었었다. 막걸리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화자의 기억엔 대신 동동주가 자리하고 있다. 민속주점이었다. 좌석 둘레에 쳐져 있는 칸막이. 그 위 짚으로 엮은 조그마한 초가지붕 위엔 자라지 않는 포도 넝쿨이 매달려 있다. 아는 형들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민속주점에서 화자는 항상 동동주를 마셨다. 안주는 두부와 김치가 대부분이었다. 술이 얼큰해지면 주점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기타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친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항상 동동주를 즐겼다. 슈퍼마켓에서 때론 생라면에, 때론 삶은 계란 한 두 개에, 때론 달랑 김치 한가지에 마셔대기도 했고, 민속주점에서 두꺼운 통나무 탁자를 젓가락으로 두들겨 맞춰지는 장단에 `고향 살리라`를 부르며 들이붓기도 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는 이와관련 더욱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 준 계기였다. 그 찬바람 몰아치는 철원땅. 최전방 부대다 보니 `작업`이 잦았다. 동계진지작업, 추계진지작업, 춘계진지작업…. 오죽하면 `삽사단`이라고 자평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렇게 많은 작업도 그저 반갑기만 했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그놈의 막걸리 때문이다.
철원에서 약 한시간 남짓 남쪽으로 내려오면 나오는 포천. 그 포천이 무엇으로 유명한지는 다 아실 것이다. 바로 그놈의 막걸리다. 포천에서 나오는 막걸리는 당시 두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이동막걸리고 다른 하나는 일동막걸리다. 맛 차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둘 다 환상이었을 뿐.
진지작업을 하는 중간 누군가에 의해 `추진`돼 오는 이동 혹은 일동 막걸리. 반합 뚜껑에 따라지는 노오란 그것은 액체라기 보다는 진득진득한 젤에 가까웠다. 입에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에 저절로 고개가 휘둘려진다. 목 안에 감기는 그 황홀한 느낌. 아…세상에 이런 막걸리가 있을 수 있다니…. 일년 내내 이어지는 삽질도, 곡괭이질도, 진지보수작업도, 삽사단도 모두가 좋았다. 그 막걸리만 마실 수 있다면….
군대를 제대하고 한참이 지난 후 서울에서 그 막걸리를 만났다. 포천 막걸리가 서울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난 이후였을 게다. 목이 메였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그 환상의 맛을 서울에서 얼마든지 만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목이 메였다. 그 옛날 그 환상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실망감에…. 그랬다. 세상은 달라져 있었고, 나의 입맛도, 또 그 포천막걸리 맛도 달라져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주로 마셔대던 소주와 맥주, 그리고 양주에서 벗어나 다시 막걸리를 찾게 된 건 등산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실 평소에는 소주만 마시던 사람들도 등산을 하면 자연스레 막걸리가 당긴다. 출출함 때문이다. 갈증 때문이다. 이미 막걸리 맛에 길들여져 있는 화자의 경우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터. 그래서 마셨다. 그리고 포천막걸리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또 하나의 경이가 탄생해 있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서울막걸리다. 서울장수막걸리다. 마시면 오랫동안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그 막걸리…. 다른 술들과는 달리 절대 광고를 하지 않는 그 막걸리…. 광고라고 해봤자 탤런트 윤문식 사진이 실린 채 슈퍼마켓 유리문에 달랑 붙어 있는 전단지가 전부인 그 막걸리…. 오히려 지나친 묘사로 이 기사 같지 않은 기사가 노골적으로 광고를 해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그 막걸리…. 쌀이 90% 들어가 있다는 그 막걸리…. 마신 다음날 아침이면 황금색 똥이 길다란 모양으로 기분 좋게 변기 속에 드러누워 있는 모양을 보며 미소짓게 해주는 그 막걸리….
왜 숭인동 길 레스토랑 얘기를 하다가 막걸리 타령만 온통 들쑤셔 놓느냐고?? 음…그건 아쉽게도 숭인동 길 레스토랑엔 그 막걸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어느 곳엘 가나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파는 집은 드물다. 그건 아마 막걸리의 속성 때문일 게다. 쉬 변해버리는….
처음 길 레스토랑에 갔을 때 익산떡은 그랬다. "막걸리 없어!!" 하지만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막걸리야 사다 주면 될 거 아니여!!" 그래서 안심하고 들어섰다.
"얼마씩 하는 거에요?"
막걸리 값 물어봤다고 쪼잔한 놈이라고 하지 말라. 사실 소주 값이야 대부분 정해져 있다. 3000원. 그런데 요놈의 막걸리, 그것도 서울 막걸리는 아니올시다이다. 가는 곳마다 천지차이다. 서울 시내 등 웬만한 막걸리 집들은 소주값과 같은 3000원을 받는다. 하지만 조금만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보면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2500원을 받는 곳도 있고 2000원을 받는 곳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1000원이면 결코 무시 못할 액수다. 게다가 필자 같이 막걸리를 말통으로 갖다 놔도 싫다 하지 않을 사람들한텐 특히 더 그렇다. 만약 5통의 막걸리를 마신다면 벌써 5000원이 차이 나는 셈이니….
그래서 물은 것이다. 익산떡 "2만원이여!!"(2000원을 그리 부르는 것이다. 때론 20만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다. 안주는? "전부 8000원씩이여!!"
8000원에 둘이서 막걸리 4통(1인당 2통씩)이면 8000+(2000×4=)8000=1만6000. 먹을 만하다. 행여 주머니가 비어 동행에게 의지해도 크게 미안하지 않은 가격이다.
익산떡은 필자와 동행인의 첫 방문(그땐 5-6통은 마신 것 같다) 이후엔 꼭 슈퍼마켓에서 3통씩의 막걸리를 사온다. 동행이 한 명일 경우 1인당 한병 반씩 마시는 셈이니 딱 좋은 양이다. 몸에도 무리가 가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의 황금색 유희도 여전히 즐길 수 있다.
다음호 계속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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