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행님요, 우애 그리 빠릉기요. 내사 마 힘 들어죽겠는데…”
“서울 행님요, 우애 그리 빠릉기요. 내사 마 힘 들어죽겠는데…”
  • 승인 2010.12.10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광훈 기자의 부산 나들이> 승학산-구덕산-시약산 편 1회

서울발 부산행 KTX는 평일 이른 아침임에도 제법 붐빈다. 부산에서 지인과 합류하여 억새로 유명한 당리의 ‘승학산’과 인근 구덕산, 시약산을 차례로 둘러볼 요량이다. 창가에 기대고 눈을 감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등산가면서 KTX씩이나 이용하면 뭐, 남는 게 있남. 학창시절 무전여행 떠났던 일을 떠올리니 격세지감이다.



오전 7시30분. 서서히 움직이던 열차가 탄력을 받나 싶더니 총알처럼 승강장을 빠져나간다. 순식간에 한강철교, 노량진, 영등포, 구로, 안양, 수원을 저 멀리 보내버린다. 스쳐가는 차창 밖에는 울창한 숲들이 연신 시야에서 사라진다.
문득, 이런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 섬뜩함이 느껴진다. 좀 천천히 가도 되는데 시간 너무 빨리 쥑인다. 이래서 무궁화열차를 타고 여유롭게 가고 싶었는데. 부산 지인, 일찍 내려와야 일정이 맞다나 어쩐다나.  



앞좌석의 아가씨 세 명, 먹을거리 잔뜩 쌓아 놓고 신나게 떠들어댄다.
“오빠, 나 KTX 탔거든. 부산 도착하면 전화할게 맛있는 것 많이 사줘, 응? 오빠.”
‘아유, 부산 도착하기 전에 맛있는 것 몽땅 사 줘 버려. 시끄러워 죽겠네.’
아가씨들 분위기를 보니 오늘 차분하게 가기는 날 샜다. 하기야 출장이든, 여행이든 집 나선다는 건 항상 마음 설레는 일이지. 실컷 떠들어라.
조간신문 대충 훑어보는 동안에 대전, 동대구를 거친 열차는 전국에서 소득이 제일 높다는 울산에 멈춰 선다. 안내방송 흘러나온다. “양산 통도사 가실 분은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이제 20여 분 후면 부산 도착이다.


# 부산역

울산역을 빠져 나온 열차는 전국에서 제일 길다는 금정터널(20.2㎞)로 들어선다. 여러 개의 터널이 이어지면서 17분여를 터널 속에서 달린다.
주변 볼 것도 없이 볼 장 다 봤다. 어둠을 헤쳐 나오니 초량의 부산역 도착이다. 총 2시간30분이 소요된 오전 10시.
이곳 부산도 날씨가 쌀쌀하다. 올 들어 찾아온 첫추위란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부산역 앞 광장에는 눈에 익은 ‘아리랑호텔’과 옆에 새로 지은 ‘도쿄인 호텔’이 서 있다. 길 건너 ‘뉴포트호텔’은 낡은 채 그냥 버티고 있고.
부산역에서 하단방향 지하철 1호선을 타기위해 승차권을 구입하려니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1200원인데 동전교환도 어렵고.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안내원에게 다가간다. “서울서 사용하는 신용카드로 이용 가능합니까?”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카드 일단 들이댄다. 휴∼ 통과다. 
하단역 1번 출구를 나오니 지인과 몇 사람의 일행들이 기자를 맞이한다. 지인의 소개로 간단히 인사 나눈다.



동아대학교 ‘하단캠퍼스’ 안으로 들어선다. 옛날 대신동캠퍼스는 눈에 익은데, 이곳은 처음이라 낯설다. 교내 학군단 건물 뒤 나무계단을 기점으로 가파른 등산로 이어진다. 소나무가 울창하여 주변은 그런대로 여느 등산로와 비슷한 모양새다.
철쭉군락지를 지나서도 오르막은 계속된다. 일찍이 추위는 싹 달아나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물로 적시나, 땀으로 적시나….


# 하단 가는길

일행들, 저 아래 처져서 헐떡인다. ‘나 잘났다고 너무 앞서가도 눈치 받겠지.’
“서울 행님요, 우애 그리 빠릉기요. 내사 마, 힘 들어죽겠는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제 마신 술 깨려고 일부러 땀 좀 흘렸습니다.” “그래도 그렇치애, 그리 내빼모, 우리 촌놈들 기 다 죽습니대이.”
통쾌하게 한바탕 웃어 제친다. 이마의 땀 훔치며 마시는 물맛이 꿀맛이다. 비로소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창 공사 중인 ‘부산 신항’,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였던 ‘을숙도’, 새로 지은 듯한 ‘을숙대교’, 대교 끝자락에 르노삼성자동차공장이 있고, 우측으로 부산의 관문 ‘김해공항’과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때 지역구로 삼았던 사상의 ‘사상주물공단’이 보인다.


# 임도사거리

예전의 김해평야는 유통산업단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번잡한 모양새다. 졸부깨나 생겼겠다.
정상 가는 길옆에 5월에 핀다는 ‘패랭이꽃’이, 계절을 잊은 채 피어있다. 모두들 신기한 듯 다가가 카메라에 담느라 한바탕 소란이다.
한 땀을 더 흘리고 나니 승학산 정상(496?)이다. 인터넷에는 정상 인근이 ‘신선봉’으로 표기돼 있는데, 이곳 현지인들은 오히려 신선봉은 처음 들어본단다. ‘신선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처음 들어보니까 신선한 거지.’ 
정상 바로 옆에 돌이 수북이 쌓인 봉우리가 하나 있다. 시민들이 승학산 정상 높이를 4m더 올려서 500m를 만들려고 인위적으로 만든 거란다.


# 승학산 정상 가는 팻말


# 승학산 정상

“쯧쯧쯧, 차라리 을숙도 강바닥을 파서 산을 더 높이던가, 아니면 아주 이참에 정상에서 4대강 사업을 하든지.”
승학산(乘鶴山)은 부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산으로, 구덕산과 시약산의 서쪽이며 엄광산의 남쪽으로 사하구 당리동의 뒷산이다. 흔히 동아대 뒷산으로 불린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산세를 살폈는데 이곳에 오니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승학산은 억새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나 있다. 억새군락은 승학산 동쪽 제석골 안부에 있는데, 수만평에 이르는 부산 제1의 억새밭이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대장관은 전국의 어느 억새명산 못지않다.


# 승학산 정상의 억새

을숙도의 반대편인 동쪽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6·25피란시절 그 유명한 영도다리 옆에 새로 세운 ‘영도대교’ 위를 차량들이 여유롭게 다닌다. 주전자바위, 자살바위로 친숙한 영도 ‘태종대’, 해운대 ‘장산’과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인 ‘오륙도’도 보인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제24호로 지정된 오륙도는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영도구(影島區)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 솔섬(5505㎡)· 수리섬(5313㎡)· 송곳섬(2073㎡)· 굴섬(9716㎡)· 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 승학산 정상

오륙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방패섬과 솔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섬은 아랫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우삭도라고 하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수의 차이에 따라 섬이 5개 또는 6개로 보이기 때문에 오륙도라고 하게 된 것이다. 송곳섬은 작고 모양이 뾰족하며, 굴섬은 가장 크고 커다란 굴이 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정상에서 20여 분 내려가니 광활하게 뻗어있는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다. 억새풀 사이에 푸른 소나무 한그루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명당이다. 돗자리 편다.


# 멀리 부산 앞바다가 보인다.

부산의 명주 생탁(막걸리)에 여러 가지 반찬들이 곁들여 진다. 부산이라고 ‘위하여’가 없을 순 없지. 일동 잔들 가득 채운다. 북한산에서 부어 마시던 찌그러진 알루미늄 잔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변사또(변치 말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동감이요∼.”
단숨에 넘어간다. 연거푸 석잔. 보기 귀하다는 용담꽃이 옆에서 취기어린 눈으로 일행을 바라본다. 막걸리는 우리가 마시고 취하기는 용담이 대신하고.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