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부산 나들이> 승학산-구덕산-시약산 편 2회

서울발 부산행 KTX는 이른 아침 평일임에도 제법 붐빈다. 부산에서 지인과 합류하여 억새로 유명한 당리의 ‘승학산’과 인근 구덕산, 시약산을 차례로 둘러볼 요량이다. 창가에 기대고 눈을 감으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등산가면서 KTX씩이나 이용하면 뭐, 남는 게 있남. 학창시절 무전여행 떠났던 일을 떠올리니 격세지감이다. 지난 호 승학산에 이어 부산 나들이길 두 번째 구덕산과 시약산, 그리고 거나하게 이어진 뒤풀이 이야기다.


# 구덕산

억새지대를 계속 지나간다. 잠시 후 모처럼 내리막길이다. 넓은 터에 내려서니 임도(임업관리도로) 4거리다. 좌우측 길은 하산하는 길이고, 구덕산은 직진하면 된다.
간이화장실도 있고, 양동이에 가득한 막걸리를 주전자로 파는 아주머니도 있다. 일행, 벤치에서 5분간 휴식 후 구덕산을 향한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비좁은 억새 숲길을 오른다.
기분 좋아 퍼마신 막걸리가 고통으로 돌아온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억새풀은 얼굴을 간지럽게 하고.



가뿐 숨 몰아쉬며 위로위로 전진 또 전진. 드디어 구덕산 정상. 배의 모든 항로를 관찰한다는 ‘부산항공무선표지소’가 장엄하게 설치돼 있다. 금정산 고담봉에서 시작되는 ‘낙동정맥’은 백양산, 엄광산, 구덕령 그리고 이곳 구덕산을 지나 천마산을 경유, 다대포 몰운대서 끝이 난다.


# 구덕산 정상에서 한 컷

엄광산과 수정산, 구덕경기장 멀리 해운대 장산이 눈에 들어온다. 용두산공원 뒤로 영도대교가 보이고, 초록빛 바다위로 배들이 한가롭게 오간다.
구덕산 정상에서 옆으로 틀어 내려서면 시약산 정상은 자연스레 이어지며,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정상에는 부산지방기상청이 있다.



일행들, 다시 임도 4거리로 내려와서 선 채 막걸리를 딱 한 잔씩만 들이킨다. 지금 많이 마시면 나중에 싱싱한 생선회, 배불러서 어떻게 먹어….


# 임도사거리

하산 길은 구덕산의 유명한 ‘대신동 꽃동네’로 잡는다. 야외분수대를 배경으로 ‘목석원예관’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금송화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돌에 나무를 접목시킨 희귀한 모양의 분재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수구초심, 추풍낙엽, 낙화유수, 광풍제월, 교칠지심….
꽃들도 다양하다. 식창포, 엽란, 귀갑석, 마삭줄, 팔손이, 수호초, 자금우, 털머위….


# 자갈치 시장앞 바다

드디어 오늘의 화려한 뒤풀이길이 이어진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은 변함없이 활기가 넘쳐난다. 대신동 꽃동네에서 택시로 이동한 일행들은 한 지인의 단골집인 자갈치 ‘거제횟집(신순옥. 중구 남포동 4가 26-8. 051-245-5564)’의 2층 방에 둘러앉는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면 정박한 어선들이 이리저리 출렁이고, 푸른 바다 물살을 가르면서 배들이 지나간다. 잠시 후, 각종 회와 서비스 안주들이 술상을 가득 채운다. 감성돔과 광어, 가오리찜, 감자 찜, 밤, 낙지, 개불, 멍게, 해삼, 오징어 물회, 파래, 시원한 물김치 등 보기만 해도 군침 넘어 가는 것들이다.
술은 전라도의 향토기업인 무학주조에서 생산되는 ‘조은데이’ 소주에 맥주를 타 마시는 이른바 ‘소맥’이다. 조은데이 소주는 16.9%의 낮은 도수 덕에 지역 향토 주를 제치고 부산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술로 군림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거의 모든 시민들이 ‘롯데 자이언트’를 신들린 듯 연호하지만 소주만은 아니올시다.
회를 워낙 좋아하는 기자인지라 잔 부딪히는 ‘위하여’도 시간 낭비다. 물 마시 듯, 개걸스럽게 부어 넣는다. 술은 횟감을 먹기 위한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다. 한잔, 또 한 움큼. 한잔, 또 한 입. 잘 도 잘도 넘어간다. 순식간에 조은데이 빈병은 쌓여 가고, 회를 담은 접시는 바닥을 드러낸다. 



기자와 지인, 단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자갈치의 밤바다를 거닌다. 오늘 만난 일행들과는 거제횟집을 나서면서 작별을 고했다. 새로 지은 ‘신동아시장’ 건물 1층의 ‘김해상회(윤정자.  051-248-9822. 016-831-9822)’. 지인의 오랜 단골집이다. 기자도 예전에 지인과 몇 번 왔었고, 서울서도 택배를 이용하여 회를 자주 공수해 먹었던 곳이다(10만 원 정도면 5∼6인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쥔장, 반갑게 맞아준다.
“아이고, 엄마야∼이게 누궁기요? 서울 오빠야 아이가….”
반가움에 손을 잡고 팔딱팔딱 뛴다.
“잘 지냈소. 사업은 잘 되시고요?”
“요새 뭐 되는 기 있능기요. 그럭저럭 버티는 기지 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전복 한 접시. 여기서도 조은데이가 대세다. 주변의 손님들 모두가 조은데이다. ‘그래 좋은 날, 조은 술 마셔야재.’
지인과 기자, 이런저런 세상사 나누면서 권 커니 잔 커니…창 밖 자갈치의 밤바다는 깊어만 가고.


# 시약산

다음 약속장소로 가기위해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의 소음도 자갈치시장 만큼이나 장난 아니다. 취기가 오른 여러 명의 무리들이 제각기 떠들고 난리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톤마저 높으니. 그래도 도로가 밀리는 밤 시간대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약속 지키기에 가장 낫다.
아침에 들렀던 당리역 인근의 어느 2층 호프집. 지역에서 주민과 시민단체를 위해 헌신하는 지역유지, 먼저 와 자리하고 있다. 오래 전 서울에서 본 적이 있는 지인이다. 반갑게 인사 나눈다.
5000cc 생맥주통에 흑맥주를 섞어 마시는 게 이 집의 전통이란다. 그동안 못 다 푼 회포를 잔에 담아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커∼시원하다.
그나저나 회포도 좋고 회 뜬 포도 좋지만, 도대체가 몇 차 째인지 가물가물하다. 등산인지, 주(酒)산인지.


# 목석원예관

지역유지 돌려보내고 향토음식 ‘재첩국’으로 속풀이 나서는 지인과 기자. 택시가 멈춘 곳은 인근의 ‘하동·섬진강 재첩(사하구 하단동 604-16. 051-208-7388)’집이다. 언제 맛 봤는지 기억조차 흐릿한 재첩국이다. 어릴 적 아주머니들이 동트기 전, 물동이에 재첩국을 담아 머리에 이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외쳐댄다.
“재치국 사이소, 재치국∼재치국 사이소, 재치국.”


# 감천항

재첩이 재치로 변해서 재치 있게 들린다. 재첩국과 재첩회에 밥 비비고, 그리고 다시 조은데이. ‘날 쥑이 주이소, 쥑이 주이소.’  지인, 아예 기자를 쥑이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이제는 슬슬 술이 사람을 쥑여온다. 숙소에 몸을 눕히면서 지긋지긋한 술자리는 달아난다. 사람 얼 반 쥑이놓고….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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