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금강하구둑에서

암에 걸린 친구와 철새들 

오랜 지기가 아프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녀석은 걱정할까봐 알리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녀석의 소식을 접하고는 황당하였다. 대장암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큰 수술을 하고도 환하게 웃는 녀석의 얼굴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아파봐서 안다. 웃음 속에 배어 있는 녀석의 아픔을 헤아려본다. 그 웃음에는 많은 감정들이 배어 있을 것이리라.



소식을 듣고 많이 걱정하였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생활이 있었기에 일요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 것들 하나하나가 구속의 끈이다. 그런 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고 싶지만, 언제나 마음일 뿐이다. 구속의 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이 처연할 뿐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이순을 바라보게 되니, 작은 일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오랜 지기가 아프다고 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더군다나 다른 병도 아니고 암이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으로 고통 받을 것을 생각하니, 난감할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더욱 더 답답하다. 병이 들게 되면 결국 그렇게 죽을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두려움이 커진다.

환하게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우선 마음이 놓인다. 핼쑥해진 얼굴이 마음을 아프게 하였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 겪었을 녀석의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약한 것이 사람이라 하였던가? 혈기와 열정이 넘치던 때에는 생각하지도 않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무기력하게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특히 병마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녀석이 감수해야 하였던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낸 녀석이 자랑스럽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 녀석이 믿음직스럽다.



때론 잠시 멈추어 쉼표를 찍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돌아보고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녀석을 데리고 금강하구둑을 찾았다. 철새들의 훨훨 자유롭게 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탁 트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새처럼 날아가면 그만인 것이 인생이다. 주어진 모습 탓하지 말고 그냥 맡기고 세월에 실려 밀려가는 것도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녀석을 보고 새를 본다. 대형을 이룬 채 창공을 훨훨 날아가고 있는 새가 존귀한 만큼 녀석도 존귀한 존재다.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이는 모두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 지녀야 할 덕을 생각을 해본다. 우선 독특한 향을 가져야 할 것이고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녀석은 원래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더 인간미 넘치는 향이 그득할 것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해본다. 사랑이 넘치면 선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될 테니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며 기원한다. 시련은 극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였던가? 녀석이 병마를 당당하게 물리치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녀석이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여유롭고 당당하게 철새처럼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갈대와 행복

갈대들의 키가 크다. 보통 시내에서 자라는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자랐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넘어질 듯, 하다가도 넘어지지 않는다. 탄성력에 놀란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큰 키에도 끄떡없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부드러운 갈대의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갈대숲이 무성한 제방 근처에는 철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앙증맞다.



금강하구둑 위로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어 소란스럽다. 잠시라도 조용할 틈이 없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으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새들은 아무런 불편도 없이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새들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불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둑을 쌓은 돌 위에서도 즐겁고, 물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갈대도 방해되지 않는다.

새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생각해본다. 새들은 저 멀리 북쪽에서 내려온 겨울 철새들이다. 추운 겨울을 이곳에서 안전하게 보내고 내년 봄이면 다시 북쪽으로 날아갈 것이다. 겨울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면, 절대로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아늑하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았을 터이다.

새들의 모습이 사뭇 행복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들은 우선 파헤치기부터 한다. 살아가기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자연을 마구 훼손한다. 자연이 아파할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이 파괴되던 말든 연연하지 않는다. 우선 인간이 살아가는데 적당하기만 하면 된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우선 당장만 생각한다. 그렇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자연을 파괴해왔던가? 자연에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부수고 바꾸려고만 하였기에 사람은 점점 더 외로워졌다. 행복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되었다.



새들은 어떠한가? 새들은 자신들을 위해 주변환경을 바꾸지 않는다. 자연을 부수지 않는다. 이용할 뿐이다.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안에 적응한다. 갈대 역시 이용할 뿐이다. 둑의 돌들도 마찬가지다. 조금도 인위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들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철새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으로의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행복이란 나를 맞추는 것이다. 나의 안일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주변의 것들을 자꾸 바꾸려고 하면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에 나 자신을 맞추어가는 것이 행복의 열쇠다. 새들이 행복한 것은 분명하다. 주변 자연에 적응하면서 그저 이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상황에 나 자신을 맞추다보면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행복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새처럼 살아서 행복해지고 싶다.




화석이 되는 꽃

가을꽃들은 가는 가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피어난 모습 그대로 말라가고 있다. 하려하였던 가을날을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선명하게 꽃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애절하기도 하다. 가는 가을을 보내지 못하는 것도 그러하고, 다가오는 겨울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화석화되어지는 꽃들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실감한다.



저 꽃들을 보면서 내 삶을 반추해본다. 세월이란 보내고 싶다고 해서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빨리 지나가기에 보낸 것뿐이다. 내 의지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세월은 가버렸다는 점이다. 세월은 분명히 그렇게 지나갔고, 흘러간 시간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야속한 마음이 앞서기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둘째딸이 대학을 졸업한지 2년이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빈둥빈둥 놀고만 있다. 그 것을 지켜보는 아비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능력 범위 내에서 직장을 알선해주면 시시하다고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옳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다. 딸은 무사태평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라는 점이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거니?” 답답한 마음에 물으면 묵묵부답이다. 대답을 하지 않는 딸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다그칠 수도 없다. 다 큰 딸자식에게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뿐이다. 아제는 다 큰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 대접을 해달라는 요구에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다. 그 말이 분명 맞기는 한데, 인정할 수가 없다.



“때가 되면….” 아이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 말조차도 아이의 바람일 뿐이다. 녀석은 아빠의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마음대로다. 제 마음에 들면 헤헤거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항한다. 그런 딸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자기 하는 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무런 대책을 찾지 못한 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가을꽃이 화석이 되고 있다. 꽃이 아이의 얼굴과 겹쳐진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이고 해결해야만 할 발등의 불이다. 지난 가을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는 꽃이 딸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답답한 심정만이 앞선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녀석이 뭔가를 추구하기 위하여 행동으로 옮겨주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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