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눈 내린 새해에

눈 위를 걸으며

고창의 선운사를 찾았다. 새해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다. 전라북도엔 대설주의보가 내려졌고 실제로 많은 눈이 내렸다. 그 중에서도 고창은 대한민국에서 눈이 제일 많이 내렸다. 40Cm가 넘는 양의 눈이 내렸다는 보도에 가보고 싶었다. 정읍에 들어서니, 눈이 많이 내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로는 제설작업이 된 상태다. 고창에 들어서니, 상황이 달라졌다. 나무들은 눈을 고스란히 머리에 이고 있었고, 도로도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 않았다.

눈 덮인 선운사의 천연기념물인 송악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한 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은 채 빛나는 모습이 새해를 축복해주는 듯하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얀 눈 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는 모습이 마음에 박힌다. 새해의 새로움을 송악을 통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송악의 초록은 새해의 무궁한 기쁨을 암시한다. 신묘년에는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선운사를 찾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쌓인 눈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눈은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내일로 향한 열정으로 산사를 찾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힘을 본다. 역동적인 힘을 본다. 신묘년 새해가 밝은 빛으로 가득할 것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선운사에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가는 길 언저리에 산책로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예전에는 없었던 길이다. 처음 보는 길이니 호기심이 갔다. 더군다나 눈까지 쌓인 채 아무도 가지 않은 상태다. 비록 무릎까지 푹푹 빠질지라도 걸어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걸어간다는 느낌은 아주 새롭다. 신선하다. 그 것이 무엇이든 설렌다.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쾌하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진다.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갈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된다. 내 안의 나를 확인하게 되고, 내 안의 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로운 세상에 내가 발자국을 내고 있다. 나라는 존재의 귀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발을 디디면서 향기로운 마음을 가지자고 다짐한다. 향기로운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삶에 향기가 생긴다. 나를 위한 기도는 물론이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기도의 정성으로 모두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간다면 향이 배어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또 한발을 내디디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본다. 넉넉하게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다. 비록 커다란 힘이 아니라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설사 일이 성취되지 못한다고 하여도 상관없다.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여유를 가짐으로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족하다. 오늘 이루지 못하면 내일 이루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다. 성급하게 서두른다고 하여 행복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얀 눈 위에 하얀 발자국을 만들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사랑만큼 순결한 것은 없다. 눈보다 더 신성하고 고결하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사랑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고 사랑만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 세상에서 사랑만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눈 위를 걸으면서 행복을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언제든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행복하지 못한 것은 가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것은 절대로 아니다. 행복과 가진 것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적다고 하여 행복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느냐의 여부다. 가슴에 사랑이 넘친다면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상관없다. 가진 것이 부족하여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겨울 산사의 눈 위를 걸으며 행복을 생각하고 새해를 설계하였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해본다. 살다보면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짧게 끝내지기를 바래본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것의 여운이 길어지기를 바래본다. 겨울 산사의 눈 위를 걸으면서 새해의 설렘을 만끽하였다.

소중한 순간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난다. 날갯짓하는 새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비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 동작은 빠르다. 순간이다. 그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군다나 카메라에 잡아내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순간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새의 모습을 잡으면서 순간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고운 깃털을 가진 비둘기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어찌 저리도 우아하게 비상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만든다.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하니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비둘기의 우아한 자태를 바라보면서 순간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문득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훨씬 더 많아진 시점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아쉬움만 남는 일일 뿐이다. 무엇 하나 완벽하게 해낸 일이 없다. 회한이 앞서고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후회의 원인을 찾아본다. 그 것은 하나다. 사소한 일들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마음을 썼다는 점이다. 무시해도 될 일을 무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무시해서 안 되는 일을 무시한 것도 마찬가지 원인이다. 결국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올해에는 이런 후회를 줄여야겠다. 무시해서 안 되는 일은 무시하지 않아야겠다. 무시하여도 되는 일은 과감하게 무시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판단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바르게 보아야 한다. 바르게 보지 않고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세상의 모습을 바르게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 굴절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 세상을 바르게 보면 바르게 인지할 수 있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비둘기 날갯짓의 아름다움을 보며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겠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눈으로 보는 현상은 허상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둘기의 고운 자태에 매료되는 것도 문제다. 겉으로 드러난 환상적인 모습에 취해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겉모습에 취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끝까지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겉모습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꾸준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내로 감내하면서 끝까지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몰입의 끝은 무아지경이다. 무아지경에 이르면 뒤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비둘기의 비상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올해에는 지혜롭게 살아가야겠다고 두 번 세 번 다짐을 해본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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