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궁궐’과 조선 왕실을 ‘한 품에’
‘5대 궁궐’과 조선 왕실을 ‘한 품에’
  • 승인 2011.02.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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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역사 현장 탐방 21 - 국립고궁박물관 1


# 서울 시대 5대 궁궐과 사진단, 종묘를 둘러봤으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남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게 좋다.
현재 베트남 황실의 보물 전시기획전도 열리고 있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5대 궁궐과 운현궁, 사직단과 종묘에 이어 이번 호에선 조선 궁궐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국립고궁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 고궁박물관 입구


또 다시 옷깃을 자꾸만 여미게 되는 겨울이 찾아왔다. ‘극기훈련’이 아닌 이상 이런 날씨면 아무리 고풍스런 궁궐을 둘러본다고 해도 따뜻한 온기가 금방 그리워지곤 한다.
그럴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 바로 서울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박물관들이다. 포근한 실내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둘러봤던 것들을 여유있게 정리하기에도 적격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중심지였던 한양의 5대 궁궐은 당시 최고의 과학 기술과 건축양식이 동원됐다. 물론 그 뒤엔 농한기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민중들의 피와 땀이 깊이 스며있기도 하다.

‘공원’으로 격하됐던 ‘궁궐’

서울 도심에 위치한 5대 궁궐은 정국인 경복궁을 비롯 ‘동궐’을 이룬 창덕궁과 창경궁, ‘서궐’로 불렸던 경희궁, 그리고 덕수궁을 말한다. 최근 들어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빠르게 복원과 정비가 이뤄지고 있지만 문화 배달민족이라고 자부하기엔 아직도 손 볼 것이 많다.


# 창경궁 내 전각 옆엔 정체 모를 석탑이 세워져 있다.

경희궁 복원은 애초부터 도심 개발에 밀려 그 위치와 규모가 부실하게 이뤄졌고 가끔씩 어색한 조형물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곤 한다. 현재 창경궁 내에 있는 한 석탑은 전문가들조차도 왜 여기 서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 시대 공원화 작업을 하면서 일본인들이 그저 보기 좋으라고 세워뒀기 때문이다.
덕수궁의 세종대왕 동상은 기자의 어린 시절부터 깊이 각인돼 있었다. 마치 대왕이 이 곳에서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이뤘던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궁궐로서 덕수궁의 역사는 임진왜란 이후 갈 곳이 없었던 선조 때에 시작됐다.


# 선조 때부터 궁궐 역할을 담당한 덕수궁 내에 자리잡은 세종대왕 동상

그럼 왜 세종대왕 동상이 이 곳에 있는 것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역사적 위인들을 기리는 작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도심과 남산 인근의 동상들도 대부분 이 때 만들어졌고 덕수궁엔 실제론 전혀 관계가 없는 대왕의 동상이 들어섰다. 이 역시 ‘궁궐’로서의 가치보단 시민들이 편하게 찾는 ‘공원’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광화문 광장을 새로 조성하며 동상의 이전이 고려되기도 했지만 21세기 디자인 서울에 걸맞는 더 크고 화려한 ‘황금빛’ 세종대왕 동상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경복궁 내에 있는 집현전 터 근처나 세종대왕과 연관성 있는 장소로 옮겨가는 게 좋을 듯 싶기도 하다.


# 도심의 또 다른 산책명소 ‘경복궁 담장길’

종묘 내부 ‘비공개’

이 외에도 5대 궁궐과 인근 문화재를 다 돌아본다고 해도 아쉬운 부분은 없지 않다. 조선 왕실의 신위를 모셨던 종묘는 외부는 볼 수 있지만 내부는 공개되지 않는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인 경운궁의 자취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물시계 ‘자격루’는 지금은 기둥만이 떡 하니 남아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작 물시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원리로 작동됐는지 모를 수 밖에 없다.


# 조선 왕실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이런 의문들을 풀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고궁박물관이다. 새단장이 한창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주미대사관 앞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벌써부터 새현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광화문쪽으로 향하면 뒤쪽으로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 벽엔 내년 2월까지 열리는 ‘베트남-마지막 황실의 보물’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경복궁 돌담길은 덕수궁 돌담길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지만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이면 즐겨찾는 인기 산책코스다. 한쪽에 심어진 가로수의 굵기가 현대사의 부침과 아픔을 보여주는 듯 하다.


# 과학 기술이 집대성됐다는 물시계는 과연 어떻게 작동됐을까.
사진은 덕수궁 내 자격루.


박물관 쪽 돌담길을 30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청계천 발원지와 북소문(자하문)이 있다. 우측의 비교적 숲이 울창한 산이 ‘주산’인 북악산이고 왼쪽으로 바위가 많은 곳이 인왕산이다. 산과 성벽, 하천과 궁궐을 교묘히 배치한 한양의 지리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석탑, 몰래 훔친 일본인

고궁박물관에서 경복궁과 민속박물관까지의 코스는 모두 인접해 있어 하루에 천천히 둘러보기 적당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에 쫓겨 대충 돌아보기 일쑤다. 고궁박물관은 월요일이 휴관일이지만 경복궁과 민속박물관은 화요일에 관람이 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고궁박물관만 돌아볼 경우 입장료는 무료다.




# 철거된 아스팔트 광화문의 잔해들

박물관 앞 마당부터 문화 유산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철거된 아스팔트 광화문의 일부가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으며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이 우뚝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려시대 명승으로 이름 높았던 지광국사의 묘탑인데 원래는 강원도 원주시에 있던 것을 1912년 일본인이 몰래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발각돼 3년 후에 되돌려 받아 경복궁에 세워졌다고 한다.


# 원래 원주에 있던 지눌국사 현묘탑.

그러고 보면 5대 궁궐 또한 일제시대 모두 치명적인 훼손을 당해야만 했다. 경복궁 대부분의 전각이 이 때 거의 사라졌고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격하됐으며 경희궁은 더 이상 원형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파괴됐다. 일제는 덕수궁도 모두 팔 생각이었으나 반발에 부딪혀 공원화 하는 수준에서 그나마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현묘탑은 화려한 무늬와 외국풍의 가마를 본 뜬 모습이 특징이다.

신사에 있던 ‘승전비’

지광국사 현묘탑 옆 북관대첩비도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인근에서 가등청정의 왜병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1708년 세워진 승전비다.
200여년이 지난 훗날, 이 곳에 들어온 일본군들에게 결코 달가울 리가 없었다. 러?일 전쟁으로 이 곳에 주둔한 일본군 소장은 자신들의 패전 기록을 알게 되자 비석을 뽑아 바로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이 비석은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신사로 옮겨갔다.


# 왜병의 패전 기록을 담은 북관대첩비를 본 일본인 소장은
 곧바로 비를 뽑아 일본으로 보냈다.
    

이런 사실을 일본에서 활동하던 최서면 선생이 1978년 처음 알게됐고 이후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노력 끝에 2005년 10월에 반환받게 됐다.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남북 협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북한에 인도돼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복원됐다. 현재 박물관 뜰에 있는 비는 원래의 비를 그대로 본 떠 2006년 세운 복제비다.
고궁박물관으로의 나들이는 그렇게 일본이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 훼손하고 침탈했는지를 실감하는데서 시작됐다.


# 박물관 앞 뜰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현대식 건물들

- 다음호 계속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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