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영하 30도, 몰아치는 눈보라…에베레스트가 떠오르는 건?
체감온도 영하 30도, 몰아치는 눈보라…에베레스트가 떠오르는 건?
  • 승인 2011.02.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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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꽁꽁 얼어붙은 북한산 족두리봉-탕춘대능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불광역 2번 출구 인근이 썰렁하다. 평소 같으면 주말 오전은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이 오늘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원인은 날씨다. 기온 급강하다. 오늘 새벽 서울지방 기온이 영하 17.8℃, 체감온도 영하 30℃.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이라니 누구를 탓하리오. 하지만 너무 춥다. 오늘의 산행 코스를 구기터널 입구에서 족두리봉, 그리고 탕춘대 능선으로 간단히 잡은 이유다.


# 멀리서 비봉능선이 보인다.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완전무장을 하고 불광역에서 구기터널을 향해 걸어간다. 드문드문 산행인들이 잔뜩 움츠린 채 산머리 쪽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터널 못 미쳐 왼쪽 족두리봉 입구 등산로로 접어든다.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친다.
시작부터 급경사다. 평상시라면 입구부터 땀이 흐를 텐데 오늘은 영 아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바라보니 밖으로 돌출된 신체부위는 눈뿐이다. 턱을 감싼 방한모자에 안면마스크까지 했으니 그럴 수밖에. 빚쟁이들 오늘은 활개치고 나다녀도 몰라보겠네.



# 비봉

족두리봉 정상 턱밑까지 쉼 없이 치고 오른다. 숨이 가빠온다. 비로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얼굴의 모든 기관들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 싸늘하기만 한데 몸은 뜨거워지고, 시원한 냉수 생각에 물통을 꺼내서 입에 가져다댄다. 이런, 물이 얼음으로 변했다. 배낭 사이드포켓에 물통을 넣었더니 찬 공기에 노출되어 꽁꽁 얼어붙었나보다. 포기하는 수밖에…. 입맛만 다시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족두리봉 아래 클라이밍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암벽을 오른다. 대단한 친구들이다. 대기조들은 암벽 아래 구석진 곳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바닥에 모포를 깔고 추위를 피하고 있다. 새삼 군복무 시절, 혹한기 훈련 때 깊은 산중에 비트를 파 그 속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 초반 때의 일이었으니 그야말로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다.



# 족두리봉

족두리봉 우측 정상의 계곡으로 오른다. 다시 땀이 온 몸을 적신다. 잠시 후 비봉능선의 출발선에 올라섰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웅장한 모습의 향로봉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런데 우아! 북쪽에서부터 매섭게 휘몰아쳐오는 눈보라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갑자기,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를 등정한 엄홍길 교수가 생각난다. 한발 한발 내딛는 게 장난 아니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우리 편집장 또 한소리 하겠구먼. “형님 엄살은 주변에서 알아준다니까? 그렇다고 비봉능선에서 그 위대한 엄홍길 씩이나 갖다 붙여요?”
“못 믿겠으면 당신이 해봐, 자기는 방콕하면서 지금 따지냐.”
후배기자들이 예전에는 고분고분 말도 잘 들었는데 이제는 도통 말 빨이 안 선다. 은막으로 사라진 원로대접이나 하려고 하니, 선 후배관계가 엄하기로 소문난 언론계인데…. 가슴 아픈 생각은 빨리 지울수록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 향로봉

당나라 시대의 당초사대가(唐初四大家)의 한 사람이었던 구양순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자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어느 산이던, 어떤 상황이던 궁시렁 거리지 말고 묵묵히 수행하라….” ‘알았어, 알았다고.’(날씨 추워서 한 마디 했더니 고사성어 씩이나….)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세계적인 산악인인 엄홍길 교수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1988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를 시작으로, 1993년 ‘시샤팡마(8027)’, 1996년 ‘다울라기리(8167)’ 등을 등극한 뒤 2000년 ‘K2(8611)’봉을 끝으로 히말라야 14좌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후 2004년 ‘얄룽캉(8505)’과 2007년 ‘로체샤르(8400)’를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6좌를 등극한 산악인이 되었다. 로체샤르와 얄룽캉은 해발 8000미터가 넘으면서도 히말라야 주봉과 산줄기가 같다고 해서 인정을 못 받고 있다. 그러나 14좌 주봉 중 연봉으로 이어진 독립적인 위성봉 중에서 8000미터가 넘는 이 두 봉을 포함하여 히말라야 16좌라 불리 운다. 히말라야 16좌 중, 지금까지 총 21번에 걸쳐 등정한 엄홍길은 특히 에베레스트의 경우 1988년, 2002년, 2003년, 2005년에도 안방처럼 드나들며 올랐다. 한국 산악사에 엄청난 위업을 이룬 것이다.


# 문수,대남,보현봉

현재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과 국위선양에 여념이 없으며, 의정부시 호원동 1호선 망월사역 앞 ‘엄홍길 전시관’을 통해, 미래 젊은이들이 한국의 새 역사를 만들어 갈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
‘엄 교수, 실례가 많았네요. 기껏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감히 당신과 비교를 해서….’
능선 우측의 바위에서 이북5도청 쪽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마시는 ‘강적’들이 눈에 띈다. 아니 이 추위에 막걸리라니, 그것도 칼바람 휘몰아치는 이 언덕에서….
필경 무슨 사연이 있을게다. 막걸리 귀신이 씌었거나, 산신령 급 도사이거나(졌다 졌어, 웬만해야 대적을 하지).
땀이 식어버린 몸은 한시 바삐 하산하라고 재촉을 해댄다. 설마 막걸리를 본 순간 생각이 바뀐 건 아니겠지. 이 혹한에 어딜 자꾸 더 가라는 거야?
향로봉 못미쳐 나오는 갈림길에서 탕춘대 방향으로 오른쪽 깜빡이 넣는다. 탕춘대 능선의 매서운 바람도 혹독하기는 마찬가지, 안면마스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연 입김이 고드름 되어 떨어진다.
오늘따라 탕춘대 능선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질까. 한참을 간 후, 탕춘대성암문을 벗어난다. 한적한 능선길에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족두리봉과 향로봉, 비봉, 나월봉, 문수봉, 승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 사모바위

평평한 산책로 같은 능선의 마지막 부분, 이해인 수녀의 시가 걸려 있는 팔각정 쉼터는 머물다 갈 인적을 목말라하는 듯하다. 송구스런 마음을 어깨에 지고 슬며시 지나간다. 발바닥의 감각이 무디어온다. 장미동산의 비탈길을 잰 걸음으로 내려서니 거북약수터 앞의 호떡장수 아주머니가 반겨준다.
불광동 먹자골목 뒷자락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사골우거지해장국에 동동주 한 사발 주문하고 긴장을 푼다. 노부부가 30년 째 이곳에서 오로지 해장국과 동동주만 팔고 있는데 할머니가 직접 빚은 동동주는 예로부터 특급 청주로 정평이 나 있다.
양재기 잔술 2잔이면 어느덧 정신이 알딸딸해진다. 예약손님을 받는 전화번호도 없고 오래 지체할 수도 없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새벽에 출근해서 피곤한 이유도 있겠으나 술자리 오래하는 꼴을 못 보는 노부부의 성격상 조기 영업 끝이다. 이 집의 사정을 잘 아는 단골들은 동동주 한 뚝배기 더 시키려면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그 놈의 작업은 어딜 가나 힘든 것이야.
“사모님, 딱 한잔만 더 하고 가면 안 될까요? 단 문닫기 전에 필히 일어서겠습니다.”
거의 애원에 가까운 눈길을 보내면서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시 눈을 내리 깔아야한다. 애처로운 눈길은 잠깐만 보내야지 오래 쳐다보면 약효가 떨어지는 법이다. 작업을 성공리에 끝내고 득의만만했던 옆 자리의 아저씨들, 식당 문 나서는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사자앙님! 자알 마시고… 욱∼욱, 갑 니 다∼요.”
예사롭지 않기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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