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아, 식신 드디어 강림하시다!!

화자, 익산떡 전화번호 모른다. 안절부절이다. 향연에 참가한 지인들의 짜증은 더욱 커져만 간다. 화자의 짜증도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려는 찰나, 한 지인의 입에서 터져나온 탄성. "저…익산떡 아냐?" 모두 우르르 창가로 몰려든다. 화자도 마찬가지. 그리고 심봤다. 아니 익산떡 봤다. 그 화사한 얼굴, 그 민첩한 행동, 포장을 펴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 나비가 봄 춤을 추는 듯…. 익산떡 그렇게 예뻐 보인 적 처음이었다.
달려 내려갔다. "왜 이제야 문을 여는 것이여?" 익산떡 활짝 웃는다. "애 닳아서 죽는 줄 알았네…."
얘기인 즉슨 해가 길어졌기 때문이란다. 주차장 한 켠 포장을 칠 자리에 세워둔 차들이 사라져줘야 하는데 해가 길어진 관계로 자꾸 늦어진다는 얘기다.
"여름이면 항상 늦는디…."
그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단다. 화자, 제 머리통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냥 무심코 길레스토랑에 가다 보니 시간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길레스토랑 건축,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난다. 물론 익산떡 혼자가 아니고 바깥 사장님과 둘이다. 본체가 세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별채까지 모습을 완성한다.
"토종닭 어떻게 됐어…." "뭘, 어떻게 돼. 준비 끝났지…." 대답 명쾌하고…. "참옻은?" "당근이지."
최첨단 과학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을 모두 동원해도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는데 익산떡 벌써 끓여놓았단다.
"이건 푹 고와야 하니께 오후부터 몇시간 동안 집에서 끓인 것이여…."
그렇다. 그래서 차에 싣고 온 것이다.
"좀만 기둘려…뎁히긴 해야 되니께."
까짓거 10일도 기다렸는데 그거 뎁히는 시간 몇 분 못 기다릴까. 자리를 펴고 앉았다. 일행은 총 4명. 커다란 가스렌지 위에 얹혀진 그보다 더 큰 크기의 양동이. 김이 솟는다. 냄새가 피어오른다. 일생에 한 번 맡아나 봤을까 할만한 `쥑이는` 냄새다.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화자 뿐 아니다.
"야, 이거 온 동네에 소문 다 나갔네."
일행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른다. 발동하는 식욕을 그렇게 라도 어찌해보려는 것이다.
"좀만 기둘려…."
그리고 10여분 뒤 드디어 식신(食神)은 강림하시고 말았다. 사람 팔뚝 길이만큼은 되는 저 커다랗고 노릿 노릿한 다리. 털 뽑은 자국이 확연히 남아 온 몸에 돌기를 돋게 하는 저 휘황찬란한 날갯죽지. "제발 나 좀 어떻게 해줘요"라고 사자후를 질러대는 듯 갈라진 통통한 복부를 그대로 세상에 내맡긴 채 드러누워 있는 저 아름다운 정읍 산중 토종닭의 자태여.
식신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 매끈하게 빠진 커다란 다리와 휘황찬란한 날개를 휘저으며 정읍의 그 깊은 산중에서 몸과 마음을 닦았을 터….
아, 식신이여…그대는 분명, 오늘 이 순간의, 이 화려한 강림을 위해 그 숱한 기다림과 애처로움의 나날들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대가 온몸으로 오롯이 끓어안고 있는 또 하나의 은총. 당신과 동무처럼 같은 산중에서 자라 오늘 이 자리, 당신의 몸에 광채와 윤기를 더해 주며 빛을 발하고 있는 그 참옻.
그래, 그대와 그대 동무의 그 기다림과 애처로움의 나날들은 오늘 이 수간 처절하게도 보상받으리라. 그대를 응시하는 저 번들거리는 여덟 개의 눈들과, 반쯤은 벌어진 채 입안에 고인 침을 애써 다독이는 4개의 입들이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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