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둘레길 ‘충의길’ 구간

지난해 개통되어 시민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북한산 둘레길’ 구간. <위클리서울>은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둘레길 전체의 탐방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중 유일하게 빠졌던 구간이 바로 ‘충의길’ 구간. 우이령길 구간의 한쪽 끝부분인 양주시 고현의 우이령 입구에서 충의길 구간은 시작된다. 이 구간은 다른 구간과 달리 나라를 지키는 군부대와 예비군훈련교장이 길을 따라 있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이 만나 이루어진 한자로,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험난한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 못살게 구는 위정자들, 새삼 한번쯤 새겨보아야 할 말이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 백운대와인수봉

그동안 북한산 둘레길 중, 구간이 너무 밋밋하여 애써 외면했던 충의길 구간을 편집장의 압력으로 오늘에야 찾아본다. 연신내역 인근 정류장에서 오른 704번(송추와 서울역 왕복) 시내버스는 구파발, 북한산성 유원지 입구를 지나 출발한 지 30여분 ‘우이령 입구’에서 기자를 털어낸다. 지나는 곳곳 건설현장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참 대단한 개발공화국이다. 끊임없이 철거되고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아파트들….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모두 하얀색 모자를 뒤집어쓴 아름다운 자태로 기자의 어지러운 마음을 그나마 가라앉혀준다. 아름답다. 산은 역시 눈 내린 다음에 오르는 겨울 산이 제격이다. 미끄럽고 춥긴 하나 눈이 시릴 듯 가득 차오는 그 하얀 색의 향연들. 삶이 그대를 속이거나 피로하게 하는 요즘 같은 때, 산에 올라보라. 찌든 스트레스 한방에 날아갈 것이리니….


# 고현 우이령입구


# 이곳도 구제역이...


인도 역시 쌓인 채 녹지 않은 눈들이 수북하다. 그나저나 올핸 무슨 눈이 그리도 많이 내리는지, 또 날씨는 어떻고…. 점심때를 넘긴 한가한 평일의 오후라 그런지 오가는 행인이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산 둘레길을 탐방하며 한 명의 등산객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또 처음이다. 서울을 벗어난 외곽지역, 그것도 춥디추운 한 겨울날 오후에 홀로 아스팔트길을 걸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서울 방향인 ‘효자길 구간’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잠긴다. 눈과 나무와 산과 바람, 그리고 고요함이 어우러진 아주 호젓한 길이다.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명상을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등장하는 한사발 하는 식당들이 현란하게 눈을 어지럽힌다. ‘거기 물 좋은데(031-855-4922. 물이 좋긴 좋은 곳일까)’, ‘오봉산옛날순두부고을’(전화번호 표기가 없다), ‘다솜미술관과 그림카페’(그림 감상하면서 한사발 땡기는 곳인가 보다)….


# 충의길

말이야 바른 말이지, 눈보라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뭔 하릴없이 고행인가, 고행이…. 그 넘의 마감시간 땜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긴 간다만, 이런 날엔 온기 도는 따뜻한 실내에서 정종 한 사발 데워, 어묵꼬치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 귀신이 잡아가남. 인생이 별거던가, 분위기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이지.
82XX부대 장병들이, 도로에 구제역 긴급방역장치를 설치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다. 오가는 차량들이 서행하면서 바퀴를 소독하고 지나간다. 그나저나 나라가 발칵 뒤집힌 상태다. 생각하면 속만 상한다. 정부당국의 초기대응 실패로, 전국에 걸쳐 피해가 가히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거기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까지 겹치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야생조류나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정부당국은 아직도 낙관 일변도인 모양이다. 모두가 “아니오”라고 하는데 “예”라고 큰소리친다. 구정 설날 전엔 어느 정도 해결될 거란다. 왜 애당초 처음 발생했을 때 잡지 못하고 300만 마리에 가까운 가축들을 살처분한 다음에야 큰소리치는 걸까. 며칠 남지 않은 설날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 보기가 영 아니올시다이다.


# 솔고개입구

“조상님! 익혀서 올려드린 음식이니 마음 편히 많이 드십시오. 아무려면 자손들이 조상님을 두 번 씩이나 욕되게 하겠습니까요.”(안 믿으셔도 하는 수 없지만.) 
얼마를 가니 소나무들을 조성하는 원예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축 처진 울타리 안에 늘씬하게 뻗은 소나무들이 촘촘히 박혀서 자라고 있다. 가지위엔 눈들이 소복하다. 길 건너에는 종로구와 중구의 예비군훈련장이 있다. 입구엔 군인들이 방한복을 입은 채 경계근무에 한창이다. 이제는 군대시절일랑 생각조차 하기 싫다. 너무 먼 옛날이라 나이 먹음에 대한 서글픔이 야속하기 때문이리라.


# 하구언민물장어집

솔고개 입구. ‘하구언민물장어(02-826-2285)’ 앞에 ‘통제구간 집중단속 솔고개-상장능선-육모정고개’란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낀다. 기자도 몇 해 전인가, 이 코스를 올랐다가 군인들로부터 제재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때 아마, 모르고 올랐노라고 잡아뗐었지.
마포교장을 지나 10여 분 후에는 용산교장도 지나간다. ‘사기막공원지킴터’로 접어든다. 인근 도로변에는 콩비지, 두부, 청국장, 묵밥을 전문으로 파는 ‘파주집(02-381-1565)’과 냉면과 만두로 유명한 40년 전통의 ‘만포면옥(02-359-3917)’ 등 식당들이 눈에 띈다. 저 멀리 에선 백운대와 인수봉, 노적봉, 원효봉 등 북한산 주봉들이 죽 늘어선 채 위용을 자랑한다.


# 밤골공원입구


# 사기막공원입구

사기막공원지킴터를 경계로 해 충의길 구간이 끝나고 효자길 구간이 시작된다. 예전 소개해드렸던 효자길 구간을 탐방할 때 지났던 북한산 굿당인 ‘국사당’ 입구를 지나 ‘밤골공원지킴터’에 도착한다. 
반대 방향인 북한산성 입구 쪽에서 몇몇의 등산객이 다가온다. 이제야 한 겨울철 ‘둘레길 동지’들을 만난다. 그들과의 인연은 만나자마자 끝이다. 구간 탐방의 ‘막중한’ 임무가 끝났으니 이제 한사발 하러 가야 한다.


# 오봉산석굴암입구


# 오봉능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서대문구, 은평구 예비군 교장 입구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연신내로 이동한다. 한산한 버스 안이 갑자기 시끌벅적하다. 북한산성 유원지 입구에서 단체로 들이닥친 이들이다. 백운대 내지는 대남문, 대동문 방면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등산객들일 것이다. 이미 한사발씩을 걸쳤는지 한동안 소란스럽던 차 안은 은평뉴타운과 구파발역을 지나면서 정적을 되찾는다.
연신내역에 내려 연서시장 안 오래된 단골집 ‘섭섭이(010-9091-4213)’에서 정종대포와 가오리찜을 주문하고 연신 입맛을 다신다. 짧은 탐방길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섭섭하지 않다. 뭔가를 마무리 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임이 틀림없다.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북한산 둘레길은…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2007. 1. 1)후 최근 웰빙형 산행 인구 급증과 은평뉴타운 등과 같은 북한산 주변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공원경계부에 조성됨에 따라 급격한 탐방객의 증가로 자연자원 훼손에 대한 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아울러 공원 내 중요 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고지대 보호를 위하여 저지대 자락 길로 탐방객을 분산유도하고 그간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던 어린이, 노인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 층에게 공원 이용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또한 역사 문화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살아 숨 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길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최근 탐방행태는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변산 마실길 등 다양한 유형의 걷기 탐방 수요로 변화되고 있어 국립공원 내에도 이와 같은 외부 탐방수요에 발맞추어 다양한 국립공원 탐방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북한산 저지대 자락을 연결하는 북한산둘레길을 조성하여 2010년 8월 말에 이중 북한산(서울시 구간)을 개방하게 되었다.
전체 둘레길(63.2km)중 현재 개통(44㎞)된 북한산 둘레 길의 각 구간은 다음과 같다. 정릉으로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솔샘길구간’(2.1㎞) ‘흰구름길구간’(4.1㎞) ‘순례길구간’(2.3㎞) ‘소나무숲길구간’(2.9㎞) ‘우이령길구간’(6.8㎞) ‘충의길구간’(2.7㎞) ‘효자길구간’(2.9㎞) ‘내시묘역길구간’(3.5㎞) ‘마실길구간’(1.5㎞) ‘구름정원길구간’(4.9㎞) ‘옛성길구간’(2.7㎞) ‘평창마을길구간’(5.0㎞) ‘명상길구간’(2.4㎞)까지 정확히 43.8㎞이다. 위치는 북한산국립공원 자락 저지대 일원으로 서울시 6개 구, 경기도 3개시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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