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21 - 국립고궁박물관 2


# 경회루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5대 궁궐과 운현궁, 사직단과 종묘에 이어 조선 궁궐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국립고궁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 연못에 숨어있던 용

고궁 박물관 입구.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한산했다. 마침 경복궁의 관람이 쉬는 화요일이라 단체 관람도 거의 없다. 베트남 왕실 기획 전시전 때문인지 베트남 사람들 몇몇의 모습이 보인다. 이 곳 역시도 시간에 맞춰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진행되지만 관람객이 적을 경우엔 무료로 음성 안내기를 빌려준다.
작은 핸드폰 모양의 기계를 목에 걸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 앞에 있는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최근 들어 몇 곳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참 시대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단 일행과 함께 관람할 때는 대화가 불가능한 단점이 있긴 하다.

‘백문이불여일견’

박물관 관람 시간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충 시간 때우기 식이라면 30분 안에 휙 돌아볼 수도 있고, 반나절이 걸릴 수도 있다. 고궁 박물관의 전시물과 해설을 정말 꼼꼼히 관심있게 관람하려는 사람에겐 하루가 훌쩍 지날지도 모를 일이다.
박물관측에 따르면 고궁 박물관엔 국보 1건과 보물 14건을 비롯 조선 왕실 빛 대한제국 황실 유물이 4만여점이 소장돼 있다. 전시물들은 모두 3개층으로 나눠져 전시돼 있다.



# 조선 왕실의 상징이었던 <일월오악도>

2층은 국가의례 관련 유물들을 모아놓은 <국가의례실>, 국가통치를 위한 공식 기록 유산인 <제왕기록실>, 궁궐건축 유물을 소개한 <궁궐건축실>, 부국강병의 산실인 <과학문화실>, 왕실의 복식과 장신구, 가구 등이 전시된 <왕실생활실>로 이뤄져 있다.
1층은 대한제국기의 유물과 황실자료가 보관된 <대한제국실>, 조선왕실의 탄생과 교육을 다룬 <탄생교육실> 그리고 문예활동의 산물인 <왕실문예실>로 채워져 있다.
어두운 분위기의 지하1층은 종묘제례악 등의 자료를 담은 <궁중음악실>, 병풍 등 <궁중회화실>, 국왕행차와 관련된 <어가의장실>, 조선의 과학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격루실>로 구성됐다.

‘천명’으로 ‘삼라만상’ 통치

박물관에 있는 주요 전시물들을 지면을 통해 전부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중 관심있게 봐야할, 나중에라도 기억해두면 좋음직한 몇가지 전시물들을 소개해 본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을 이미 둘러봤거나 앞으로 찾아갈 관람객들이라면 더욱 호기심을 가질만한 것들이다.



# 조선 왕실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재현된 신실 내부

우선 <궁궐건축실>은 5대 궁궐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유물들이 많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경복궁 내 경회루 연못에 있던 청룡상이다. 물을 다 퍼내고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기도 하며 화기 즉 불기운을 막기위해 용을 조각해 넣었다는 설도 있다.
<국가의례실>에 마련된 일월오악도 역시 궁궐 관람에서 만나는 단골 손님이다.
해와 달, 그리고 중국의 5악 중의 하나인 서왕모가 살고 있다는 쿤룬산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일월도, 일월곤륜도라고도 한다. 비교적 큰 규모로 궁궐 어좌 뒤, 임금의 초상인 어진을 모신 진전이나 혼전 등에도 비치되었다.




# 조선왕실의 전통 가마와 순종 내외가 탔던 근대식 어차.
창덕궁에 있는 자동차 진입로.



조선 후기에는 항간에서도 일종의 장식화로 민화의 범주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화면의 대부분을 점하는 다섯 개의 큰 봉우리와 그 아래 소나무?폭포?파도, 상단 좌우에 해와 달을 포치시켜 좌우균형을 갖춘 매우 도식적인 그림이다.
임금은 천명을 받아 삼라만상을 통치함을 나타내며, 하늘의 보살핌으로 자손만대로 왕실과 나라의 무궁함을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발생이나 기원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명?청시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 중국이나 일본에 소수 남아 있는 작품은 한국과는 묘사와 채색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독특하게 발달하여 정교한 필치와 화려한 채색을 사용, 장중한 모습의 정형화된 그림으로 발전하였다. 현존하는 것으로는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중화전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좌책장 우어보’

왕실의 조상들을 모신 종묘에서 내부를 볼 수 없어 답답했던 사람들이라면 그 호기심을 이 곳에 전시된 신실을 통해 풀 수 있다. 건물 한 칸마다 신주를 모셔두는 작은 방인 감실이 있었다.



# 덕수궁 전경과 원래 이름이었던 ‘경운궁’ 현판




# 창경궁 성종 태실비와 재현된 명종 태실비

감실 중앙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신주장이 있었다. 왕은 백색 수건을, 청색 수건을 사용해 덮었다. 신주장 좌측엔 어책과 국조보감 등을 보관하는 책장이, 우측엔 어보를 보관한 보장이 있었다. 신주장 앞엔 제례를 지낼 때 옮겨 모시는 신탑이 있었으며 신실 입구 양쪽엔 의장구를 세웠다.
명종 태실비도 재현됐다. 5대 궁궐 중 창경궁엔 성종의 태실비가 있는데 유교 사회인 조선시대에도 고유 민속신앙적인 면모가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1층 로비에 있는 두 대의 어차는 순종과 순종황후가 탔던 것이다.


- 다음호 계속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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