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한양의 자취와 현대가 한 자리에
600년 한양의 자취와 현대가 한 자리에
  • 승인 2011.03.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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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역사 현장 탐방 22 - 광화문,육조거리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5대 궁궐과 운현궁, 사직단과 종묘에 이어 한양의 최대 거리였던 광화문을 찾아봤습니다.


# 600년의 역사를 머금은 광화문 앞 세종로

조선시대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그리고 그 앞으로 널찍하게 뚫려있는 대로는 어느덧 도심 관광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때마침 광장이 이쁘게 조성되면서 사시사철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분수대와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세종대왕 동상이 축을 이룬다.
이 길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부터 너비 58자 규모로 만든 대로다. 정부 관서인 육조와 한성부 등의 주요 관아가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어 육조 앞 또는 육조거리로 불렸다. 1902년(고종 39) 세워진 비전으로 비각앞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곳 대각선 맞은편인 동화면세점과 조선일보 사이엔 전국 국토의 원점을 알리는 표지가 세워져 있다. 서울과 전국 각 도시간의 거리를 표시하는 도로원표가 있어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원래 광화문 4거리 일대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어 황토마루라 불렸다고 한다. 1952년 3월 25일 현재의 너비로 확정됐으며 1984년 세종로라는 명칭을 붙였다. 세종대왕의 탄생지가 이 곳에서 가까운 현재의 옥인동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주요 도시엔 나름의 큰길이 만들어졌다. 중국의 주작대로, 뉴욕의 브로드웨이, 파리의 샹젤리제 등이 대표적이다.

“북두칠성 닮은 거리”

현재의 세종로는 교보문고 앞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전에서 광화문까지로 길이 600m, 너비 100m의 왕복 16차선 도로다. 남쪽으론 태평로와 이어지고 새문안길, 종로, 사직로와 교차된다.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600년 서울의 자취와 현대 문명이 조화를 이루면서 교육과 휴식터로 각광받고 있다.



#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들어서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1968년 4월 27일 처음 세워질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이 “세종로와 태평로가 뚫려 있어 남쪽으로부터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온다”며 이를 제어할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그 주인공이 이순신 장군이었다.
지금은 고층건물과 수많은 차량행렬로 과거의 자취를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관심을 갖고 돌아보다보면 많은 유서깊은 곳을 만날 수 있다. 경복궁의 주작대로였기에 과거엔 의정부 삼군부 육조 사헌부 각사 관청이 꽉 차 있었으며 그 모습이 북두칠성을 별들과 같다고 해 ‘열서성공’이라고도 불렸다.


# 광화문 풍경 

이 거리를 처음 계획한 정도전은 중국을 본 따 거리를 건설했는데 관악산의 화기를 피하기 위해 이 길을 3.8도 가량 동쪽으로 비틀어 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는 민족 정기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노폭도 줄이고 이름도 ‘광화문통’으로 바꾸었다.

‘사헌부터’와 ‘해태상’

기자가 광화문 앞 세종로를 다녀온 날은 눈발이 막 날리기 시작하던 흐린 날씨였다. 때문에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렸을 광장은 한산했다. 길 가운데 세종대왕 동상 뒤로 미국대사관의 성조기가 나부낀다.
회관에서 광화문으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게 한성전보총국 표지석이다. 1885년(고종 22) 조청전선조약으로 들러선 총국이 있던 자리다. 위쪽 공원 모퉁이는 조선시대 사헌부가 있던 곳이다. 사헌부는 사간헌 홍문관과 함께 삼사의 한 곳으로 관리들의 부정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던 기관이었다. 요즘의 감사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광화문 안에서 본 세종로

사헌부 터 옆은 도염서가 있던 곳이었다. 궁중에서 쓰이는 염료를 제조하고 직물을 염색하는 일을 맡았다. 육조 중 공조의 지휘를 받았다. 이처럼 육조 거리엔 궁중생활을 보조하던 건물들도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 화마와 부패를 막는 해태상

골목길로 잠시 들어서면 의영고 터를 발견할 수 있다. 호조에 소속돼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 꿀, 채소 등의 출납을 맡아보는 관청이었다. 정부청사를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광화문으로 갈 수 있다. 수문장 들의 복장도 어느덧 겨울 분위기로 완연히 바뀌었다. 광화문 옆을 지키는 해태상의 원래 위치는 지금보다 훨씬 앞쪽이었다고 한다. 과거 신하들은 해태상 앞에 이르면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잠시 광화문으로 들어가 바깥을 내다보자. 조선시대 왕들도 무수히 이 문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 세종대왕 동상 뒤로 보이는 주미대사관

‘고종 즉위 40년 기념비’

정부청사 맞은편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이 조성돼 있다. 가끔씩 시위 장소로도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수단체의 사진 전시가 독차지 중이다. 공원 입구쪽으로 4월 민주혁명 5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 6조 미니모형


# 4.19 기념비


# 눈오는 공원 전경

공원 안쪽엔 육조 미니 모형을 재현했다. 양쪽 각각 3개씩 총 6개의 작은 공간으로 구성돼 있지만 상징적일 뿐 실제 조선시대 육조의 배치는 이렇지 않았다. 재정과 경제를 관리했던 호조는 지금의 한국통신(KT) 자리에, 국방과 경비 등을 담당했던 병조는 세종문화회관 북쪽에 있었다.
산림, 건축을 맡았던 공조는 세종로 대로 서편 자선방에 있었으며 인사와 관원평가를 담당한 이조는 미국대사관 자리에 위치했었다. 예악, 제사, 과거 등이 주임무였던 예조는 정부 청사 북쪽에 있었으며, 법률을 담당한 형조는 세종문화회관 자리였다. 하지만 막상 지금의 현대 건물들 앞엔 이런 과거의 위용을 알려주는 흔한 안내판조차 없어 아쉬움을 더한다.



# 변신을 꾀하고 있는 옛 문광부 건물

공원 앞 옛 문화관광부 건물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의 변신 작업에 들어갔다. 총사업비 484억원을 들여 2013년 2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미대사관과 KT, 교보문고를 차례로 지나면 다시 세종로 사거리다. 이 곳엔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사적 제171호)와 전각이 세워져 있다. 고종의 황제 즉위 등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직접 글씨를 썼다.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끝무렵이었던 20세기 초 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다.
건물의 남쪽엔 무지개 모양의 ‘만세문’을 세웠지만 정작 오래가진 못했다. 일제 시대 일본인들에게 팔렸던 만세문과 담장은 광복 후인 1954년 보수할 때야 돌아올 수 있었다.



# 고종의 친각비

굳이 궁궐까지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 광화문과 세종로를 둘러보는 것은 넉넉잡아서도 한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 안엔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이 품었던 높은 뜻에서부터 구한말 고종의 안간힘까지 조선의 역사가 곳곳에 깃들여 있다. 그리고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은 그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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