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들이 노닐던 청학동, 한옥으로 되살아나다!
학들이 노닐던 청학동, 한옥으로 되살아나다!
  • 승인 2011.03.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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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역사 현장 탐방 23 - 남산골 한옥마을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남산골 한옥마을을 둘러봤습니다.


# 남산 북쪽 기슭은 청학이 노닐었다고 해 청학동으로 불렸다.

남산 한옥마을은 사시사철 우리 고유의 전통과 자연미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입구쪽에 자리한 화장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우리 맛을 살렸다.
조선시대 한양을 지키던 봉수대가 있던 남산은 서울의 오악 중 하나로 풍수지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곳의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 지역은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를 겸한 놀이터로 예전부터 유명했던 곳이다. 청학이 날아들만큼 산세가 수려해 청학동으로도 불렸다.


# 남산한옥마을 정문

한옥마을의 초입엔 한국인의 집과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의 생가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이 곳에서 살았던 양반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시대 마지막 선비로 불렸던 일석 이희승 선생은 남산골 샌님을 뜻하는 ‘딸깍발이’라는 단어로 그 정신을 이었다. ‘딸깍발이’는 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다는 뜻으로 가난한 선비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곳 인근은 또 조선시대엔 남별영이, 현대엔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했던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 ‘ㅁ’ 자 형태의 옥인동 윤씨 가옥

‘조선 최상류층의 삶’

현재 남산골한옥마을은 옛 정취를 시민들에게 맛볼 수 있도록 전통한옥 다섯채를 옮겨 놓았다. 저마다 특징을 갖고 있어 집의 규모와 배치 등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옥마을에 자리를 잡은 전통 가옥은 옥인동 윤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관훈동 민씨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 모두 5채다.



#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원래의 옥인동 윤씨 가옥은 1910년대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부재가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만 그대로 본 떠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의 소유였다. 규모가 큰 ‘?’자형 안채에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져 ‘ㅁ’자형 배치를 이룬다. 안채 앞쪽만 기둥머리를 치장하는 등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기동에 있던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은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라 순종이 제사하러 올 때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재실이다. 윤택영은 순종의 장인이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했다. 집의 평면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元’자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사당이 제일 위쪽에 배치됐다.


# 관훈동 민씨 가옥의 넓직한 부엌

관훈동 민씨 가옥은 민영휘의 저택 가운데 일부로 원래는 이보다 규모가 컸다. 여러 집채가 있었으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안채와 여기에 연결된 중문간채만 남기고 모두 헐렸다.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할 때 안채를 옮겨 짓고 철거됐던 건넌방을 되살렸으며 사랑채와 별당채를 새로 지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위세가 등등했던 민씨 가문의 호화로운 생활을 잘 보여준다.
서울지방에선 흔치 않은 안방과 부엌의 나란한 배치, 크고 넓은 목조구조, 6칸에 달하는 부엌 규모 등이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난간과 툇마루’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1890년대 지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말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살았던 곳이다. 원래 삼청동에 있던 이 주택에선 김춘영의 손자인 김홍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됐다.


# 높아진 도시 밀도를 반영한 김춘영 가옥

안채의 서쪽 벽이 골목에 직접 면하는 점, 대문간이 바로 트이지 않고 꺾어 들어가게 한 점, 대지의 모양에 맞춰 건물들을 ㄱ자와 一자 형태로 교묘하게 조합했다. 이는 점점 밀도가 높아지는 도시적 상황에 잘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 난간과 툇마루, 지붕의 곡선이 아름다운 이승업 가옥

이승업은 1860년대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 이승업이 지은 집으로 청계천 부근의 중구 삼각동에 원래 있던 것이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와 중문만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문간채, 앞뒤 행랑채, 사랑뒤채 등 8개의 큰 건물로 이뤄진 주택이었다. 조선후기 서울의 주거문화와 당시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준다.
특히 각 공간의 중요도에 따라 지붕의 높낮이와 모양을 달리하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는데 안채의 곳곳에 설치된 난간과 툇마루는 편리와 아름다움을 모두 강조했다.

계곡,정자,연못 복원

한옥들 앞엔 상설 전시 공간인 ‘전통공예관’이 있다. 1월 한달 간 ‘2011 신묘년 토끼와 함께하는 풍속 민화전’이 열리고 있다.
고즈넉한 전통 가옥 뒤편엔 그 동안 훼손됐던 지형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계곡과 정자, 연못 등을 아름답게 배치했다. 지금은 물이 꽁꽁 얼어 진면목을 볼 수 없지만 날씨가 좋아지면 그 어느 곳보다 인기가 높은 곳이다.




# 전통공예관과 풍속민화전 작품들

서울 남산국악당은 국악전용 공연장으로 수준 높은 공연과 전통예술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한옥마을 가장 위쪽엔 서울천년타임캡슐이 묻혀 있는데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 29일 개봉한다고 한다. 시민생활과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캡슐에 담았다.


# 서울 천년 타임캡슐



# 남산골 전통공원



# 세세한 곳까지 신경쓴 화장실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전통가옥의 맛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추운 겨울이지만 남산 자락 청학동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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