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24 - 북촌 한옥 마을 1 : 8경을 중심으로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남산 한옥 마을에 이어 이번 호에선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봤습니다.


# 6경. 처마 사이로 보이는 도심이 인상적이다.

남산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한국의집 앞엔 박팽년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의 한쪽 입구, 정독도서관 인근은 성삼문의 집터였다. 사육신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살았던 남산과 북촌은 당시 양반들의 주무대였고 한옥의 기술이 집대성된 곳이었다.
관광 명소로 새롭게 조성된 남산 한옥마을은 강북 지역의 유명 한옥을 인위적으로 옮기거나 새로 복원했다. 반면 북촌 한옥마을은 오랜 기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조성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더 자연스럽고 규모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 5경. 가회동 31번지 골목은 북촌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이다.

남산 한옥마을은 한두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지만 곳곳마다 볼거리가 가득한 북촌 탐방은 하루 일정으로도 부족하다. 돌아보는 코스 또한 다양하다. 북촌 8경을 중심으로 둘러보거나 역사 명소만 찾아다닐 수도 있다. 공방과 각종 박물관들 위주로 한 곳씩 돌아볼 수도 있고 도심에서 보기 드문 정겨운 카페와 맛집들만을 들리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관광코스

기자는 일단 8경을 중심으로 돌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8경이란 북촌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말한다.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를 거쳐 북촌관광안내소를 먼저 찾았다. 이 곳에선 안내도와 함께 ‘북촌모바일안내시스템’이라는 기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한다.


# 1경. 담장 너머 보이는 창덕궁의 고즈넉한 모습


# 2경. 한옥 골목 사이로 노인 한 분이 힘겹게 걸어오고 있다.


기기의 약도를 이용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중요한 장소에선 음성 설명까지 나온다. 개방하지 않은 한옥이나 시간 상 들를 수 없는 곳은 내부까지 3D를 통해 보여주기도 한다. 이쯤되면 정말 시대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기 대여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이고 반납 시간은 오후 5시까지다. 하지만 요즘처럼 동절기엔 대여와 반납 시간 모두 한시간 당겨져서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북촌의 위치는 기본적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의 중간 위치다. 한양의 중심이었던 종로와 청계천의 윗동네라 해 북촌으로 불렸으며 예로부터 권문세가와 왕족, 사대부 양반들의 거주지로 사용돼 왔다.


# 한옥이 줄 지어선 좁다란 골목길이 3경이다.


# 4경에서 바라본 북촌. 한옥 사이로 우뚝 솟은
녹색지붕 양옥이 이준구 가옥이다.



지금은 대대손손 가옥을 물려받은 양반집과 오랜 세월을 같이한 토박이 주민들, 그리고 전통문화를 이끄는 장인들이 이 곳에서 한옥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배산임수를 따르는 자연환경과 조용하고 고즈넉한 정취로 최근엔 정재계 인사들과 예술가들도 많이 찾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곳에서 대선 승리의 기쁨을 맛본 바 있다.

전통 장인들의 ‘공방’

안내소를 나와 부지런히 창덕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에 자리잡은 북촌 문화센터에 들러 북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맛보기를 했다. 문화센터를 지나 창덕궁 담장과 건물들이 보이는 곳이 8경 중 첫 번째 장소다. 정조 때 문화부흥을 일군 규장각과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 아담하면서도 정겨운 골목길인 7경


# 암석 하나로 층계를 만들었다. 8경 돌계단길.



창덕궁 담장길을 따라 은덕문화원을 지난다. 은덕문화원 옆은 김지하 시인이 운영하는 샤롱 마고다. 한국불교미술박물관과 리기태전통연공방, 궁중자수공방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한옥 으로 구성된 궁중음식연구원이다. 그리고 이 한옥들이 모인 골목이 두 번째 장소다.
발길은 다시 중앙중고등학교 쪽으로 향한다. 정문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된 은행나무가 멀찌감치 반갑게 맞아준다. 학교 앞 상점이 온통 일본 글씨와 한류 연예인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만큼 이 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언덕을 넘어 조금 내려오면 또 다른 공방들로 가득하다. 경신공방, 한상수자수공방, 자연염색공방, 설경나래옷공방, 가회민화공방, 동림매듭공방 등 전통문화의 대표적 장인들이 머무르는 한옥이 저마다의 맛을 풍기며 손짓을 했다. 일일이 들어가고 싶지만 부족한 시간을 탓하며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 공방들이 모인 정감어린 골목길이 8경 중 세 번째 장소다.


#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궁중음식연구원



# 수령 500년된 중앙고등학교 은행나무와 학교 앞 상점

처마 사이로 보이는 ‘도심’

큰 길인 가회로에서 끊어진 한옥의 맥은 돈미약국 골목에서 다시 이어진다. 각 건물마다 대문과 창의 모습이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있다. 한 채 한 채가 볼거리고 문화 유산이다. 대문 옆 굵은 회나무가 인상적인 주택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네 번째 8경이 나온다. 시스템과 약도를 이용해도 좀처럼 찾기 힘든 곳이다. 좁은길을 따라가면 낮은 축대가 나오는데 이 곳에선 북촌 한옥 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한옥 사이로 초록 지붕이 이색적인데 양옥식 2층으로 지은 이준구 가옥이다.
다시 원래 길로 돌아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북촌에서도 가장 보존과 정비가 잘 된 가회동 31번지 골목을 만날 수 있다. 8경 중 5, 6, 7번째가 모두 이 곳에 모여있다. 5번이 오름길, 6번이 내림길을 찍는 곳이다. 7번째 장소는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서로 마주하고 있는 한옥이 정겹게 느껴진다.






8번째 포토스팟은 가회동에서 삼청동으로 내려가는 코스에 있다. 여러 개의 계단이 있는데 가장 위쪽 돌계단길의 아랫부분이 인기가 높은 곳이다. 암반 하나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골목 주택과 잘 어우러져 옛 정취를 풍긴다.
기기 반납 시간에 쫓겨 다시 삼청동에서 계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지런히 돌아다녀도 대략 2, 3시간 정도 걸린다. 공방과 박물관까지 관람하려면 반나절조차도 부족할 듯하다. 추운 겨울이지만 고단한 도시 삶에 지친 마음을 쉬고 싶다면 북촌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 골목마다 숨쉬고 있는 한옥의 숨결이 감탄과 함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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