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타살 사건 계기 들여다 본 ‘그들의 하루’

인천서 일어난 집배원 타살 사건을 계기로 집배원의 근무 조건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근무량에 비해 집배원 수가 적은 관계로 대부분의 집배원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른 안전사고도 줄을 잇는다. 집배원들의 오토바이 사망?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위클리서울>은 서울 도심에서 일하는 집배원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정년까지 오토바이 탈 생각하니 까마득”

집배원 양모 씨는 오토바이 시동을 껐다. 성북구의 한 건물 입구에 비치된 우편함에서 우편물 뭉치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양 씨는 동소문동 일대를 다 돌아야 한다. 다행히 일대가 사다리꼴 모양의 골목 형태여서 대화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우편함 사이의 이동거리가 멀었다면 취재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양 씨는 S자로 형태로 반복된 골목을 수 십분 간 뱅글뱅글 돌았다.  
“동네 다 돌아야죠. 퇴근 시간까지 빠듯하네요. 오늘은 물량이 많은 편이라, 이렇게 대화할 시간도 없어요.”
기자는 양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배달지로 이동하면 건너편 블록에서 양 씨가 U턴해 오길 기다려야 했다. 양 씨는 때론 우편함을 지나쳐 되돌아가기도 했다. 근거리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걸어서 이동했다.
“내렸다 타기를 반복하면 안쪽 허벅지가 쓰리기도 해요. 마음 같아선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싶은데, 우편 양이 많아 들고 다닐 수가 없네요.” 
오토바이의 짐이 가벼워지자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출구’가 가까워지고 있다. 
“집배원도 공무원이라고 추켜세우는 이들이 있죠. 다들 월급이 적어도 공무원 되려고 발버둥 치잖아요. 정년 보장 되고 칼 퇴근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하지만 집배원은 달리 봐야 해요. ‘무진장 힘들다’라는 말 이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양 씨는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집배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것은 확실하겠지만 일은 무진장 시킵니다. 막노동 수준이라고 보면 돼요. 칼퇴근요? 보통 8시 출근에 퇴근은 7시에서 8시 정도죠. 설이나 추석, 혹은 선거철이 되면 10시 퇴근도 어렵고 주말에 쉬지도 못합니다. 평소에도 주말에 번갈아 일을 합니다. 월급도 얼마 안 돼요. 초임은 13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죠. 차라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돈 많이 주는 곳에서 하는 게 낫죠.”



최근 청년 일자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젊은 층들에겐 집배원이 인기직종이기도 하다. 이에 양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자식에게도 절대 시키지 않을 겁니다. 집배원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차라리 환경미화원을 추천합니다. 흔히 집배원과 환경미화원을 두고 비교를 많이 합니다. 두 업무는 인식 면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차라리 환경미화원이 되세요. 제 동료 중 하나도 환경미화원으로 직업을 바꿨어요. 저도 기회가 되면 시험 응시해보려고요. 집배원은 하루 종일 막노동 하는 기분이지만 환경미화원은 그렇지 않거든요. 집배원과 환경미화원 모두 아주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 저와 같은 전국의 집배원들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환경미화원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일 없다고 무작정 뛰어들진 않았으면 합니다. 현실은 다르거든요.”
양 씨는 정규직 공무원이다. 하지만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말도 유명무실하다고 했다. 
“정년까지 오토바이 타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제가 10년 가까이 이러고 있는데, 도중에 사고로 죽은 동료들도 있어요. 다친 사람은 수없이 많고요. 보험처리가 되면 뭐합니까.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정년까지 오토바이를 탈 생각하니 까마득합니다.”  



양 씨는 정규직 집배원이 되기 전 상시위탁집배원 생활을 2년가량 했다.
“저는 운이 좋아 2년이었어요. 보통 길게는 5년까지 갑니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구요, 그래서 대부분이 도중에 하차하죠. 정규직이 되기도 전에 오토바이 사고 나서 인생 망치는 경우가 많죠.”

비정규직, 사망해도 보상 미비

현재 우정사업본부의 전체직원은 4만 여명으로 이 가운데 상시위탁집배원은 22.6%인 9000여명에 달한다. 상시위탁집배원은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늘리지 않고 집배원 숫자를 충원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일종의 비정규직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정규직 집배원은 1만3000여명이고 비정규직 집배원은 2048명(14.9%)이다. 비정규직 집배원은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함에도 정규직이 받는 급여의 88%를 받는다.
문제는 우정사업본부 등 공공기관이 매년 수백억원의 수익을 내면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우편 사업과 우체국 예금 등 자체사업을 통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고 남는 돈을 국가 일반회계로 편입시키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 우편배달을 하다 숨진 집배원 고 김영길(32) 씨도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어서 산재처리 외에는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고인은 공무원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순직 처리ㆍ유족 연금ㆍ국가유공자 지정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종로구의 집배원 최모(33) 씨는 2년차 비정규직 집배원이다. 최 씨는 “나라의 녹을 먹는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언제 될 진 몰라요. 일종의 계약직들도 공무원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오랜 기간 일하면 전환시켜주는 사례가 많다고 해요. 기관의 높으신 분들과 친하게 지내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겠죠.”   
최 씨는 보통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9시나 돼서야 퇴근한다. 정규직보다 월급이 적기 때문에 자진해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주말 수당까지 합치면 정규직 월급과 엇비슷하다. 
“사실 우체국 일은 끝이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지만 늘 쫓겨요. 새벽까지 배달해도 모자랄 겁니다. 그래도 전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합니다. 수당도 수당이지만, 이런 식으로 일하면 근무평점에 반영되니까 나중에 정규직 전환도 빨라지겠죠.”
최 씨는 고 김영길 씨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불쌍하죠. 같은 처지여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런 소식 들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죠. 사실 집배원도 우리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 중 하나잖아요. 만약 누가 때려 죽였다고 상상하면, 정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 씨는 그러나 대부분의 집배원들이 김 씨와 마찬가지로 늦은 시각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다고 했다.
“매번 똑같은 양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 아니잖아요. 배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칼퇴근 할 수는 없거든요. 물론 정부가 집배원을 지금보다 2배로 뽑고 공무원 수도 늘리면 가능하겠죠.” 


“GPS칩 안전과 무관, 업무량 늘리기 위한 것”

한편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원 사망 사고를 빌미로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GPS칩을 집배원들의 휴대 PDA에 설치할 예정이어서 인권침해 및 노동 감시 논란이 예상된다. GPS칩이 집배원들의 노동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발생한 집배원 사망 사고로 집배원들의 안전사고 문제가 촉발되자, 지난 4일 집배원이 휴대하고 있는 PDA에 GPS칩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 같은 내용의 안전사고 예방 대책을 발표하며 “PDA에 GPS칩을 설치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되면 사고발생시 바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집배원들은 GPS칩 도입에 부정적이다. 집배원들은 GPS칩으로는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없으며, 오히려 노동조건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대문구의 집배원 김모 씨는 “GPS칩을 설치하면 배달시간, 이동시간까지 기록으로 남게 된다”며 “이게 통계화 되면 이동시간이 오래 걸렸을 경우에는 의심받게 되고 문책 요소로 작용하는 등 결국 인사관리 시스템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모 씨 역시 “GPS칩은 안전과는 무관하게 동선을 철저하게 감시해 집배원을 좀 더 많이 ‘굴리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전사고가 나는 이유는 집배원들이 늘어나는 업무량을 소화하려고 과로, 과속해서인데, 위치 정보 노출로 노동환경이 더 악화되면 오히려 안전사고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진심으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싶다면 GPS칩 도입이 아니라 인력충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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