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노점상 했다며 노점 할머니 부둥켜안았던 대통령은 어디에…”
“자신도 노점상 했다며 노점 할머니 부둥켜안았던 대통령은 어디에…”
  • 승인 2011.04.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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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단속 현장서 사망한 노점상 할머니 파문 일파만파

구청의 철거에 항의하다 쓰러진 노점상이 숨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중랑구 묵동 우리은행 앞에서 구청의 철거를 막던 이봉진(67. 여)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중랑구청은 ‘안타깝다’면서도 보상 등 대책을 마련하진 않아 시민사회 진영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노점분야 평가에서 ‘최우수구’를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는 등 ‘디자인 서울’의 이름으로 사실상 노점상 정리를 강요해온 터다. 이에 노점노동연대는 “이봉진 할머니의 죽음은 무리한 노점 단속에 혈안인 가운데 발생한 행정살인”이라며 “노점 아니면 살기 힘든 사람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철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유지임에도 노점 설치 방해

지난 18일 서울 중랑구에서 60대 노점상 이봉진 씨가 구청의 노점 강제철거에 항의하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 고인이 10년째 장사를 하던 곳은 은행 앞 사유지로, 고인은 땅주인의 허락를 받고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이 씨와 같은 동네에 사는 땅주인이 이 씨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고 장사를 용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랑구청은 이곳이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화분을 갖다놓는 등의 방법으로 노점 설치를 방해했다. 이에 화분을 치우려던 고인이 이를 막는 구청 직원과 언쟁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중랑구청의 노점 단속은 냉혹하고 매몰찼다. 사고 당일까지 고인의 포장마차를 두 번이나 철거했다. 자신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포장마차 철거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인의 마지막 외침은 “이거 가져가면 굶어죽는다”였다.
이날 중랑구청 단속반원 7명은 오전 9시께부터 지난 10여년간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이 씨 소유의 포장마차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인근 노점상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이씨는 “놔둬라. 이거 가져가면 굶어죽는다”고 항의하다 그 자리에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서 구급대원들이 긴급하게 출동했지만 이 씨의 숨은 이미 멎어 있었다.



중랑소방서 구급대는 “도착했을 때 이 씨의 심장은 이미 멎어 있었고, 병원으로 옮겨 심폐소생 처치를 했지만 실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에 외상이 없고, 이 씨가 심장병 수술을 2차례 한 점 등을 들어 이 씨가 말다툼 도중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5년간 2차례에 걸쳐 심장 수술을 받은 이 씨는 지난해에도 심장병이 발작해 쓰러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발병 이후에도 이 씨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호떡, 어묵 등을 판매해왔다.
주민 등에 따르면 구청은 이 씨가 포장마차를 설치하면 철거하는 일을 반복해왔다. 구청은 지난 14일엔 이 씨의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에 화분 3개를 갖다 놨다. 노점 설치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16일 이 씨는 화분을 치운 다음 포장마차를 설치했고 장사를 다시 시작한 지 이틀만에 이같은 화를 당했다.
구청이 손쉽게 철거를 하기 위해 이씨에게 ‘장사를 다시 해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족들은 “14일 구청 단속 직원이 단속 현장 사진을 찍어야 하니 이틀만 쉬면 다시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약속과 달리 노점을 철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전국노점상연합 관계자는 “구청에서 이 씨에게 지금은 계고기간이니 며칠간만 쉬면 다시 장사를 하게 해주겠다고 회유한 뒤 철거를 했다”며 “하지만 철거를 한 이후에는 화분을 갖다놓고 장사를 못하게 막았다”고 밝혔다. 그는 “길거리에서 무리하게 단속을 하면 노점상이 반발하는 등 싸움이 커지니까 대부분 구청에서 이런 식으로 단속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중랑구청 관계자는 “며칠 쉬면 단속 안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또 이 씨가 장사하던 곳은 100% 사유지는 아니고 보도와 걸쳐 있었다. 사유지라 하더라도 행인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어 단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씨의 죽음에 대해 중랑구청에서는 ‘안타깝다’면서도 보상 등 대책을 마련하진 않고 있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이 씨의 노점이 인도 보행을 방해하고 도시 미관을 해쳐 단속을 했다. 이 씨가 단속반장 멱살을 잡고 흔드는 과정에서 쓰러졌다. 단속 과정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해 안타깝지만 구체적으로 대책을 세운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 씨의 노점 인근에서 야채장사를 해온 장모 씨는 “저와 마찬가지로 이 씨는 다른 노점상인들과 떨어져서 홀로 장사를 해왔다. 중랑구청이 몰려 있는 노점상들은 단속하지 않으면서 혼자 장사를 하는 분들의 경우 과도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기본적으로 노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점을 운영한다. 구청이 노인들 생계보장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단속만 하다 보니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장 씨는 “이 씨는 거의 매일 나왔지만 나는 일주일에 2~3회 정도 장사를 하러 나온다. 단속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우수구 선정해 인센티브 주니까 이런 일이…”

서울시의 경우 노점분야 평가에서 ‘최우수구’를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는 등 ‘디자인 서울’의 이름으로 사실상 노점상 정리를 강요해온 터다. 동묘 일대에서 잡화를 판매하는 노점노동연대 소속 임재희 씨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단속은 서울시를 비롯 전국의 지자체가 도시 미관을 명목으로 하고 있다”며 “이봉진 할머니의 죽음은 무리한 노점 단속에 혈안인 가운데 발생한 행정살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청에서 며칠만 쉬면 된다는 등 속임수를 일삼는다”며 “노점 아니면 살기 힘든 사람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철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랑구청 근처에서 붕어빵 노점을 하는 장모 씨는 “노점상들은 언제 구청에서 단속이 들어와 장사를 못하게 할까 봐 걱정하는 게 일상”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 씨는 “경기 침체로 물가가 오른 데다 오후 7시만 되면 사람들의 발길도 끊겨 생계를 잇기도 힘들다”며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은 여기서 장사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는 이모 씨는 “보통 봄이 되면 단속이 강화된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단속을 강화하면 요즘 같은 시절에 뭘 먹고 살란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그는 “종로, 명동 등 번화가 일대 노점상 밀집 지역에 비해 동네 노점상들은 매출도 저조하다”며 “주요 이용층이 학생들이라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고, 용돈이 줄어들면 2인분 먹을 것을 1인분으로 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다른 지역에선 토스트를 1500원씩 파는데 우리는 동네에서 작게 하는 거라 그러지도 못한다. 계란값이 올라 죽겠는데도 아직 1000원에 판다”며 “평일엔 토스트가 30개 정도밖에 안 팔린다. 하루에 2∼3만원씩 챙기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성북구 보문동에서 떡볶이, 김밥, 튀김 등을 파는 노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 씨는 “잘 팔려야 하루 5만원 남짓 총수익이 난다”며 “거기서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단속이 강화되는 이맘때면 며칠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매출이 더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광화문에서 토스트와 호떡을 파는 한 노점의 아주머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다고 했다.
“아침엔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토스트 사먹고, 오후엔 학교 끝난 학생들이 호떡 사먹고 그러고 나면 하루 장사도 끝이야. 남는 거는 하루에 4만원 정도 될까 싶어. 그나마 이거라도 없으면 살림이 더 어려우니까 단속이 뜬다고 해도 무릅쓰고 매일 나오는 거야. 다행히 여긴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 노점상들한테 함부로 못 해.”


전국 단위 결의대회 열려

전노련은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랑구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이봉진 할머니를 죽인 주범에 대한 처벌 및 중랑구청 규탄대회’를 여는 등 강력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전노련 이광수 동대문중랑지역장은 “사고가 난 곳은 은행 사유지였고 도로폭도 10m 정도로 넓으며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며 “그럼에도 중랑구청은 ‘이틀만 자리를 비워주면 단속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지키지 않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장은 “노점상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폭력과 차별을 당해야 했지만 노점의 발생은 사회 구조적인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노점관리대책은 노점합법화로 포장하고 있지만 노점상을 선별하여 퇴출하고 외진 곳에 노점상을 밀어 넣고 고사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호섭 전국빈민연합 공동의장도 “선거 때만 되면 서민을 위하겠다며 표를 구걸하더니 권좌에 오르면 안면을 싹 바꾼다”며 “살인적인 노점단속과 신종 노점탄압 과태료 폭탄 앞에 우리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심 의장은 “식재료 값 상승으로 힘든데 공공요금 상승까지 오르게 된다면 서민들에게 폭탄을 주는 것”이라며 “세금은 세금대로 받고 공공요금까지 받아가는 정부는 각성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어 “자신도 노점상을 했다며 노점상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목도리를 둘러준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노점상인은 단지 정치소품일 뿐인가. 중랑구청을 넘어 전국 지자체의 반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노련은 규탄대회서 ▲노점 단속 중단 ▲중랑구 노점상 사망사건 책임자 처벌 ▲노점탄압 벌금부과 중단 ▲노점관리대책 즉각 철회 등을 요구했다. 전노련은 지난달 29일 청계광장에서 전국 단위 ‘노점상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를 여는 등 항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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