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이 작품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고 액자 소설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쪽 소설은 7년 전 우발적으로 어린 소녀를 살해한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사내와 딸을 죽인 범인의 아들에게 ‘복수’라는 장외 정의를 감행하는 피해자의 숨 막히는 대결을 다루고 있다. 사내는 아들의 목에 걸린 죽음의 올가미를 벗기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되돌릴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깥쪽 이야기는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세상을 떠돌던 아들이 ‘사형집행’이라는 소식으로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과 맞닥뜨리는 데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7년 전 그날 밤’으로 소년을 데려가고, 소년은 아직 ‘그날 밤’이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소년의 목에는 여전히 올가미가 걸려 있었으며 그 올가미를 죄는 손길은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삶이라는 혼돈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잊는다. 작가는 절실하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그때,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7년 전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미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삶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발버둥친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삶이 끝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릴 때, 우리는 그 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작가는 전작 ‘내 심장을 쏴라’에서 보여줬듯이, 한국문단에서 가장 강력하고 스케일이 큰 서사를 구현할 수 있는 소설가들 중에 한 명이다. 여성 작가로서는 무척 보기 드물게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창조주로서 소설 속 인물들을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실수로 인한 살인이 불러온 파멸, 선과 악, 사실과 진실 사이의 이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삶에 대한 의지 등 평범한 필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소재와 이야기를 치밀하게 재단하고 완성하여 독자 앞에 부려놓았다.
524면/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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