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두터운 화장, 좀 전까지 담배를 피우던 아이가 지금은 열공중이다!
저 두터운 화장, 좀 전까지 담배를 피우던 아이가 지금은 열공중이다!
  • 승인 2011.04.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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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고졸 검정고시장의 풍경


남들과는 다른 길을 밟고 있는 나.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부모님과의 상담 끝에 과감히 자퇴를 결행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거의 다 지난 6월 무렵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게 현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려면 수능시험을 치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된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에 졸업장을 딸 수 있는 방법은 검정고시. 해마다 4월과 8월 두 번의 시험이 치러진다. 자격제한도 있다. 자퇴를 하고 6개월이 지나야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때문에 자퇴를 한 다음해 4월에 보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검정고시 전문 학원을 다녔다.
검정고시 범위는 얼마 되지도 않고 그 중에서도 기초적인 것들만 출제된다. 3개월간의 학원수업이 끝났다. 계속 검정고시 공부만 하기엔 시간이 아까워 11월부터는 수능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개인 사정상 12월까지만 학원에 다니고 1월부터는 혼자 공부를 했다.
2월 말. 검정고시학원에 같이 다녔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검정고시 응시원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아무 소식도 못 들은 채 4월에 치러지는 시험도 보지 못할 뻔했다. 연락을 해준 친구가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원서제출기한 첫날 증명사진도 찍고,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에 가서 제적증명서도 떼서 무사히 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한 달 동안 신문사 일이 끝나면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로 가 혼자 공부를 했다.
그리고 4월 10일 일요일. 드디어 검정고시 시험 날. 분명 며칠 전까지는 큰 시험이라고 실감하지 못했는데, 시험 하루 전날부터 아빠와 엄마의 열띤 응원(?) 덕분에 잔뜩 긴장을 한 채 집을 나섰다.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긴 하지만 검정고시는 유난히 더 신경이 쓰였다. ‘너무 쉽다고 얕보다가 혹시라도 대실수를 해 큰 코 다치면 어떡하지…?’ ‘원서제출날도 무서운 아이들(일명 노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더 많겠지…?’ 등등.


시험이 치러지는 곳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부모님의 애원에 가까운 호소를 과감히 뿌리치고 엄마가 싸주는 점심 도시락과 수험표, 기타 준비물을 챙겨 집에서 가까운 전철역으로 향했다. 집에서 시험이 치러지는 무학중학교까지는 전철로 도합 세정거장. 용산행 전철을 탄 뒤 왕십리에서 5호선으로 갈아탔다. 무학중학교 인근 행당역, 시간이 남아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친구를 만났다. 나와 함께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던 수진이다.
학교 입구, 벌써부터 각 검정고시 학원에서 응원을 겸한 홍보활동에 나선 이들로 북적거렸다. 수능 날에는 후배들이 나와 응원을 하는데, 검정고시 날에는 학원이라…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
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나는 첫날 원서를 냈기 때문에 2실로 배정이 되었는데, 함께 간 수진이는 24실이었다. 한 반당 약 20명 정도의 응시생이 있었다.
아참, 여타 시험과는 확연히 다른 검정고시 수험생들의 다소 이색적인 풍경. 우선, 딱 봐도 내 또래인 여자아이들 중 일부는 어른들도 잘 안하는 분장수준의 두터운 화장에, 손에는 담배 하나씩을 끼고 어울리지 않는 자세로 학교를 유유히 누비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였다.
그리고 대학생인지 내 또래인지 구분도 안가는 남자아이들은 알록달록한 머리색에 양복까지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시험 시작 전 운동장 한편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귀신마냥 흰 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피워댔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면서 삭막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어린 양(?)이 된 나는 그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시선을 피해가며 조용히 고사장으로 들어왔다.
시험은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선택과목 1, 선택과목 2, 국사 순으로 진행됐다. 고사장에는 할머니도 네다섯 분 보였고, 아빠 나이 정도는 돼 보이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리고 마음잡은(?) 아이들까지.
오전 9시, 시험이 시작됐다. 중간 중간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시험이 의외로 어려워서? 아니다. 그럼 너무 쉬워서? 올 만점을 받을 것 같아서? 그러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쉬는 시간 10분 사이 틈틈이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마음잡은(?) 아이들 때문이다. 밖에선 그래도 수많은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가래침을 뱉으며 시험을 보고 간다는 흔적을 여실히도 남겨대고 있었지만, 교실에 남은 분장화장을 한 몇몇의 아이들, 왁스로 떡칠을 한 알록달록 머리를 가진 아이들 몇 명도, 오랜만에 보는 시험에 애쓰고 계시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눈이 빠져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수진이가 우리 교실에 와 같이 김밥과 도시락을 먹으며 잠깐 숨을 돌리며 수다를 떨었다. 한창 수다를 떨다보니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벌써 아이들은 식사를 후다닥 해치우고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민망해진 우리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복도로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시험 보러 와서 수다 떨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ㅜㅜ
어쩌면 삭막한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제일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아이들이 혼란에 빠져 평범하지 못한 길로 접어든 것이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때도 느낀 거지만 그들 중엔 겉보기와 다르게(?) 똑똑한 아이들도 많고, 착한 아이들도 많고, 생각이 깊은 아이들도 많다. 그저 학교를 그만두고 노는 것으로만 소일하기에는 아까운 아이들이 많다는 소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위한 제대로 된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다.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 한창 하고 싶은 것도, 꿈꾸는 것도 많은 아이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다.
어쩌면 교실에서 저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인 지도 모른다. 꿈을 갖고, 힘들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오후 4시 30분, 기나긴 시험이 끝나고 친구와 학교 밖으로 나오는 길. 삼삼오오 모여 담배연기를 뿜던 아이들도, 분장수준의 화장을 한 아이들도 시험 보러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두터운 화장을 했어도 그 얼굴에 피어난 미소는 누구보다 순수했고, 담배연기를 뿜고 있는 입에서는 “너 몇 개 맞았냐? 난 90점 넘을 것 같아ㅋㅋ”라는 학생다운 얘기도 오고갔다.



그들의 모습에서 학교 다닐 때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검정고시 준비과정을 통해 배우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공부에서 뿐 아니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선입견을 버리게 되는 것. 뒷골목에서 방황하는 아이들도 그들 나름의 꿈을 갖고 그들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서 빨리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자신만의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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