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구조조정 노동자 정신건강 ‘충격 실태’

정리해고는 과연 만병통치약일까. 쌍용자동차 사태는 2년여가 지났지만 오히려 전쟁을 치러야 했던 노동자들의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를 책임져야 할 사측도,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해줘야 할 정부도 뒷짐만 진 채 해결을 오늘내일 미루기만 할 뿐이다. 쌍용자동차측은 14명의 희생자가 생긴 뒤에야 여론에 밀려 “2013년 정도면 복귀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 만큼의 여유란 없다. 이들이 입은 피해가 한두가지는 아니지만 정신적 피해는 그 한계점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6살배기 아이가 찾아온 사람들과 잘 놀다가 갑자기 나무 위에 올라가 뜬금없이 ‘나 자살할래’ 라고 소리쳤다 한다. 누구의 애인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빠된 입장에서 바로 우리 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쟁의 아픔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잔인함은 정도가 심해졌다.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 되거나 무급휴직 상태인 노동자들의 생활은 오래전부터 ‘정상적’이지 않다. 가정은 파탄나기 직전이고 물질적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중이다. 자살하는 꿈을 꾼 뒤 부부가 부둥켜 우는가 하면 술과 수면제 등에 자신을 내맡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 고통’ 악화일로

2009년 4월 구조조정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사망한 쌍용차 자동차와 가족은 지금까지 14명에 이른다. 이 중 9명이 자살이었다. 노동자 부인 중 2명이 자살했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 사망은 5명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사측과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술 더 떠 회사는 8?6 노사합의를 무시하고 2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되자 평택시가 지원 의지를 내비쳤을 뿐이다.
물질적 피해도 피해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이미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등 당장 정신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증세를 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란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말한다. 공황발작이나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을 경험할 수도 있고 공격적 성향,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자살 경향이 높은 질환이다.

“가족,사회 관계 파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와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은 쌍용차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모두 3차례 실시했다.
1차와 2차는 파업이 한창이던 때와 직후 실시됐으며 3차는 1년 6개월여가 지난 최근 조사됐다. 이들은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와 가족들의 자살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파업 당시 조사된 1차와 2차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서 파업 노동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은 42.8% 였고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우울 증상은 30.1%였다.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고도 우울증상은 41%였다.
얼마 전 발표된 3차 실태 조사는 2년 전 무급휴직 및 정리해고 등을 이유로 퇴직한 193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1, 2차 때 보다도 3차 조사 결과가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협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와 수많은 연구들이 지금 이대로 방치하면 정신, 심리 상태가 더욱 나빠질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사측이 시급히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노동자들의 삶은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결혼한 응답자 중 14명(7.3%)은 구조조정 이후 이혼하거나 별거 중이었다. 마지막 안식처였던 가정마저 길고 긴 ‘생활고’의 터널 안에서 파괴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현재 상황은 무급 휴직(42.5%) 상태가 가장 많았고 정리해고(34.2%), 강제해고(12.4%), 희망퇴직(10.9%) 순이었다.



경제 상황 또한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43.7%가 현재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17.7%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현재 직업이 없는 경우가 34.8%였으며 다른 직장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3.9%에 그쳤다.
대상자들의 경제 상태 또한 악화일로였다. 전체의 86.2%가 현재 빚을 가지고 있었으며 84%는 구조 조정 이후 빚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평균적으로 구조조정 이후 약 3000여만원이 증가했다.

“기관사의 8배 유병률”

사회적인 관계도 배우자, 부모, 친지, 동료, 이웃과의 관계 등 전반적으로 모두 악화됐다. 이들에게 사회에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 리 없었다. 특히 99.5%가 회사에 대한 신뢰가 악화됐다고 답했고 국가에 대한 신뢰는 98.4%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자녀와의 관계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장시간 일하다 보니 자녀에 대한 관심도가 71.5%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자녀와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응답도 79% 였다.
임 소장은 “보다 더 문제는 자녀들의 성격이 나빠졌다는 점”이라며 “쌍용차 문제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응답자의 78.5%는 자녀의 성격이 나빠졌다고 답했으며 63.3%가 자녀의 사교육비가 매우 줄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현재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경제적인 고통’(87%)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녀 양육, 부부 관계도 고민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갖가지 고통과 압박은 심신건강의 페해로 그대로 이어졌다. 최근 1년간 쌍용차 노동자 자살률은 10만명 당 151명 꼴로 30~40대 일반인구 자살률의 3.74배에 이른다. 심근경색 사망률 또한 10만명 당 113.4명으로 30~40대 일반인구보다 18.3배에 달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유병률도 심각했다. 파업 종료 후 42.8%였던 유병률은 1년 반이 지난 3차 조사에서 오히려 52.3%로 높아졌다. 임 소장은 “시간이 흘러 감소됐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문제 해결은 안 되고 오히려 더 쌓여만 갔다”고 진단했다.
이 수치를 잦은 인명사고로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직종으로 꼽히는 기관사가 6.5%라는 불과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사태의 심각성은 단적으로 나타난다.
우울증 역시 1, 2차에 비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신과 조치가 필요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의 경우 1차(55%), 2차(71%), 3차(80%)로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고도 우울증상 역시 1, 2차의 33.8%와 41%에서 50%로 높아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복합골절”

인의협 관계자는 “우울증의 경우 실직자의 자살율이 다른 환자들보다 2.9배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다”며 “특히 실직 후 처음 4년의 사망률이 높아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7년 유럽연합의 고용사회기회균등위원회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셍명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으로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좀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둘째는 양질의 교육, 사회의 보호, 건강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로는 사회적인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말부터 매주 ‘쌍용차 노동자 집단 치유 프로그램’을 열고 있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쌍용차 노동자들은 거대한 구조조정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도 사회적인 위로는커녕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고 있다”며 “사회적 무관심이 자살로 몰아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쌍용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파업 전부터 사회적 윽박지름에 시달려야 했다”며 “정작 들었어야 할 말은 ‘힘들지, 힘들었겠구나’ 하는 그런 위로였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점점 더 거대한 늪에 빠진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각각의 문제에 대한 접근 보단 회사측의 성의있는 입장 표명 등 전체적이고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한 쌍용차 노동자는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게 아니라 발목에서부터 허리, 머리까지 복합 골절을 당한 것”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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