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장애인의 날’…이어지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

정부와 국회에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거리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전국결의대회를 열고 12개 정책요구안을 내세우며 노숙농성 투쟁을 선포했다. 공투단 회원들은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까지 보신각 일대에서의 노숙농성과 함께 종각역 일대에서의 대대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섰다.
공투단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모독하는 기만적인 장애인의 날과 그날의 더러운 잔치를 깨부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며 “장애를 개인의, 몸의 기능의 문제로 왜곡하는 장애등급제를 반드시 폐지시키고 장애와 장애인에 관한 뿌리 깊은 이념과 신화들을 뒤집으며, 장애와 빈곤을 개인, 가족의 책임으로 왜곡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의무부양제를 폐지시킬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장애인차별철폐 ‘강력 투쟁’ 선포

공투단은 “이명박 정권의 가짜복지를 폭로하고, 기만적인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의 당당한 권리를 쟁취하는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을 만들기 위해 강력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장애를 개인의, 몸의, 기능의 문제로 왜곡하는 장애등급제를 반드시 폐지시키고, 장애와 빈곤을 개인?가족의 문제로 왜곡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의무부양제를 폐지시켜,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확장시킬 것”이라고 결의했다.
공투단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포함한 12개 정책요구안을 내놓고 있다. 12개 요구안은 ▲장애등급제 폐지 및 보편적 복지 제도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장애인소득보장 대책 마련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및 자립생활 권리 보장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즉각 제정 ▲발달장애성인의 지역사회 참여 및 최대한의 자립생활 보장하는 복지여건 조성 ▲장애인의 탈시설권리 보장 및 전환서비스 체계 구축 ▲장애인 주거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교육권 보장 ▲장애인 노동권 보장 위한 실질적 정책 수립 ▲장애인차별금지법 실효성 확보 위한 정책 시행 ▲장애인보조기기 지원법 제정 및 보조기기 지원 확대 등이다.
한편 공투단은 지난달 26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장애인대회를 시작으로 4월 11일에는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1박2일 1인 시위를 진행했으며, 12일 오전에는 집단 수급권 신청 선포 기자회견, 장애성인교육 예산확보 촉구 교과부 규탄 기자회견 및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 등을 서울 각지에서 진행했다.



시민사회의 지지도 잇따르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이종일 중앙집행위원장은 “김대중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일한 만큼 갖고 가는 복지를 주문해왔다. 하지만 노동권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에게 있기 때문에 장애인은 노동하려해도 할 수 없다. 이게 무슨 복지인가”라며 “‘장애인의 날’이 되면 풍선 달고 도시락 주면 끝인 게 우리나라 복지의 전부”라고 꼬집었다. 그는 “언제까지 장애가족에 모든 걸 맡기고 등급을 매기는 사회, 시혜적 사회로 가야 하는가”라며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공동대표는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학생인권조례 서울본부 다영 활동가는 “대중교통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라 하는데, 정작 장애인은 이용하기 힘들다”며 “대중교통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균도의 손, 사회와 정부가 잡아주길…”

지난 12일 공투단과 함께 ‘서울대장정’에 나선 이들 중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서울대장정 선두에 선 이진섭(47. 부산시 기장?해운대 장애인부모회 회장) 씨다. 그는 복지부 직원에게 전국장애부모 15만명의 서명이 담긴 상자를 전달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 씨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게 느껴진다”며 “장애계 현안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에서 잠시라도 우리의 진심을 가슴으로 느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아들 균도(19. 발달장애 1급) 군과 부산에서부터 걸어서 서울로 온 이 씨다. 이 씨 부자는 지난 3월 12일 부산을 출발해 밀양-대구-구미-상주-충주-성남 등을 거쳐 이달 12일 서울에 도착했다. 자폐장애인인 아들의 손을 잡고 장장 600㎞를 걸어온 이유는 4월 임시국회에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꼭 통과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부모가 평생 같이 살아줄 수가 없다’는 것 때문에 관련 법 제정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장애인 관련 복지는 돌봄서비스, 의료비 지원, 활동보조 지원 등 몇 가지가 안 되고 그마저도 법적인 근거 없이 사업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보육료 지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초생활수급가정과 차상위계층의 저소득층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하거나 연령이나 등급제에 기초한 선별적이며 시혜적인 복지지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 씨는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과 사회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기 위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루 12시간 이상 아이를 돌봐야 하는 현실에 장애아동을 둔 부모는 매달 평균 70만 원가량의 치료비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 씨는 또 “장애인자녀 부모들이 요구하는 것은 ‘부모가 죽으면 장애인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제발 장애인도 사회구성원으로서 함께 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서울까지 걸어오면서 이 씨 부자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장애인의 현실을 외면한 예산이 4대강 사업에 열심히 쓰이고 있던 현장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공사가 한창인 양산-상주구간의 황폐화된 인공산을 걸으며 날아오는 모래를 온몸으로 맞았고 마음으론 쓰디쓴 아픔을 견뎌야 했다.
이후 부자 모두 목이 아파 몇 일 동안 몸져 누웠고 지금까지도 기관지가 안 좋다. 이 씨는 “4대강 사업에 쓰인 예산 조금이라도 장애인을 위해 지원했다면 가수 김태원 씨가 자폐아 아들을 필리핀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애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우릴 사회에서 못살 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부자가 걷는 게 이슈화되면서 균도를 시설에 넣어주겠다는 전화가 열통도 넘게 온다”며 “우리 균도를 시설에 보내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남들 사는것처럼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에 있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이 씨는 또 “언제까지 내가 균도의 손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없어도 우리 균도가 자유롭게 다니는 세상,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균도의 손을 사회와 정부가 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의 편견에 맞서기 위해 균도 부자는 일부러 붐비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장애아의 현실을 비장애인 그리고 사회에 드러내기 위해서다. 장애특성상 소리를 지르는 균도를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이 씨와 같은 심정으로 장애부모들의 바람을 담은 법이 바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다.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대표발의)을 포함한 121명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11월 24일 발의한 법안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아동 및 그 가족의 특별한 복지적 요구에 적합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법이 통과된다면 의료, 보장구 및 보조공학기기, 장애아동 발달재활서비스, 장애영유아 조기개입서비스, 지역사회 전환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법안은 정부 측과의 원활한 합의가 진행되지 않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남숙 공동대표는 “우리 장애 아이들은 장애가 있는지도, 장애가 뭔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동네분들, 치료사 말만 믿고 그렇게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그런 삶을 거부한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지원을 받겠다”며 “부모가 결정하지 않아도 어디 학교를 가고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등의 모든 것을 장애아동 복지지원법을 통해 지원받을 것”이라고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장애인이 이 세상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변함없는 우리의 모습을 알리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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