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정찬주/ 열림원

 정찬주 작가는 지난여름 대원사를 찾아 법정스님의 속가 조카이자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인 현장스님을 만나 이 책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다. 작가와 현장스님 모두 법정스님께서 수행했던 암자와 절을 순례하며 글을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공감대를 가졌던 것이다. 실제로 정찬주 작가는 스님과 도타운 인연을 맺어온 재가 제자이기도 하지만, 10여 년이 넘게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암자나 절을 찾는 암자 전문가이기도 했다. 작가는 곧바로 작은 카메라와 수첩 하나만을 들고 법정스님의 수행처를 고스란히 순례하기 시작했다. 법정스님의 제자인 상좌 스님들과도 이미 친분이 두터웠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법정스님의 흔적이 새겨진 수행처들을 찾았다. 법정스님의 고향인 해남 우수영으로 향할 때는 스님이 출가하던 날 그랬던 것처럼 일부러 눈이 오는 날을 택하기도 하고, 수행자로서 법정스님이 가장 원숙했던 불일암을 찾아서는 스님이 여전히 옆에 계시는 것 같아 스님이 사용하시던 앞문을 사용하지 못하고 부엌문으로 드나들기도 한다. 진도 쌍계사에서는 스님이 쌍계사로 수학여행을 왔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래사 눌암에서는 효봉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던 행자 시절의 스님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또 가야산 해인사에서는 문재로서의 스님의 흔적을 더듬고, 봉은사 다래헌에서는 일부 몰지각한 신도들의 ‘봉은사 땅 밟기’를 떠올리며 스님의 마음처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쌍계사 탑전에서는 법정스님이 앓아누웠을 때 80리 길을 걸어 약을 구해 왔던 도반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진정한 도반이란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한다. 또 강원도 오두막 수류산방을 생각하며 산중에서 홀로 묵묵히 정진하셨던 법정스님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길상사를 찾았을 때는 스님이 영화 ‘서편제’를 보고 나서 속가의 여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러한 작가의 조용하고 차분한 순례길이 여전히 법정스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더디지만 실로 놀라운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292면/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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