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염승숙/ 문학과지성사

 2005년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등단한 소설가 염승숙이 첫 책 ‘채플린, 채플린’ 이후 3년 만에 두번째 단편집 ‘노웨어맨’을 발표했다. 등단작 ‘뱀꼬리왕쥐’의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나 몸에 숫자를 새기고 태어난 ‘수의 세계’의 주인공 ‘공영’ 말고도 거인증을 앓거나 달력 속을 드나드는 엄마 등 현실 속 인물이라고는 조금도 믿기지 않는, 익숙한 규범과 사전적 정의, 3차원의 평범한 일상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소설적 인물들 그리고 일찌감치 ‘염승숙 스타일 개인방언’이라 불리는 소설 언어로 낯선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했던 염승숙은 이번 책에서, 현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 승자와 패자, 지루하고 고단한 이분법 세계 속의 진실을 캐묻는다. 뱀꼬리왕쥐나 고양이, 숫자 귀신들, 달력 화보 속의 핀업걸, 달로 간 채플린 등 루이스 캐럴이나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나 익숙한 인물들 대신 ‘개인 파산’이나 ‘청년 실업’ 같은 현실 세태 속 “어디 한 곳 귀의할 곳 없는” 사람들, 노웨어맨(nowhere man 혹은 now here man)을 통해 말이다. 길거리 낡은 건물이나 전봇대에, 공중에 나붙은 전단지 속 ‘파산, 회생, 상담, 도움, 구제’ 같은 단어들로, 매일매일 아프고 쓰디쓴 상처를 목구멍으로 되삼키는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게 염승숙의 8편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환상의 세계와 지독히도 끔찍하고 비루한 현실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삶의 한 진실로 다가온다. 312면/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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