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마음으로 읽는 그림, 그림으로 읽는 마음’




제가 아는 여자 후배는 그다지 큰 키가 아님에도 늘 구부정하게 걷습니다.

할머니가 키 커보이면 안된다고 하도 ‘단도리’를 해서 그렇다네요.

그 먹먹한 사연은 역사가 깊습니다.

할머니의 아버지와 오빠들은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편과 세 아들은 해방 직후 좌익 혹은 우익이라는

이유로 실종되거나 처형당했습니다.

남들과 다르면 제 명에 죽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없지요.

그러니 조금 키가 큰 손녀딸이 남의 눈에 잘 띌까 봐 구부정하게

다니라고 윽박지를 수밖에요.

하지만 슬프고 아린 가족사와는 별개로

할머니…그런다고 그 흔적을 없애고 잘 살아지던가요, 어디.

사람들의 속마음을 듣다 보면,

할머니가 손녀딸에게 구부정을 강요하듯 내 안에 있는 ‘어린 나’를

무조건 억누르고 쉬쉬하려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별처럼 많은 사연이 왜 없겠는지요.

하지만 ‘어린 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한다고 그 흔적이 없어지나요.

보듬고 다독여야 살 수 있습니다.

연약하지만 자기 힘으로 공기를 뚫고 올라오는 봄날의 연초록들은

얼마나 눈물겹게 아름다운지요. 따스한 햇볕과 어루만지는 바람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이 봄날, 구부정한 키를 바로 세우고 내 안의 ‘어린 나’와 조우하려는

모든 이에게 봄바람 같은 응원을 보냅니다. 절정의 경험을 함께하시길….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님은 마인드프리즘㈜의 대표 MA(Mind Analyst)로서 사람의 내면을 분석하여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치유적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통하여 우리 사회에 치유적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으며 정혜신의 그림에세이도 이러한 치유 콘텐츠의 하나이다. 그녀가 운영하는 마인드프리즘㈜에서는 심층심리분석, 기업 심리경영 컨설팅, 문화심리치유 등의 종합적인 정신건강 증진 솔루션을 개발, 제공한다. <마인드프리즘 홈페이지 www.mindpri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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