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내가 누구여…익산떡 아녀!!

오후 5시가 지나간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는 듯 하다. 혹시나 하고, 사무실 유리창문을 통해 길레스토랑 쪽을 바라본다. 소식이 없다. 검고 굵은 줄로 칭칭 매여진 길레스토랑은 묶인 그대로 철옹성 마냥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눈이 끓어 넘친다. 분노(?)다. 머릿속 수만 가지 상념이 점멸을 거듭한다. 이 일을 우찌하나…. 초청 뻐꾸기를 날린 7인에게 일단 연락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아니야, 이미 날은 샌 것이야. 참옻오골계는 철새처럼 날아가고 만 것이야. 결국 검은 색 깃털 꼬투리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야속하게도 날아가 버린 것이야.
그리고 드디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 전화 수화기를 들고 초청 뻐꾸기 날린 인사들에게 마악 전화를 걸려는 찰나, 요란하게도 울려 퍼지는 핸드폰 벨소리…. 때를 맞춰 일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서 환호성을 질러대는 9만5579개의 머리카락들. 사무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핸드폰 창을 확인하니 익숙지 않은 번호가 떠있고…. 높아지는 가능성…커지는 심장의 고동 소리….
"여보세요…정서룡입니다."
최대한 긴장감을 감춘 채 평소보다 2-데시벨은 더 다운된 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벼락같은 여성의 목소리. 고막이 찢어질 듯, 눈이 튀어나올 듯…하지만 반가워라,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익산떡이 아닌가. 벼락 소리도 때론 꾀꼬리 울음소리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오늘, 알제?"
"……."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뭐시여? 오늘 알제?"
간신히 입을 연다.
"아, 왜 이제사 전화를 하는 것이에요?"
감추려 했는데 묻어난다. 감동이다.
그리고 뻐꾸기 날린 동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먼저 온 오늘의 만찬 동지 몇몇과 미리 길레스토랑에 내려간다. 포장을 펴고 있는 익산떡과 바깥분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이, 미리 전화를 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문 안여는 줄 알았잖여…."
나름대로 최대한 강하게 어필을 한 것이다. 
"앗따, 약속 했잖여. 내가 누구여…."
누긴 누구야, 숭인동 길레스토랑의 여주인 익산떡이지.
몇몇 일행이 조금 늦는다고 해 두 마리의 오골계중 먼저 한 마리를 내달라고 했다.
세차게 피어오르는 가스불…그 위에 얹혀져 그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덜커덩 거리는 양은솥 뚜껑 틈새를 비집고 코끝을 간질여 오는 그윽한 내음…. 정녕 이것이 참옻오골계의 육신에서 피어나는 향내란 말인가.
익산떡의 사설이 이어진다.
"저 양반(바깥분, 익산떡의 남편을 지칭함)이 오골계 잡느라고 애먹었당게…."
정읍 깊은 산골 집 얘기다. 오골계를 키우는 산골 집 할아버지 얘기다. 산 속에 커다랗게 철조망을 쳐놓고 그 안에서 오골계와 토종닭들을 키우는데 그중에 오골계는 단 세 마리. 원래 익산떡 계획은 세 마리를 다 잡아오는 것이었는데, 세 마리를 포획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익산떡 바깥양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몇 시간 씨름을 하다가 간신히 두 마리만 잡은 것이다. 익산떡 덧붙인다.
"다른 사람들한테 오골계 먹었다고 얘기하지 말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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