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개발광풍속 철거민들> 서초구 내곡동 철거민들을 찾아서

하루 종일 우르릉 쿵쾅 집 부수는 소리가 심장을 울려댄다. 괴물의 울부짖음, 죽을 지경이다. 최후 통첩장이 날아왔다. ‘철거.’ 두 음절의 글자가 가슴에 박힌다. 자칫 이대로 있다간 포클레인 삽날에 산채로 매몰되는 소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야 하는데…갈 곳이 없다. 가야 하는데…. 용산참사 2년이 훌쩍 지났다. 포클레인 굉음은 그치지 않는다. 개발광풍 속 철거민들의 오늘이다. <위클리서울>은 뉴타운 등 개발열풍에 밀려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철거민들의 현실을 기획시리즈로 진단해보고 있다. 지난 호 일산 덕이지구 가구단지 철거민에 이어 이번엔 서초구 내곡동 헌인가구단지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사상초유 강제철거 강행

헌인가구단지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가구단지다. 가구단지 1호가 별것이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종사자들의 자부심은 컸다. 로데오거리처럼 활성화 되는 바람도 있었다. 그만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부분은 외면당했다.
2006년 가구단지가 철거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2007년 소문은 현실이 됐다. 가구단지 종사자들은 사업 시행사와 심각한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용역업체가 가구단지에 불을 질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9년입니다. 이상하다 했더니 우연이 아니더라고요. 철거 용역이 세입자들을 쫓아내려고 불을 낸 겁니다. 경찰이 조사해서 피의자를 잡았는데, 전과자였어요. 철거용역 업체가 한 건에 1억에서 2억원씩 주고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불을 질렀거든요. 우리처럼 철거에 반대하는 상인들 내쫓고 보상금을 적게 지불하려고 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피의자가 경찰 진술에서 말 한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불을 질러야 철거가 빨리 되고, 현장 사업진행도 빨린 된다는 말을 했어요. 큰 불이었습니다. 가구점 몇 채를 태워 15억원 정도의 재산 피해가 있었어요.”
헌인상공철거대책위원장 이성옥 씨는 “비극은 여기서 멈춘 게 아니다”고 했다. 2008년 8월, 사상초유의 강제철거가 강행됐다.
“일요일이었어요. 용역 1500명이 들이닥쳤죠. 차 유리창부터 건물유리창까지 다 깨 부시었어요. 용역들의 폭행도 심했습니다. 보통 강제철거라 하면 100명, 200명 정도의 용역이 온다는데, 그렇게 많은 인원이 투입된 철거는 아마 처음일 겁니다. 제 생활의 터전이었고 십 수년을 이 자리에서 벌어먹고 살았는데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서 길거리에 있다는 게 가슴 아프죠”



이 씨는 지난해까지 컨테이너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아무도 내 목소리를 안 들어주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땐 죽을 생각도 수없이 했죠. 죽고 나면 해결해주겠지,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 씨는 가구공단 안에서 430평이나 되는 번듯한 가구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강제철거가 진행된 지 단 하루 만에 일대 가구점 30곳, 가구공장 56곳과 함께 내쫓겼다. 이 씨는 “그들이 물건까지 꺼내간 뒤 강제집행 비용을 내놓으라며 가압류를 해버렸다.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창고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막막하다”고 했다.
가구단지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부분이 강제철거됐다. 나머지는 그나마 땅 주인들이 땅을 팔지 않아 유지되고 있다. 나머지 가게들은 여전히 장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비정상적인 상권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가구단지 상인 장모 씨는 운이 좋아 가구단지 내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장사 하나마나”라며 혀를 찼다.
“폐허 속에서 장사를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누구한테 가게 넘기고 나갈 수 있는 여건도 안 돼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철거 당시 모든 것을 빼앗긴 철거민들은 여전히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거점을 잃어버린 상황이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내곡동 일대에서 집회를 연다. 철거민 유모 씨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주변에서 집회를 연다”고 말했다.   
“철거당한 상인들은 이제 가게가 사라졌으니 가구단지에서 투쟁할 명분이 없어요. 가구단지에서 집회한들 효력도 없어요. 인근 지역에서 주로 합니다. 때 되면 구청집회도 열죠. 상가만 철거당해서 주거문제는 없어요. 이제 용역들이랑 마주칠 일도 없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회일지라도 계속 이어갈 겁니다.”


“가구점 차릴 때 낸 빚만 불어나”

주거에는 문제가 없는 철거민이지만 가게를 빼앗긴 이후 궁핍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윤모 씨는 “철거 당시 10원 하나 못 받았다”고 성토했다.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빼앗긴 상황입니다. 돈을 못 버니까 타고 다니던 승용차도 팔았죠.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자식 셋 중 둘이 대학생인데, 둘 다 휴학한 상태예요. 막내는 고등학생인데 학원도 못보냅니다. 내후년에 수능을 치르게 되면, 대학에 합격하든 못하든 군대로 보내야 할 판입니다.”
윤 씨는 빚만 차곡차곡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고 나니 너무 황당하죠. 가구점 하나 시작하려면 금액이 많이 들어요. 적금 붙다가 대출 받은 돈으로 차린 가게인데, 다 날린 셈이죠. 저처럼 빚내고 장사 시작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빚을 갚아야하는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쫓겨난 대부분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어요. 자기 돈 날린 것은 둘째 치고, 빚 때문에 허덕이죠. 이중고, 삼중고에 시달립니다.”
윤 씨는 가구단지에서 쫓겨난 지난날이 떠오르는지 분통을 터트렸다. 



“세입자들을 단지 안에 몰아넣었죠. 도우려는 동료들은 단지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 채 양쪽에서 집단 구타를 당했어요. 대한민국 공무집행때는 왜 용역 깡패가 항상 같이 다니죠? 왜 용역깡패가 공무집행에 먼저 투입돼서 서민들을 개 패듯이 패고 공무집행을 도운단 말이냐 이 말입니다. 우리는 공무집행을 방해한 적도 없고 깡패집단도 아니고 이유 없이 맞고 쫓겨나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서민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맞고 짓밟힌다고 도망갈 생각은 없습니다.”
윤 씨는 십수년간 일궈놓은 가구단지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격앙했다.
“저를 비롯 수많은 상인들이 이룩해 놓은 재산권을 가진 자들한테 무기력하게 빼앗겼어요. 우리 철거민이 주장하는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계속 투쟁할 겁니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 재개발이 정말 사람 잡네요. 청와대, 서울시, 경찰, 대기업, 투기꾼들, 보수 언론들이 다 한 패거리 아닙니까. 이런 식의 개발을 찬양하는 사람들, 분명 천벌 받을 겁니다.”
대책위는 여전히 서울시를 상대로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요구조건에 대해 이성옥 씨는 “수평 이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했다.
“진짜 별거 없어요. 서울시에 모두 얘기를 했습니다. 수평이동하게 해 달라고요. 우리 지역이 동남권이랑 가깝거든요. 서울시가 청계천 사람들을 상가에 입주시켜줬듯,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그렇게 해달라는 겁니다. 어디라도 좋으니 괜찮은 조건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해달라는 겁니다. 청계천은 서울 도심에 있다 보니, 함부로 밀어버리지 못했을 거예요. 보는 눈이 많잖아요. 그래서 합의를 잘 해준 겁니다. 우리는 도심이랑 멀리 떨어져 있으니 사람들 관심이 아무래도 덜 가죠.”
하지만 이 씨는 사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역구가 한나라당이라서 더 힘들어요. 게다가 부르주아 동네잖아요. 철거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일부 철거민들은 오히려 선처를 바라고 있어요. 1억 넘게 빼앗겼는데, 저쪽에서는 반대로 불법 점거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세우려고 하니까…. 그냥 돈 잃어버린 셈치고, 빈 몸으로라도 살자는 식이죠. 자포자기한 겁니다. 살려고 그냥 가는 거죠.”
뿔뿔이 흩어져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헌인가구단지 철거민들의 상황은 이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각개 농성과 연대 농성을 통해 끊임없이 열악한 철거민들의 환경을 세상에 알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느리지만 힘찬, 가구단지 철거민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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