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제비꽃처럼, 저 구름처럼 그저 발길따라 흘러갔으면…
저 제비꽃처럼, 저 구름처럼 그저 발길따라 흘러갔으면…
  • 승인 2011.05.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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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는 계절이 아쉬워

제비꽃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비꽃은 홀로 피어 있을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앙증맞은 크기로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치 제비가 집단을 이루어 손짓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라 빛깔로 돋보이는 꽃들이 마음을 잡아버리고 놓아주질 않는다. 꽃의 매력에 젖어든다.



보라색은 고귀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옛날 관등제도를 보면 가장 높은 관리가 입는 관복의 색깔이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그만큼 품격을 유지해주는 색깔이다. 고귀한 품격을 유지하고 나타내는 색깔이다. 그러서인지 제비꽃의 자태가 우아하기만 하다.

제비꽃은 자신의 존재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제비꽃은 키가 작다. 꽃의 크기도 크지 않다.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감만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지만 당당하다. 앙증맞지만 향이 좋다. 은은한 향이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아울러 자신의 존귀함을 표현한다. 이런 제비꽃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원래 방황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유목민의 피가 살아 있기 때문에 원초적인 그리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방황에서 여행으로 방향을 잡기는 하였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여행보다는 방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원초적 그리움이 진하게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꽃이 바로 제비꽃이다. 제비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방황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여행과 방황의 차이는 목적의 유무에 있다. 목적을 가지고 떠나면 여행이 되고, 목적 없이 떠나면 방황이 된다. 어찌 보면 방황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에 있어 여행보다 방황이 훨씬 더 유익하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은 바로 방황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구름처럼 방황을 하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다.



제비꽃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방황의 효용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피어나는 앙증맞은 꽃을 통해 내 삶을 돌아다보게 된다. 유목적적으로 살다보니 이제는 지쳤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보랏빛 제비꽃을 보면서 무목적적인 방황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구름처럼 발길 따라 흘러갔으면 좋겠다.

가는 봄이 아쉬워 

바람이 분다. 바람 따라 꽃잎이 날린다. 고운 꽃 이파리가 비가 되어 춤을 춘다. 떨어지는 꽃비가 아쉽다. 속절없이 떠나는 봄을 잡고 싶다. 떨어지는 꽃 이파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무심하게 멀어지는 봄을 잡을 수 없어 안타깝다.



왔으면 가야 한다. 오면 가는 것이고 그리고 또 다시 온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 주체할 길이 없다. 아직 오지 않았을 때에는 오지 않아서 조바심을 쳤었다. 목을 길게 내밀고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왔을 때에는 그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춤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봄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속절없이 멀어지고 있었다. 가는 봄을 잡을 수 없어 마음만 애태우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어디쯤 오고 있을까? 조바심을 쳤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봄이 왔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왔고 어느 사이에 멀어지고 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야속한 봄이다. 무정한 봄이다.

멀어지는 봄, 문득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머뭇거리는 순간에 세월은 그렇게 훌쩍 멀어지고 말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얼굴, 허망함을 주체하기 어렵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는데, 세월은 훌쩍 뛰어넘어가고 말았다. 깊이 생각도 하고 싶고 음미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럴 여유도 없이 세월은 무심하게 멀어지고 말았다.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봄이 멀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벚꽃들이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세상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꽃들의 자태가 연록의 새순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단 말인가? 멀어지는 봄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지금의 소중함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은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금’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산다. 지금 하지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무심코 지나간 지금들이 쌓여 결국은 거울 속의 낯선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난감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이곳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가슴에 간직하였더라면 거울 속의 모습이 이렇게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가버렸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당혹스럽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가 없다.



흘러가버린 세월을 후회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가는 봄을 붙잡아야 한다. 후회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멀어지는 봄을 붙잡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나누면 된다. 함께 누리면 된다. 그렇게 되면 봄은 길어지고 여운이 넘쳐나게 된다.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봄을 아쉬워하기만 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나누면 나눌수록 늘어나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지 않고 누리면서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봄을 붙잡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가는 봄이 아쉬워 봄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가는 봄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봄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




풀꽃을 바라보며 

꽃이 별처럼 반짝인다. 하늘이 아니라 땅 위에서 반짝인다. 새로운 세상을 연출해낸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다. 그저 반짝거림에 젖어들고 있을 뿐이다. 저 풀꽃처럼 빛나고 싶다. 한번 뿐인 인생, 설명할 여유가 없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쁜 일상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할 뿐이다. 삶 자체에 충실함으로서 한번 뿐인 인생을 빛나게 할 수 있다. 굳이 말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애를 쓴다.


반짝이는 풀꽃은 말한다. 삶 자체에 충실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묘사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반짝이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뭔가를 더 하려는 것은, 뭔가를 더 나타내려는 것은 탐욕이요, 어리석음이다. 탐욕의 불길에 휩싸이면 걷잡을 수 없다. 어리석음의 행보는 통제하기 어렵다. 욕심이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불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 욕심의 결과는 걱정으로 나타나고 일곱 가지 감정에 휩쓸리게 한다. 감정의 노예가 되고 나면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하다. 공허해지고 삶을 낭비하게 된다. 그렇게 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수렁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이다.



풀꽃처럼 반짝이기 위해서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평상심을 가져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꾸밀 필요도 없다. 있는 그래도 누리면 되는 일이다. 반짝거리는 풀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다. 더하려 하지도 않고 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반짝이는 것에 만족하면 되는 일이다.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를 더 드러내려고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화근이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곳에서 자족할 수 있으면 된다. 풀꽃이 환한 빛으로 반짝인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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