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이의 양평 산골에서의 텃밭 농사 거들기-3회



드디어 때가 됐구나…. 기뻐해야 할 주말, 그런데 한숨부터 나오는 건? 황금 같은 내 휴일ㅠㅠ… 아무리 속으로 울어봤자 소용이 없다. 오늘은 양평을 가는 날이다.
짐을 싸기 위해 다소 일찍 퇴근했다. 이번 주말엔 어버이날이 끼어있어 집에 가는 길 카네이션을 살 예정이다. 그런데 이 찝찝한 물방울들은…. 비다! 방사능이 섞여있을 지도 모르는 비.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나는 아주 쫄~딱 물에 빠진 생쥐 신세가 돼야 했다.
그래도 중간에 카네이션을 사는 일은 잊지 않았다. 사실은 비도 피할 겸 어디에라도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집에 다와 갈 쯤, 동네에 자주 가는 꽃집이 있다. 그냥 조화나 꽃다발보다는 오래 키울 수 있는 화분이 실용적일 것 같아 카네이션 화분으로 선택.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화분을 고르고 난 뒤에도 비는 그칠 생각을 안했다. ‘이왕 맞은 김에 빨리 가버리자.’ 한쪽에 화분을 안고 냅다 뛰었다.
“헉헉; 다녀왔습니다.” “….” 아무도 없다. 아차, 오늘 엄마가 외할머니 댁에 갔다. 어버이날을 맞아 외할머니도 양평에 모시고 갈 생각이다. 숨도 돌릴 틈 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방사능에 산성까지 섞인 비를 맞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씻어내야 한다.==;
샤워를 끝내고 짐을 쌌다. 날이 따뜻해진 만큼 가방도 가벼워졌다. 오늘따라 아빠도 늦고, 엄마도 안 온다. 흠… 조금만 쉬자. 침대에 눕는다. 몇 분이 지났을까? 엄청난 빗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 나는 도대체 잠과 무슨 악연이 있는 걸까…. 텔레비전이나 보자. 안방으로 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삑삑삑. 현관문 잠금 버튼 소리가 들리고 아빠가 왔다. 그리고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할머니와 엄마가 왔다.
얼른 짐을 싸서 양평으로 출발. 아까 못 잤던 잠을 차안에서 벌충하기로 했다. 아니, 그냥 골아 떨어졌다는 말이 더 맞겠다.^^
잠에서 깨어보니 어느 새 양평 집 마당이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고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마당의 잔디가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있다. 오늘은 부지런히 짐 나르는 것도 도왔다. 할머니가 오셔서? 뭐 그런 이유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번엔 어버이날도 끼어 있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
짐을 정리한 뒤 엄마는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아빠는 ‘역시나’ 외할머니와 술을 한 잔 드시며 담소를 나눴다. 할 일 없는 나는 양평에서 즐겨하는 일을 했다. 바로 텔레비전 보기.^^; 워낙 서울에서 늦게 출발한 탓에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이 날은 아무 일 없이 바로 잠을 청했다.
여지없이 뒤늦게 일어난 아침. 할머니와 아빠, 엄마는 민들레며 쑥을 캐러 다니느라 바쁘다. 꼭두새벽 할머니가 뒷산에 다녀왔고 아침 식사를 한 뒤엔 엄마, 아빠까지 같이 나섰다. 이번엔 앞산으로 간단다. 할머니는 무척 즐거운 표정이시다.
나중에 돌아온 세 분의 손과 어깨에는 엄청난 양의 민들레와 쑥이 담긴 보따리가 들려있다. 나도 뭔가 도와드리고 싶었다.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 오늘은 삼촌과 외숙모도 오신단다. 그리고 아직은 두 살도 안 된 귀여운 동생 예지도 함께 말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근처에 흑염소 고기를 먹으러 갈 생각이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 삼촌과 외숙모가 오셨다. 예지는 못 본 사이 더 예뻐졌다. 역시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것 같다. 마치 쑥처럼…. 속 쌍꺼풀이 깊게 자리 잡은 또랑또랑한 눈과 오물오물 거리는 작은 입이 너무나도 예뻤다.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고기를 먹으러 신나게 출발! 몸매를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되지만 무척이나 고기를 사랑하는 나. 대한민국 사람 중에 고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하하^^; 아무튼,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식당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마을 뒤편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가기로 했다. 30분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즐겁기만 하다.
한참을 걷는데 할머니가 자꾸 뒤처지신다. 걸어가는 길, 길가에 지천으로 자라난 쑥과 민들레를 또 캐시느라 바쁘시다. 하하. 할머니 전 고기가 먼저라구요~.ㅠㅠ 돌아오는 길에 천천히 캐자며 자꾸 늦어지는 할머니를 재촉해 식당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엄마랑 아빠가 읍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알아놓은 곳이라는데 꽤나 좋다. 돼지랑 소는 많이 먹어봤어도 흑염소는 처음이다. 새롭기도 하고 약간은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우선 직원의 추천으로 구이와 전골을 시켰다.
음식들이 나오고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했다. 와우! 정말 맛있다. 부드럽고, 냄새도 안 나는데다, 가격까지 싼 편이라고 했다. 다소 적은 양만 빼면 정말 최고!!
배불리 고기를 먹은 뒤 졸려서 자꾸 떼를 쓰는 예지를 재우려고 안고나왔다. 잠깐 봐주시던 할머니는 들어가 마저 식사를 하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선한 바람이 불고 예지는 금방 잠이 들었다. 공기 좋은 곳에 오니 잠도 잘 오나보다. 시간이 흐른다. 다소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탓인지 팔이 아파온다.(다음날 오른 팔에 알이 생겼다;) 식사를 마친 외숙모가 예지를 받아 들었다. 휴~ 이제야 살 것 같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는 길 할머니의 취미, 아니 특기가 돼버린 민들레와 쑥 캐기에 돌입할 생각이다. 몸이 좋지 않으신 할머니가 드실 1년치 쑥떡을 만들려면…. 쑥과 민들레는 사방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길가에도 뽕나무 밭에도. 온 가족이 모두 쭈그려 앉아 저마다 쑥을 캐기 시작했다. 다리가 저려올 즈음 일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손끝에 쑥물이 들어있다. 좀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래도 괜히 뿌듯한 기분이다.







할머니는 따온 쑥과 민들레를 씻어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물기를 꼭 짜서 빨랫줄에 널었다. 엄청난 양인데 엄마와 아빠, 삼촌, 외숙모가 순서대로 도와드리니까 금세 끝이 났다. 그동안 난 예지와 놀아주었다. 아직 2살도 채 안된 예지. 이제 막 기어 다니려고 팔다리를 바둥댄다. 날개만 있으면 곧 날아갈 기세다.(하하) 한참을 울지도 않고 조용히 잘 노는 예지가 예쁠 다름이다. 외동딸이고, 워낙 아기들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예쁜 아기들만 보면 힘든지도 모르고 불쑥불쑥 잘 안는다. 그래서 고모님들께선 “어려서부터 저렇게 아기 안는 걸 좋아하면 빨리 시집간다! 호호호”라며 놀리기도 하셨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예지도, 삼촌도, 외숙모도 떠날 시간이다. 오늘 낮 동안 한참을 애교로 즐겁게 해준 예지가 떠난다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다음엔 얼마나 더 커 있으려나? 예지를 위한 인형이나 하나 만들어볼까? 예지가 태어나고 얼마 안돼서 작은 인형을 만들어 주긴 했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에 나의 개성을 너무 담아서 그런지 아빠의 별로라는 지적. 이번엔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빠가 감탄하고 예지가 좋아할 만한 인형을 만들어 줘야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아빠와 엄마, 할머니가 안 보이신다. 또 쑥을 캐러 가셨나. 잠시 뒤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물론 손에는 쑥 보따리를 들고. 아빠와 엄마는 읍내에 나갔다 오시는 길이라고 했다. 차에는 오늘 심을 각종 모종들이 빼곡하다. 고추부터 참외, 딸기, 가지, 토마토, 기타 등등의.
아빠, 엄마와 함께 바로 텃밭작업에 들어갔다. 고추 모종은 비닐종이를 씌워놓은 밭이랑에 가지런히 심어졌다. 고추가 많이 자라고 옆으로도 많이 퍼지는 종이라서 모종마다 약 40cm 이상 간격을 두고 심어야 한다고 했다. 심다 보니 사온 모종이 남아 일부는 따로 떨어져 대파 옆 빈 공간에 심어졌다. 불쌍한 넘들….^^;
가지 여섯 그루와 토마토 다섯 그루는 비닐을 씌우지 않은 밭이랑에 두 줄로 심어졌다. 토마토 모종의 일부는 키가 작은데도 벌써부터 꽃을 틔워낸 것도 있다.
참외는 텃밭의 맨 가장자리에 간신히 세 그루가 심어졌다. 산수유나무 바로 아래 그늘진 곳이라서 잘 자랄지 모르겠다는 아빠의 얘기. 부디 잘 살아서 노랗고 달콤한 맛을 선사해주어야 할 텐데….



참외와 마찬가지로 세 그루가 심어진 딸기 모종은 살 때부터 일부 꽃이 피어있고 열매도 열려있다. 아빠는 딸기의 경우 줄기가 넓게 퍼져나간다며 모종마다 상당한 여유를 둔 채 두릅나무들 아래에 심었다. 특이한 점 한 가지. 약간 깊게 판 구덩이에 설탕을 집어넣고 흙을 살짝 덮은 뒤 딸기 모종을 심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딸기가 잘 자라고 맛도 달다”는 아빠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 뒤늦게 종묘상 아저씨가 알려주었다는 얘기가 조그맣게 덧붙여진다. 어쨌든 머지않아 수확도 가능할 듯하다.
한참을 작업하던 아빠 입에서 나온 한마디 “야, 이거 땅이 모자라네∼!” 내가 봐도 욕심을 좀 많이 부린 것 같다. 그 조그마한 땅에 25가지가 넘는 작물들이 빼곡하게 심어졌으니. 그런데 중요한 건 아직도 심을 게 남아 있다는 사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수박과 고구마 그리고 오이와 수세미 등이다.
어쨌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텃밭 풍경이 신비하기만 하다. 씨앗들은 전부 싹을 틔워냈다. 열무, 얼갈이배추, 우엉, 적상추와 꽃상추 비타민채, 청경채 싹 등은 너무 빽빽하게 자라나 시간이 날 때마다 솎아주고 있다. 물론 솎아낸 싹들은 때론 무침으로, 때론 나물로, 때론 국거리로, 때론 비빔밥의 재료로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내리는 비와 부는 바람,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일만 남았다.
참, 지난주까지 ‘대공사’를 했던 내 화단의 꽃씨들도 싹을 틔워내고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아직은 좀 작지만 땅을 뚫고 올라와 잎을 내미는 모습들이 신기롭기만 하다. 다음 주에 오면 훨씬 더 자라있을 듯하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중 제일 보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정다은 기자 panda1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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