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개발광풍 속 철거민들> 도림동 철거민들을 찾아서

하루 종일 우르릉 쿵쾅 집 부수는 소리가 심장을 울려댄다. 괴물의 울부짖음, 죽을 지경이다. 최후 통첩장이 날아왔다. ‘철거.’ 두 음절의 글자가 가슴에 박힌다. 자칫 이대로 있다간 포클레인 삽날에 산채로 매몰되는 소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야 하는데…갈 곳이 없다. 가야 하는데…. 용산참사 2년이 지났다. 포클레인 굉음은 그치지 않는다. 개발광풍 속 철거민들의 오늘이다. 지난 호 내곡동 헌인가구단지 철거민에 이어 이번호엔 영등포구 도림동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어겨도 되는 지침, 왜 만들었나”

“철거는 2010년 12월부터 했다. 1~2월 사이 80~90% 다 부셨다. 겨울에 철거 못 한다고 하지만, 그런 지침은 어겨도 된다고 하더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침은 왜 만들어놨나. 이건 뭐, 국민들 우롱하는 거 아니냐.”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16구역은 현재 대부분 건물이 철거되고 주택 재개발 기초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사업 과정에서 재개발조합과 철거업체가 이주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가게와 건물을 막무가내로 철거해 논란을 빚고 있다. 15가구에 해당하는 철거민들은 재개발조합 측의 ‘낮은 보상금 책정’을 비난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서울 도림동 제16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은 도림동 일대 5만3378m² 구간에 8개동의 아파트 단지를 짓는 사업으로 2009년 12월 31일 관리처분인가가 났다. 철거는 삼오진 건설이 맡고 있다. GS 건설이 시공사다.



이곳 ‘도림 제 16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구간’에 있는 상가에 2003년 7월부터 8년째 세 들어 저울 가게를 해온 장승순 씨는 최근 날벼락 같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난 2월 7일 설을 쇠고 난 뒤 가게에 들렀더니 2층짜리 상가 건물이 통째로 헐려 있었다. 장 씨의 가게에 보관 중이던 저울부품과 금형틀 등 약 3000만원 어치의 물품도 온데 간 데 없었다.
장 씨의 가게는 지난해 8월 감정평가에서 1100만원 정도의 보상금만 책정됐고, 그는 건물 철거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장 씨는 재개발조합을 찾아 ‘무단 건물 철거’에 항의했지만, 조합 쪽은 책임을 회피했다. “건물주가 ‘건물이 비었다’는 공가확인서를 써줘 철거한 것일 뿐”이라는 게 조합 쪽의 대답이었다.
“건물 주인한테 따졌더니, ‘조합이 서류를 작성해야만 이주비를 대출해줄 수 있다’고 해 아무 생각 없이 써줬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철거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
장 씨는 자신의 가게가 입주한 건물이 헐리는 동안 철거업체, 조합, 집주인 어느 누구로부터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왜 용산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고 올라가 싸웠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지역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해온 정기택 씨도 지난해 12월 세 들어 있던 1층짜리 건물이 느닷없이 철거되는 일을 겪었다. 간판 재료와 에어컨 등 약 1500만원 어치의 물품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2000년 11월부터 이곳에서 영업을 해온 정 씨도 보상금이 만족스럽지 않아 철거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는 재개발조합에 가서 항의했지만 “월세가 7년 간 밀려 있었고 건물 역시 조합의 소유로 넘어와 철거는 정당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 씨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과 재개발조합장 김모 씨에 대한 형사고발을 계획하고 있다.
재개발조합 쪽은 “정 씨 건물의 경우, 기존 건물주의 동의를 얻어 영등포구청에 (건축물 철거를 위한) 멸실 신고를 했고, 정씨는 월세가 밀린 상태에서 건물을 무단 점유해왔기 때문에 철거에 문제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주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거치지 않고,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용산참사를 겪은 뒤 2009년 5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제49조에서 ‘손실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건물에 대해서는 세입자 역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리면 그저 맞아야”

‘도림 16구역 재개발 상가 비상대책위원회’ 정동훈 위원장(제조업)은 “명도소송에서 조합이 승소하지 않은 이상 엄연히 세입자에게 합법적인 사용 소유권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철거는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입자가 작성해야 할 ‘공가확인서’를 집주인에게 대신 받고 세입자에게는 어떤 통보도 하지 않은 채 건물을 철거한 조합장은 건조물침입죄와 재물손괴죄 혐의로 고발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건물이 헐린 세입자들은 빈 건물이 아닌데도 재개발조합의 건축물 멸실 신고를 받아준 영등포구청에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구청이 멸실 신고 과정에서 꼼꼼히 공가확인서 등을 검토했어야 하는데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구청은 지난달까지도 세입자 동의 없이 건물이 마구 철거된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건축법상 건물주가 멸실 신고를 해오면 접수해주는 것일 뿐 구청이 정말 건물이 비었는지를 확인하고 접수할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 구청이 법을 위반하고 멸실 신고를 접수해준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해 철거민들의 재산피해를 막았어야 했다.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여전히 지자체 공무원들이 안일한 인식을 하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에 동의하지 않은 주민들의 건축물이 함부로 철거되는 일은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정 위원장은 “2008년 상도동과 2009년 아현동 재개발 사업 때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2011년에도 똑같은 일이 도림동에서 벌어졌다”며 “서울시에서 행정지침을 마련해 건축물 멸실 신고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제철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정 위원장은 “철거 과정에서 용역들이 때리면 그저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철거민들은 특별한 대책이 없다. 다치면서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 때리면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처음엔 용역 애들도 불쌍하게 보였다. 지들도 위에서 시키니까 일부러 저러겠지 했다. 그런데 오히려 때린 놈이 맞았다고 고소를 하더라. 코뼈 다쳤다며 3주치 입원통지서를 끊어 왔더라. 다른 곳 가서는 실실 웃고 다닌다고 하더라. 우리 입장에선 어떻겠나. 그런 악감정이 쌓이면 인간이 어떻게 되겠나. 죽음도 불사한다. 용산참사 보면서, 처음엔 우리들도 철거민들 욕했다. 그런데 우리가 막상 당해보니까 왜 그런 참사가 벌어졌는지 이해가 가더라.”
조합 쪽은 철거민들과의 보상 협의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 철거민들이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조합장 얼굴을 본지도 오래다.  



“조합장은 도망 다니고 있다. 그래서 보증금도 못 받았다. 조합에서 지급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남의 돈인데도 자기들 마음대로 지급을 안 해주겠다고 한다. 70만원이라는 강제집행 비용을 핑계 삼아 1000만원 상당의 보증금을 당장 못 받도록 조치해놓은 것이다. 사실 보증금을 받더라도 갈 곳이 없다. 나가서 살려면 최소한 3000~3500만원 정도의 이주비용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전월세 대란이지 않나.” 
철거민들은 투쟁 과정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이들의 생활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다. 정 위원장은 “15가구 철거민 모두 비슷한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저만 하더라도 6식구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 보험 들어놓은 것은 다 해약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최소한 법적 제도가 있을 줄 알았다. 토지관련 절차를 믿었다. 뭔가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더라. 인간 취급도 안 해주더라. 용역과 경찰, 기업, 구청 모두 한 패거리더라.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이다.”



정 위원장은 “꼭 화염병을 던지고 시위를 해야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강제 철거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절규, 하지만 싸워야 할 대상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도림동 철거민들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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