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헤르브란트 바커르/ 옮긴이 신석순/ 문학과지성사
반평생 동안 쌍둥이 동생이 살았어야 하는 인생을 대신 산 헬머. 그의 삶이, 미지에 대한 동경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샴쌍둥이라도 되어 한 몸이 되고 싶었던 동생과 함께 보낸 나날들은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의 인생마저 빼앗겨버렸다. 반쪽짜리가 되었다고 느끼면서 수십 년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니…… 그렇지만 이 책은 슬픔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을 대신하여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산 한 남자의 삶을, 그의 상념을, 그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원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까지.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송하는 ‘그곳은 평화롭겠지’는 초록 잔디밭과 물, 새 그리고 고랑과 호수를 메운 얼음판, 소, 양, 고분고분한 당나귀 두 마리, 또 어느 뿔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그 자연은 인간을 외로움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농부가 되고 만 헬머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또한 미지에 대해 꿈틀대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비를 위층으로 `치우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헬머, 예전에 부모가 쓰던 방과 거실을 새로 칠하고 새 가구를 들여놓는다. 아비는 쌍둥이 동생 헹크를 편애했고, 그래서 동생이 아비의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 아비의 뒤를 잇는 운명이 헬머를 덮친다. 헹크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문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헬머는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대신해 농장에 남는다. 364면/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