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서해바다 그리고 어머니

바다를 바라보며

서해의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다. 초록 빛깔의 바닷물이 밀려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저 도도한 물길을 가로 막을 이는 그 어디에도 없다.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갯벌이 드러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이 빠진 갯벌은 삭막하다. 그러나 물이 출렁이는 바다는 꽉 차있으면서도 여유가 넘쳐난다.



이 땅이 처음 열리고 난 뒤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서해바다. 수억겁 동안 변함없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고 힘이 되어준 바다다. 우리의 조상들이 보아왔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보아온 바다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일까? 출렁이는 물결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현재다. 현재는 한 순간이다. 순간은 지나고 나면 과거가 되고 만다. 과거는 지나가버린다. 나의 삶과는 멀어진다.



새삼 허망함을 절감하게 된다. 지각하는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각하는 것을 실재라고 믿으면서 탐진치에 젖어 욕심을 불태우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순간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등바등 하고 있다. 순간을 영원으로 착각함으로서 행복은 멀어지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그랬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박대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행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상도에서 찾아오는 보따리장수가 많았다. 그들 또한 살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여서 여관에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인심 좋은 민가에 찾아가 사정하여 하룻밤을 유숙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민간인 집에서 하룻밤을 자지 않는다면 그 경비를 감당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우리 집은 초가삼간이었다. 우리 집 식구가 살아가기에도 좁았다. 그러니 당연 다른 사람에게 잠자리를 내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바구니 장사꾼도, 상을 파는 장사꾼도, 가정용품을 파는 방울장사꾼도 모두다 환영이었다. 가난한 형편에 별식을 준비할 수는 없었지만 식구들이 먹는 식사를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었다. 어렸을 적에는 한 끼 굶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으니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불평을 늘어놓으면 어머니는 늘 웃었다. 나누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며 다독거려주었다. 그 때는 어머니의 그런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안다.



괴테의 말이 생각난다. 남에게 기쁨을 주고 그 곳에서 새로운 기쁨을 찾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가난 속에서도 나눔의 기쁨을 나눈 것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셨기 때문이리라. 어머니의 나눔 실천이 생활에 힘이 되고 활력이 된다는 것을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크고 깊은 삶의 철학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새삼 어머니의 사랑이 절실해진다.

바다를 보면서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를 깨닫는다. 지금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면 인생의 소중함도 알 수 없다. 지금은 순간이고 현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을 놓치면 인생을 놓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이 소중하다. 흘러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미래는 도래하지도 않았다. 흘러가버린 과거에 집착하거나 도착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면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나눔의 기쁨을 알고서 실천하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줌으로서 당신의 행복으로 여기신 어머니의 삶의 철학이 절실해진다. 욕심에 젖어 나눔의 기쁨은 생각도 못한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고 웃는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보면서 어머니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산채백반과 꽁보리밥

반찬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커다란 상 위에 이층으로 나열돼 있는 반찬들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한다. 군침이 돈다. 4열 이층으로 나열되어 있는 상 한 가운데에는 찌개가 4개나 자리를 잡고 있다. 된장찌개, 소고기 조림, 버섯 찌개 두 개가 펄펄 끓고 있다. 잘 차려진 산채백반 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발동한다.

은사님을 모시고 식당을 찾았다. 정읍시 내장사는 원래 산채백반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들러 산채백반을 먹지 않고 내장사를 구경하였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장사 산채백반의 맛을 보기 위해 음식을 시켰다. 왜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즐비하게 놓인 갖가지 산나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정도다.



맛을 보았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들이 혀끝을 자극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산나물들이 저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당귀의 독특한 향은 입맛을 자극한다. 음식이 아니라 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산나물의 별미에 푹 젖게 된다. 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것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나니, 미락의 진수를 즐길 수 있다.

혀끝에서 살아나는 미세한 맛들을 느끼면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던 어머니. 그럼에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루 한 끼 굶는 것은 다반사였던 그 시절이 새삼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에는 너무 참담하였던 그 시절이 왜 이렇게 그리워지는 것일까? 자랑스럽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그 큰 사랑이 절실해지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살림에 많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허덕였다. 수입은 제한돼있는데 식구는 많으니, 그 입을 다 채우기가 어려웠다. 물로 배를 채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 보리는 쌀에 비해 가격이 아주 저렴하였다. 찰보리가 아니라 겉보리는 더욱 그랬다. 겉보리로 밥을 하면 색깔이 아주 까맣게 된다. 밥알을 입안에 넣으면 씹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밥알들을 속절없이 씹어야 하는 일은 비극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서 씹지도 않고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한여름엔 먹을 수밖에 없었던 꽁보리밥. 때문에 처마 밑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놓은 바구니에는 꼭 꽁보리밥이 담겨 있었다. 파리가 많은 여름이라 바구니에 담아 놓지 않으면 보관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때에는 왜 그렇게 파리나 모기가 많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바구니에 꽁보리밥을 담아 처마 밑에 달아놓으면 그나마 안전하였다. 꽁보리밥을 물을 말아 먹으면 목이 막히곤 했다. 그럴때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먹으면 아삭아삭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꽁보리밥조차 배불리 드시지 못하였다. 자식들 때문이었다. 자식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어머니는 아끼고 또 아낀 것이다. 그 때에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지 못하였다. 단지 왜 이렇게 우리는 가난한 것이냐고 불평을 늘어놓기 바빴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먹였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지금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으는 것이 남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하였던가? 먼 산을 보아도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파란 하늘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내 가슴에 살아있다. 그 때에는 알지 못하였지만 나이를 먹고 아버지가 되어보니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진실한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채백반을 앞에 두고 어머니가 지어주신 꽁보리밥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산채백반을 이제는 얼마든지 어머니에게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 눈물이 흐른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군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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