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할레드 알하미시/ 옮긴이 허진/ 열린책들
작가가 택시에 타는 순간, 택시는 교통수단이 아닌 재기 넘치는 만담의 장으로 변한다. 택시 기사들의 솔직하고 풍자적인 재담은 생계유지의 고단함부터 아이들 교육 걱정, 정치 현안까지 망라한다.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 찬 이집트 사회지만 작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은 구석이 너무도 많기에, 할 말은 하고 사는 그들의 조롱 섞인 농담과 독설은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힘든 상황을 유머와 여유로 버무려 현실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그들만의 방식 또한 더없이 유쾌하다. 적나라한 현실을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우화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처럼 시종일관 허를 찌르는 유머 덕분이다.택시 기사 58명이 화자가 되어 인생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 ‘택시’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택시’는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는 이집트 작품이다.
작가 할레드 알하미시는 카이로를 누비는 택시에서 만난 기사들의 목소리를 58편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온갖 사연을 가진 기사들을 속도감 있게 마주치는 ‘택시’의 지루할 틈 없는 구성은, 마치 카이로의 혼잡한 거리에서 택시를 바꿔 타며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택시’는 이런 기발한 형식 외에도 2011년 이집트 혁명의 배경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1월, 이집트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이집트 혁명의 불꽃은 중동, 아프리카 다른 지역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택시’는 이러한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집트 민중의 진짜 속사정을 담으며 더 이상 부패할 것도 없이 썩어 버린 부조리한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택시 기사들의 목소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된 일상을 사는 우리들의 평범한 삶을 은유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혁명전야의 날처럼 위태로운 이집트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내는 자화상인 셈이다.
224면/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