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꼬마애가 묻는다, 나는 너니? 어때? 잘 모르겠다!
저 꼬마애가 묻는다, 나는 너니? 어때? 잘 모르겠다!
  • 승인 2011.06.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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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예쁜 여자


카페에서 하는 대화는 대개 가벼운 것들이다. 그 날도 친구와 함께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 저 여자 예쁘다, 하면 내가 어디 어디? 두리번거리고, 은근히 가리키는 눈빛 끝에 앉은 여인네를 결국 발견해내면 와 정말, 혹은 눈은 폼이냐 따위의 반응을 하면서 시시덕거리는.
그런 대화는 대개 왜 예쁜 여자는 많은데 잘생긴 남자는 드물까하는 푸념으로 흘러간다. 그럼 곰곰이 생각한다. 분명 미남과 미녀의 비율이 태어날 때부터 다른 건 아닐 거란 말이다. 그렇다면 단지 착각인가. 당장 카페 안에도 몇 명의 미녀들이 눈에 띄는데 반해, 그만큼 잘 생긴 남자들이 없는 것만 보더라도 착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덥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사뭇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 비슷비슷한 비율로 태어나서 여자들은 후천적으로 예뻐지곤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대체 어떻게?
친구의 입에서 대번에 성형이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더 많이 하니까, 덧붙이며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답의 키를 찾았다는 듯. 우리나라에 성형 미인이 많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씁쓸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미녀가 미남보다 흔한 유일한 이유라고 보기엔 개운치 못한 구석이 있다.
그게 다는 아닐 거야, 다시 곰곰. 선천적으로는 미녀가 아닌 스펙으로 태어났다가, 후에 미녀가 된 사람들이 많은 이유. 친구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낸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남자들 보단 많이 꾸미니까 그런 게 아닐까?
대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의 경우에는 암컷보다 수컷이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것들은 대개 수컷이고 수수하고 투박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면 거의 암컷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경우만큼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화려하고 예쁘게 치장한다. 치마와 하이힐, 머리모양, 화장, 핸드백, 향수…….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여자로 사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예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다지 많이 꾸미지 않고 청순하고 수수한 여자가 더 좋다며 반론할지 모르지만, 그런 여성을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라. 그리고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보시라. 그 여성은 화장기 없는 전지현인가, 아니면 현실 세계의 쌩얼 여자사람인가.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면 청순하게 예쁘기 힘든 현실이다. 갖은 스킬로 화장을 한다 해도 미녀가 되기 힘들 지언데, 민낯으로 수수하게 예쁘기는 사실 꾸며 예쁘기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다. 꾸미지 않은 청순한 여자가 좋다는 건, 꾸미지 않아도 청순하게 예쁜 여자가 좋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란 말이다.



타고나지 못한 죄로 나 역시 바쁜 아침 쪼개 그 좋아하는 잠 줄이고 얼굴에 몇 가지 필히 찍어 발라줘야 행인들 보기 죄스럽지 않으니 화장이 없었다면 참말 어쨌을 뻔 했는가 싶은 사람 중 하나다.
스물, 파릇파릇한 때부터 어설프게 시작한 화장은 이제 제법 연식이 붙었는지 꽤 능숙해졌고 내 얼굴에 어울리는 화장이 대강 어떤 모습인지 어렴풋 감을 잡기에 이르렀다. 매 시즌마다 패션처럼 유행하는 화장 스타일을 어느 정도 수용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의 화장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어디에 무슨 제품이 그렇게 커버력이 좋다더라, 어디에 무슨 제품 색깔이 참 예쁘더라, 삼삼오오 모이면 이런 얘기로 열을 올리곤 한다. 지금도 저기, 카페에 앉은 몇몇 여성들이 그런 얘길 하고 있다. 어머 얘 이거 립 색깔 되게 예쁘다 어디 꺼야?
화장술이 발달해감에 따라, 실제 얼굴과 외출모습이 극명하게 다른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외출해서 만난 사람들의 실제 얼굴을 가늠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화장 전 후로 극명하게 변신하는 어떤 여자의 UCC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도 그 동영상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화장만으로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그 동영상 밑에 달려있는 리플들의 대부분이 여자들 화장 무섭다는 반응이었고, 그중 일부는 저렇게 화장을 잘 하다니 부럽다고, 그리고 또 나머지는 저게 자기 얼굴인가 하며 비난하는 댓글이었다. 솔직히 무섭긴 했다. 이건 조금 예뻐지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변장, 아니 완전 CG수준이니 말 다 했지 않은가.
내 친구 중에도 화장한 얼굴은 자기 얼굴 같지가 않다며 화장하길 꺼리는 친구가 있다. 내가 우리 같은 범인들은 화장기 없이 다닌다고 절대 청순하지 못하다며 그렇게 뜯어말려도, 가짜 같은 느낌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아이라인을 그려 눈이 커 보인다면, 실제 내 눈 크기를 속이는 느낌이라나. 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 자기도 이상한 거 아는데 싫은 건 싫은 거라고 말하곤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은 아니지만 황소처럼 큰 눈에, 약간 처져 순한 인상을 가진 이 친구는 까무잡잡한 피부색만 아니라면 꽤 봐줄만 한 여자다. 피부톤 보정만 조금하고, 살짝살짝 가벼운 화장만 해도 굉장히 예뻐 보일 텐데.
내가 부득불 우겨 억지로 화장품 몇 개를 구입하고 나서야, 친구는 대학 신입생이나 할 만한 가벼운 화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아이라인과 색조화장은 싫다는 친구를 두고 나는 별 수 없이 알았다고 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다. 화장을 지우고 나면, 아이라인이 지워진 눈매가 영 허전해 보이곤 한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내 순수한 얼굴이 더 없이 미워 보일 때면 씁쓰레한 기분을 숨기기 힘들다. 눈도 너무 작고, 피부도 너무 더럽고, 뜯어봐도 예쁜 구석 하나 찾을 수가 없다. 분명 나도 어딘가 한 구석은 예쁠 텐데 말이다.
어렸을 땐, 얼굴에 로션하나 바르지 않고서도 예쁜 아이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도 어색하지 않게 웃을 수 있어 예쁜 아이었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 난 정말 찐빵같이 생겨서, 종종 옛날에 날 알고 계셨던 어른들을 뵙게 되면, 신영이 정말 많이 예뻐졌구나! 하며 깜짝 놀라시곤 한다. 짱구같은 눈썹, 햇빛에 그을려 까무잡잡하다 못해 반질반질 빛나는 이마, 빵글한 볼살에 촌스러운 홍조까지. 내가 봐도 어린 나는 그닥 귀엽지 못하다.
그렇지만 나는 웃는 모습이 예뻤다. 얼굴이 촌스럽다거나 예쁘지 않다거나 하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그냥 나는 나라는 것을 애쓰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환하게 웃는 내 모습에, 날 아시는 어른들은 이 예쁘지 못한 꼬마애가 웃는 것을 참 예뻐해 주셨다.
책상 앞에 걸려 있는 액자에, 꼬마시절의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예쁘지 않은 꼬마다. 제멋대로 짙은 눈썹과 웃느라 볼살에 밀려 작아진 눈이 웃기다. 그렇지만, 웃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지금도 나는 물론 잘 웃는다. 무표정한 얼굴보다 웃는 낯이 내게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내 얼굴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웃는 얼굴을 익숙히 새겨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남들 앞에서 꼬마 때처럼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빨간 장미꽃과 함께 웃는 꼬마애가 묻는다, 나는 너니? 어때? 잘 모르겠다.
예뻐지고 싶은 건 모든 여성들의 소망이다. 조금이라도 더 예뻐질 수 있다면야 아침잠 정도야 가벼운 대가에 속한다. 칼날이 생살을 째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맛있는 음식 앞에서 허벅다리를 찌르는 것, 땀 뻘뻘 흘리면서 러닝머신을 달리는 것, 화장품을 사는 데 월급의 반이 깨지더라도 주저치 않는 것, 발가락이 휘어지더라도 하이힐을 고수하는 것, 매 시즌 바뀌는 패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패션잡지마저 공부하는 것, 짧은 치마로 걷기조차 힘들어도 아등바등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 어떻게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얻는 아름다움이다. 또 그만큼, 이런 것들이 철갑처럼 여성 자신의 본질 위에 덕지덕지 드리운 건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의 껍질 밑에 숨긴 것이다. 내 진짜를.
예뻐지고자 하는 것을 탓하고 싶진 않다. 나도 그 소망이 어떤 건지 절절하게 알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여자’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예쁘지 않은 여자’에게 어떤 가혹한 시선이 던져지는 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더욱 더 예뻐지려는 발버둥의 반복으로, 내 본질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추하지 않다. 예쁘지 않을지언정, 추함은 아니다. 본질은 아름답다. 자신의 민낯, 그 순수한 모습을 마주할 때만큼은 세속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예를 들면 커다란 눈이나 오똑한 코, 깨끗하고 흰 피부-등을 벗어나 정말 본질적인 내면과 그 내면의 발로로서의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아이라인이 지워진 밋밋한 작은 눈이 정말로 아름다운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마치, 꼬마 박신영이 못난 얼굴로 웃고 있는 것이 정말 예쁜 것처럼 말이다.
여자들이 예뻐지는 그만큼, 무장이 해제된 자기의 민낯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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