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승인 2011.07.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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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짓뭉개진 삶…그 삶을 어루만져주는 온정들

리어카 옆 맨바닥에 털퍼덕 주저 앉아 있던 남자가 다시 일어났다. 자신이 흩뿌려놓은 가지의 잔해들을 치우는 어르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던 그 남자가 다시 일어났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도로 한복판으로 나왔다. 이미 해는 낙산 고개 너머로 떨어진 뒤였다. 어둠이 밀려왔다. 인근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저마다 발길을 재촉했다. 리어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리어카 위에 실려있는 고추와 가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발길에 채이는 가지의 잔해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지의 잔해들을 사방에 흩뿌려놓은 리어카 주인에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갈 길만을 바삐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복판으로 나온 가지 파는 남자는 어르신의 빗자루를 벗어나 도로 위에 남아 있던 가지의 잔해에 비틀거리는 무거운 발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짓밟기 시작했다.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행인들이 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말리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 눈길만 주고 피해갈 뿐이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행인들의 무관심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대한 항거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의 바지춤을 주섬주섬 내리기 시작했다.
"저 눔, 또 사고치려고 하네…."
잠잠하던 익산떡, 한마디 했다.
익산떡이 얘기한 `사고`는 화자도 이미 목격한 일이다. 이 남자 얘기를 시작하면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다. 도로에 `실례`한 전력이다.
"야이눔아, 그만 안해!"
익산떡의 단말마가 골목길을 울렸다. 가지를 치웠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남자의 행동이 멈춰졌다. 바지춤을 붙잡은 채로 고개를 수그린 채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화자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막걸리 소리만이 귀청을 때렸다. 
그때였다. 한 아주머니가 리어카로 다가갔다.
"아저씨…장사 안해요?"
낯이 익은 아주머니였다. 바로 리어카 근처에서 남편과 함께 횟집을 꾸려가는 아주머니였다. 그 횟집, 길레스토랑을 드나들기 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다. 계절별로 나오는 온갖 횟감들을 파는데 가격도 쌌다. 회무침이 특히 인상에 남아 있다.
멍∼하니 서 있던 남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리어카로 황급히 되돌아갔다. 얼굴에 미소가 잔뜩 번져 있었다.
잘 아는 듯 아주머니에게 농담을 걸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고추를 달라고 했다. 남자, 리어카 한쪽 귀퉁이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꺼내더니 고추를 가득 담았다. 돈이 건네졌다.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 횟집으로 되돌아갔다. 남자 역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익산떡이 웃고 있었다. 가지를 쓸어담던 어르신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일행으로 보이는 또 다른 아주머니 3명과 중년의 남자 1명이 리어카로 다가갔다. 이들 역시 고추와 가지 등을 샀다. 남자는 덤까지 얹어주는 선심을 베풀었다.
"혼자 사는 사람인가?"
익산떡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서 사는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디야."
"아직 결혼은 안했대요?"
"저렇게 맨날 술에 쩔어서 사는 데 결혼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익산떡 한마디 덧붙였다.
"사람은 참 착하고 좋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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