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1억6000만원 들여 이곳에 일터 열었는데 1000만원 준다고 나가라고?”
“9년전 1억6000만원 들여 이곳에 일터 열었는데 1000만원 준다고 나가라고?”
  • 승인 2011.07.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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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성지’ 명동서 벌어지는 재개발과 철거 투쟁

“재개발이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거대한 권력과 자본으로 뭉쳐 철거 투쟁을 가로막아 왔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비리로 얼룩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잘못된 것을 이번 명동에서 제대로 파헤쳐 사회 변화의 이정표를 제시했으면 한다.”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선정된 서울 도심의 한복판 명동 3구역.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 11명이 용역들의 등살에 못 이겨 쫓겨났다.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옛 중앙극장 옆 커피점 ‘마리’에 눌러앉아 농성 중이다. 현실적인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시민사회와 연대투쟁하고 있지만 상황이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다.
홍대 앞 ‘작은 용산’으로 불린 칼국수집 ‘두리반’ 철거 문제가 지난달 8일, 농성 531일 만에 해결됐다. 향후 철거민들의 투쟁에 새로운 불씨가 될 듯싶었다. 그러나 철거문제는 다른 곳에서 여전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서울의 한복판 명동에서 벌어지는 사태도 마찬가지다.


“쫓겨난 사람들 아예 장사 접어”

“다른 곳을 가려고 해도 권리금이 발목을 잡는다. 재개발, 최소한 원주민들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한 다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3구역 분식점 주인 김정희(42) 씨는 지난 6월 4일 명도집행을 당했다. 실제 이미 떠난 세입자 중 상당수는 장사를 접고 다른 일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보니 더욱 이곳을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재개발 시행사에서는 10개월치 월세인 1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준다고 했지만 이 돈으로는 다른 곳에서 가게를 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9년 전 명동에서 분식집을 열 때 들인 돈만 해도 인테리어비와 권리금을 포함해 1억6000만원이었다.”
현실적인 보상금을 요구하며 버티다 결국 ‘알몸’으로 자신의 가게에서 쫓겨났다. 김 씨의 성토는 이어졌다. 
“세입자들을 이불로 싸서 밖으로 던졌다. 기자들까지 강제로 밀어냈다. 그럼에도 사과할 생각을 안 한다. 오히려 세입자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시행사 대표의 인식부족이다.”
재개발 바람이 불고, 하나 둘 가게들이 사라지면서 명동의 시장성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점심시간만 되면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요즘은 발길이 많이 줄었다.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다. 건물 벽마다 색이 진한 스프레이로 철거한다는 낙서를 해놓고 다니니까, 사람들은 이미 철거 된 줄 알고 아예 발길을 돌린 것이다. 지금은 4구역 상인들이 울상이다. 도로 전면에 있는 3구역이 이 모양이 됐으니, 안쪽에 있는 4구역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멀쩡히 장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미 철거된 줄로만 안다.”
김 씨는 억울한 심정에 집기가 철거된 건물 앞에 텐트를 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상인들과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달 14일 좀 더 안정적으로 농성을 하기 위해 커피점 ‘마리’로 농성장을 옮겼다. ‘마리’ 역시 철거 대상 가게로 온전한 형태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냥 이대로 장사할 수 있게…”

19일에는 20여 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몰려와 유리로 된 농성장 문을 해머로 깨뜨리고 집기를 모조리 부셔버렸다. 농성장에 여성들도 있었지만 용역직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짐짝처럼 들어다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화장실에 있는 세면기와 용변기도 해머로 부셔버렸다.
현재 명동 3구역 일대 가게들 내부의 집기들은 모두 철거된 상태다. 나머지 2구역과 4구역도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다. 이곳은 국민은행과 기업은행, 대우건설 등이 지분을 투자해서 만든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이 24층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 재개발을 강행하고 있는 곳이다. 명동성당 인근 대부분의 상가들이 포함된다.
농성중인 11개 점포의 상인들은 4월 8일과 6월 4일, 용역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자신이 일하던 가게에서 쫓겨났다. 애초 명동3구역에는 30여 개의 점포가 있었으나 농성 중인 11세대를 제외하고는 시행사와 합의를 한 뒤 이곳을 떠났다.



명동에서 23년 동안 ‘낙원화랑’을 운영해온 배재훈 명동3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은 “이곳을 떠난 상인들은 적게는 370만 원에서 많게는 1400만 원 정도를 받고 떠났다”며 “하지만 이 돈을 가지고는 다른 어디를 가더라도 장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청, 시행사 등과 접촉해 봐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상인들은 지난 3월 부랴부랴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는 최근 중구청 국장급 간부와 시행사쪽 간부가 함께한 자리에 나갔다. 대책위 배재훈 위원장은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얘기하더라”며 혀를 찼다.
“교섭 기준이 법의 잣대다. 그런데 세입자 입장에선 법 기준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우리는 당장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생명보다 중요한 법이 어디 있는가. 시행사 대표는 그저 사법적 판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11세대는 두리반이 합의했던 것처럼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사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20일 만난 시행사 사장은 우리가 건물을 무단 점거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협상은 하지도 못하고 10분 만에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욕심을 부린다고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지금 이대로 그냥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그게 욕심이라면 욕심인가보다(웃음).”


“살만한 우리 사회, 문제는 가진 자들”

지난달 초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은 시행사를 상대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두리반의 승리는 명동 3구역 세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배 위원장은 “두리반에서 투쟁했던 사람들이 명동에 집결했다”고 말했다.
“두리반의 승리로 많은 이들이 연대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두리반에서 활동했던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생들도 명동을 찾아 연대하고 있다. 문제는 시행사와 구청이다. 이들에게도 인식의 전환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 법의 잣대는 여전하다. 갑과 을의 관계로만 나누다 보니 협상에 있어 진전이 없다.”
배 위원장은 두리반과 명동의 문화가 투쟁을 통해 접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리반은 오랜 세월 동안 싸워왔다. 그래서 거기에 있었던 노하우들이 이곳에 접목되고 있다. 동시에 명동만의 아이디어가 접목돼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투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즐기며 공유하고 알리고 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투쟁하기로 했다. 예전의 방식들 지양하고 새로운 투쟁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투쟁의 터지만 동시에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 배재훈 명동 3구역 세입자대책위원장은 “이곳을 떠난
상인들은 적게는 370만 원에서 많게는 1400만 원 정도를
받고 떠났다”며 “하지만 이 돈을 가지고는 다른 어디를
가더라도 장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좋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성금을 주고 가기도한다”며 “이처럼 우리 사회, 아직 살만한 사회다. 문제는 가진 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의 폭력성도 지적했다.
“문제는 용역이 폭력적인 점에 있다. 세입자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우리는 먼저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세입자, 시민들은 비무장 비폭력자들이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긴장해야 한다. 24시간 긴장해야 한다.”
“4월과 6월, 용역에 저항하다 다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힘으로, 트위터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비폭력 투쟁을 원칙으로 한다. 학생, 시민단체, 노동자들이 함께 한다. 명동에는 명동성당이 있고 향린교회가 있다. 상징적인 곳이다. 우리는 문호를 다 개방하고 있다. 이건 명동에 국한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재개발 전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다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현재 명동 3구역에선 두리반에서처럼 많은 음악인들과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용역이 침탈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일 저녁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마리를 찾고 있다. 얼마 전엔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지난달 19일 이곳에서 철거민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도 했다. 낮에는 일반시민들이 조를 나눠 이곳을 지키고 있다.
배 위원장은 “야간에는 이곳 농성장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온다. 그간 용역들이 언제 들어올지 늘 불안해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놓인다”며 “두리반이 500일 넘게 싸워 겨우 승리했다. 우리도 그렇게만 된다면 500일이든 1000일이든 버티겠다”고 다짐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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