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울 것이다, 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이 세상 떠나갈 듯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가…
그리울 것이다, 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이 세상 떠나갈 듯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가…
  • 승인 2011.07.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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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양평 산골에서의 텃밭 농사일 거들기-마지막 회



내 나이 18살. 뜻하는 바가 있어 1년을 다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바로 대학은 가야된다는 것. 지난해 6월 학교를 그만두고 나름의 시간을 가지면서 틈틈이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올해 3월 시험을 치렀고 고졸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장래 문제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결정했다. 그래 일단 올해 치러지는 수능시험을 준비하자.
문제는 어떻게 시험을 준비하느냐는 것. 혼자서 공부를 한다는 건 고교과정을 간신히 3개월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입장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 신문사 근처에 있는 재수학원들을 알아봤고 뒤늦게나마 등록을 하게 됐다. 행복 끝, 고생 시작!
수능시험은 채 몇 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 때문에 학원은 강행군의 연속이다.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와 학원에 도착한 뒤 7시30분에 수업 시작, 잠깐의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쉬는 날조차도 거의 없다. 일요일, 그것도 격주로 2주에 한번 밖에 쉬지 않는다.
매 주말마다 가던 양평에 갈 수 없게 된 건 물론이다.ㅠㅠ 당분간 양평 텃밭농사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없는 이유다. 이번엔 작별 이야기로 그간 양평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처음엔 양평에 내려가는 게 한편 싫었다. 유일하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주말 시간을 온통 빼앗겨버려야 하는 것도 그랬고, 개인적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샌가 군말 없이 아빠와 엄마를 따라나서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마 이 지면을 통해 양평 이야기를 소개하기 시작할 무렵일 것이다. 양평에 내려가기만 하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행동도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더구나 양평 생활을 하나하나 기사로 정리해 독자님들에게 들려드리려 하니 방안에만 있어선 도무지 쓸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좋아 다음부터는 밖에 나가서 아빠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도 보고 일도 열심히 거들자!’
한주, 한주 지나면서 텃밭에 나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최근 들어서는 텃밭 농사를 돕는데도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됐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정도. 허리 부러질 정도로 무거운 물통을 들고 몇 번이고 텃밭과 수돗가를 반복해 오가며 야채들에 물을 주는 내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설픈 ‘농부의 딸’ 정도는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서울에서만 살다보니 시골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아빠의 권유 아닌 권유로 아주 어릴 적부터 등산을 다니고, 또 한여름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며칠씩 걷기여행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양평에 내려오게 된 것 역시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이곳 일대 걷기여행을 하던 도중 우연히 이 집이 비어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빠의 제안에 엄마와 내가 동의, 집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작년 가을 시작된 양평행. 처음엔 낯설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꾸준히 다니면서 느끼게 된 깨끗하고 청명한 공기. 또 땀 흘려 밭을 간 뒤 뿌린 씨앗들이 고개를 내밀며 자라나고, 또 그걸 수확해서 먹는 과정까지…차츰 ‘농부의 딸’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툴고 어색했던 농사일의 시작이었지만 이제는 꽤나 능숙하게, 자그맣지만 알찬 텃밭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무척 잘 자라준 상추, 고추, 감자, 치커리, 배추, 가지, 오이, 열무, 양파, 쑥갓, 홍당무…. 또 아직은 위태위태하기만 한 고구마, 참외, 딸기…. 이 모두가 우리 가족이다. 내려갈 때마다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그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이곳에 방문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들를 수 있게 했다. 함께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텃밭에서 금방 따온 완전 유기농 야채에 삼겹살을 싸먹고 어두컴컴한 동네 산책길을 개구리 소리를 벗삼아 돌며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하지만 나의 편안한 주말을 방해하는 것 또한 양평이었으니…. 그 시끄러운^^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합창으로 들으며 잠이 들어야하고, 엄청난 양의 벌레들과 함께 방을 써야하며,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작은 냉풍기 하나에 온몸을 바쳐야 하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이제 가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이 약간은 기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소중했던 추억,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편안함, 아늑함이 이곳엔 가득하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고 흙에서 죽는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흙을 만져볼 기회가 많지 않다. 항상 ‘빨리빨리’를 추구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흙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흙과 함께해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요즘 흙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아파트나 빌라의 베란다에 자그마한 화단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 양평에서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이웃들의 모든 행동이,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는 점이다. 이웃들의 얼굴에서 근심과 걱정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연세가 많다보니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부분인데도 그저 한없이 여유롭게만 보였다. 그저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고 살 뿐인데도 세상을 다 가진 사람들 같이 행복해 보였던 것이다.





도시인들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기회인데 이렇게 잠깐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던데 한편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비록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더 깊이 알고 깨우치는 소중한 기회였다. 감자에 하얀 꽃이 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디가 까맣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끄러운 개구리 울음소리도 자꾸 듣다보면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불만투성이인 양평행이었지만, 이렇게 정리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로움, 사람들의 깊은 정, 흙의 소중함 등등 말이다.



그리울 것이다. 푸릇푸릇 자라는 새싹들이, 빠알갛게 익어가는 오디와 앵두가, 하늘을 가득 메운 채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세상 떠나갈 듯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이제 올 수능시험이 끝나면(아니 물론 그 중간 중간에도 한 번씩은 들르겠지만), 그리고 나이를 먹고 늙어서도 시골에 내려가 주름 깊숙이까지 새까맣게 탄 얼굴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감히.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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