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승인 2011.08.0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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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익산떡이 신문사에 들렀다. 오른손에 붕대를 맸다. 왼손엔 비타민 음료 상자를 들고 있다. 얼핏 봐도 상당히 격앙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어깨에 매고 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사진이다. 어느 다세대 주택이 담겨있다. 담장 바로 옆엔 커다란 크기의 나무도 보인다. 장례식장의 모습도 있다. 그 안에는 아직 한참을 더 살았어야 할 게 분명해 보이는 어느 망자가 세상을 지긋이 노려보고 있는 영정사진이 담겨 있다.
지난호에 잠깐 언급했던 익산떡의 형부다. 살고 있던 주택의 철거 문제로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은 셋방을 살고 있었다. 익산떡 얘기를 빌리자면 10여년 가까이 그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재개발 계획서와 이주 통지서. 법을 들이대면 할 말 없어진다. 파악된 바로는 어느 민간개발업체가 그 지역의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세입자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게 현행 법의 맹점이다. 집 주인들은 물론 보상을 받는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의 입주권도 받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몫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뛰어오른 전세비와 월세비. 기존 살던 곳의 전세금이나 보증금 등으론 어디가서 방 하나 구하기 힘든 게 요즘의 실정이다. 세입자들 입장에선 그냥 길거리로 나앉으라는 강제통첩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익산떡 형부 60대 중반의 나이다. 30여년간 택시운전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비록 고단한 셋방살이였지만 단란한 생활을 꾸려왔다. 그날, 그러니까 10월 28일 새벽 극단의 선택을 하기 전날에도 형부는 택시 운전을 했다.
익산떡 얘기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재개발 관련 사무실을 방문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형부는 자신이 10여 년간 보아온 담장 옆 커다란 나무 가지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익산떡 가방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화자에게 건넨다. 단 일곱줄로 쓰여진 형부의 유서였다. 유족의 허락을 얻어 여기에 공개한다.

『유서

구청이라는 곳이 도시계획을 이용, 건축회사와 단합하여
가진 자는 주민이고 집 없는 자는 노숙자나 잡초 인간으로 간주,
세입자의 보상 권리를 아주 무시해 버리는 공산사회주의 에서나
군부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회를 원망하면서….

2006.10.27 세입자 세대주 이○○』

가진 자는 주민이다…집 없는 자는 노숙자나 잡초 인간이다…. 가슴에 못 박히는 소리다. 집 없는 자는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회다. 나가라면 조용히 짐 싸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나갈 곳이 없다. 있는 자들이 그렇게 만들어놨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어놨다.
부동산 대책이 쏟아진다. 신도시가 쏟아져 나온다. 아파트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민들에게 집 마련해주기 위한 대책이란다. 그 아파트 서민들에게 언감생심이다. 있는 자들이 전부 산다. 되판다. 돈을 번다.
`세입자 세대주….` 가슴에 못 박히는 소리다. 이 시대 90% 이상을 차지하는 서민들. 그리고 세입자 세대주들. 이들이 가야 할 곳은 정녕 어디란 말인가.
익산떡 형부의 극단의 선택은 사실 극단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사회가, 이 정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필연의 선택일 수도 있다. 이 사회, 자꾸 그들 목에 올가미를 두르라고 한다. 뜨거운 여름, 조용한 쉼터를 제공했던 자신이 살던 집 나뭇가지에 목을 매라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뒤 재개발 사무실 근처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건설회사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용역경비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선심 쓰듯 장례비와 이사비 등을 주겠다는 제시를 해왔다고 한다.
익산떡 얘기 사무친다.
"언니가 형부가 목을 맸던 나뭇가지의 끈을 치우지 않고 있어…그렇게 치우라고 해도 말을 안들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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