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34 - ‘독립운동의 성지’ 효창공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엔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효창공원을 둘러봤습니다.




# 김구 선생 묘소


장충단 공원에 이준 열사와 사명대사가 있다면 효창공원은 김구 선생과 원효대사로 대표된다.
서울도심에 자리잡은 효창공원 자리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맞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어 효창원이라고 불렸다. 문효세자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숨졌다.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어머니인 의빈 성씨와 순조의 후궁 박숙의의 무덤도 있었다. 당시엔 묘역이 광활하고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엔 구용산고지라 불렸는데 일본군이 한 때 야영지로 삼기도 했었다. 경성부가 효창원의 일부인 8만여평을 공원 용지로 책정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것은 1924년 6월이었다.
이 역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이뤄진 정책의 일환이었다. 효창원이라는 이름도 이 때 효창공원으로 격하됐고 기존의 묘소들은 경기 고양시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됐다.




#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범 기념관과 좌상


‘성역화’ 목소리 한창

현재 효창공원을 둘러싸고 숙명여대와 한겨레신문사, 대한노인회 등이 자리잡고 있다. 평소에도 인근 주민들의 즐겨찾는 산책로이자 휴식터이지만 일제시대 항거한 민족정기가 서린 곳으로 더 유명하다. 사적 제330호 지정된 이곳은 그래서 독립유적지로 분류된다.
일제의 격하 시도가 계속됐지만 해방 후 공원 경내에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조성됨으로써 독립운동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최근엔 일제가 명명한 효창공원의 이름을 효창독립공원 혹은 독립공원으로 바꿔 성역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원의 북쪽 높은 동산엔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김구 선생 묘소 아래쪽으론 그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백범 기념관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역. 가장 왼쪽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비석이 세워져 있지 않다.


백범기념관은 1985년 독립운동가 정영국 씨 등이 국회에 기념관 건립 청원을 함으로써 탄생하게 됐다. 당시 청원서엔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등 각계 지도급 인사 81명이 서명했다.
1992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건립을 적극 추진하도록 지시했고, 2000년 6월 착공해 2002년 10월 준공했다. 2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백범 좌상을 중심으로 영상실, 동학 및 의병활동실, 구국운동실, 자주운동통일실, 서거와 추모실 등이 있다.

고귀한 넋 기리는 ‘의열사’

그 동쪽으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묘가 있다. 세 의사의 묘는 1946년 일본에서 송환돼 국민장으로 이곳에 안장됐다. 문효세자의 묘소가 있던 곳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 임시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묘소


# 이봉창 의사의 동상

1910년 용산에서 출생한 이봉창 의사는 일본에서 철공소 직원으로 일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키로 결심하고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이듬해인 1932년 1월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됐다. 같은 해 10월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 의사의 생가터 표지석이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인근에 세워져 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났다. 야학당과 ‘농민독본’ 등을 통해 민족 계몽운동을 하다 1930년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중국으로 떠났다.




# 효창공원에 묻힌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의열사

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승전기념식 및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천장절)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에 던져 2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군수뇌부 10여명이 크게 다쳤다. 자결에 실패한 윤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으로 압송돼 같은 해 12월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결에 실패한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으로 압송됐다. 당초 일본군은 윤봉길을 훙커우 공원에서 공개처형하려 했으나 자칫하면 국제적인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고 그로 인해 국제여론이 비등해질 것을 우려, 일본 내 처형을 결정했다.
전북 정읍 출생인 백정기 의사는 1924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기 위해 도쿄에 갔으나 실패하자 이듬해 상하이로 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농민운동에 투진했으며 자유혁명자연맹과 흑색공포단을 조직 대일투쟁을 전개했다.


# 원효대사 동상

1933년 3월 상하이에서 동지들과 중국 주재 일본대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고 모의하다 체포됐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34년 6월 옥사했다.
여기엔 유골이 없는 가묘가 유일하게 있는데 안중근 의사를 위해 남겨놓은 가묘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게 돼 국내로 운구될 경우 이곳에 공식 안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비석이 설치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한쪽에 마련된 의열사는 김구 선생을 비롯 독립운동가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평상시엔 문이 닫혀 있다.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

공원 정문 오른쪽엔 임시정부 요인들인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의 묘가 있다. 이동녕은 주석을, 조성환은 군무부장을 그리고 차이석은 국무원 비서부장을 지냈다.
충남 천안 출신인 이동녕은 독립협회 활동과 언론?계몽운동, YMCA 운동 및 을사늑약 반대운동 등을 전개했다. 1906년 북간도로 망명해 서전의숙을 세워 인재를 양성했으며 이듬해인 1907년 귀국해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다.


#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이었던 ‘효창운동장’

1910년엔 서간도로 망명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3?1 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을 조직하는 한편 임정의 의정원 의장, 국무위원, 주석 등을 역임했다.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1948년 김구 선생이 주선해 사회장으로 봉환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성환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군부를 개혁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항일 비밀 결사인 신민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1912년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의 만주시찰 때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 옥고를 치렀다.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에서 군무차장에 임명됐으며 만주 북로군정서에서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임정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광복군 창설과 활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1945년 환국해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1948년 서거했다.
차이석은 평북 선천 출신으로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신민회에 가입했으며 ‘105인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상하이로 망명한 뒤엔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약했다. 임시의정원 의원, 국무위원 등을 역임했고 한국독립당 이사를 역임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해 환국을 준비하던 중 중국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역시 김구 선생이 주선해 사회장으로 봉환됐다.





이동녕 등 임정 요인들

언덕 위쪽엔 어린이놀이터와 원효대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용산 인근에 원효로와 원효대교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연관성은 적어 보인다. 공원 아래쪽 효창운동장은 1960년 10월 문을 연이래 축구 육상 등 스포츠 경기가 자주 열렸고, 그 밖에 시민 집회 장소로도 종종 이용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전용 운동장이기도 하다. 요즘에도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운동, 레저 공간이다.
효창공원은 공원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찾는다면 교육 현장으로서도 1석 2조 이상의 효과를 얻지 않을까 싶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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