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감사에 대하여



우리 집 베란다 유리문에는 많은 시가 쓰여 있다. 예전에 내가 사온 물분필로 아빠랑 같이 쓴 것이다. 그중엔 각자가 좋아하는 시도 있고, 우리가 직접 쓴 자작시도 있다. 가끔 집에 처음 놀러 온 사람들은 우리 집이 굉장히 문학적인 집이라며 놀라곤 한다. 또 자작시를 읽어보기도 한다. 큰 소리를 내어 읽으면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민망하지만 한편으론 뿌듯하다. 밤이 되면 배경이 어두워져 하얀 글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한가로운 밤 거실에 있는 베란다 유리문으로 가서 여러 시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하나를 소개해볼까 한다. 박강수 시인의 ‘감사’다.

오늘에 감사하자 /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 두 손 모아 감사하자 /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 아직은 젊다는 / 이 하나만으로 / 두 손 모아 감사하자 // 또 하루 / 생명의 뜨락에 / 꽃을 피워 나가는 / 이 하나만으로 / 두 손 모아 감사하자

정말 제목 그대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시다. 가끔 내가 불행하다고 여겨질 때 우연히 이 시를 읽게 되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젊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정말 소소한 것 하나 가지고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들이 많으니 말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입는 욕심, 먹는 욕심 등 쓸 데 없는 것들이다. 옷이 많은데 항상 더 사고 싶어 하고, 집에도 반찬이 많은데 더 비싼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 욕심을 없애기 위해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을 해보려고 노력중이다.
얼마 전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음성 꽃동네를 엄마와 함께 갔다. 입구에는 몸이 불편하신 아저씨들께서 여러분 나와 계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덜컥 겁이 났다. 친구랑 서로 집에 가고 싶다며 소곤거리기도 했다.
우리는 할머니들이 계신 2층을 각각 한 방씩 맡았다. 처음 들어갔을 때 모두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몸이 불편하시다 보니 침도 흘리시고 해서 우리들에게 보이기 창피하셨을 텐데도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다. 
한분은 말을 심하게 더듬으시고, 한분은 계속 무릎을 잡고 앉아서 웃고만 계시고, 한분은 몸이 안 좋아 누워계시고, 한분은 내년에 갈 제주도 얘기를 반복하시고, 한분은 먹을거리에 대해서만 얘기하시고, 한분은 복지관에 갔다 오시고, 한분은 계속 돌아다니시면서 여러 면에서 부족한 나를 오히려 도와주시는 등….
할머니가 너무 이것저것 시키셔서 한편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할머니들께서 TV에서 방송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시는 동안엔 나도 모르게 앉아서 졸기도 했다. 처음엔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많이 헤맸지만 그래도 계속 웃으며 따뜻함을 안겨주셨던 꽃동네 할머니들이 너무 감사했다.
사실 살아가면서 감사할 일은 이렇게 굳이 찾지 않아도 어느 곳에나 있다. 이곳 분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 자체를 창피하게 여기신다. 하지만 자신들을 찾아와 봉사해주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렇게 사소한 일 하나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무리 없이 숨을 쉴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자.
정다은 기자 panda1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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