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36 - 서울 강남 도심의 천년 사찰 ‘봉은사’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서울 강남 도심의 한복판에 위치한 봉은사를 둘러봤습니다.


# 큰 도로에서 바라본 봉은사. 코끼리 상과 진여문을
지나야 한다.



서울 강남의 삼성역 부근.
코엑스를 비롯 우뚝 솟은 고층 건물들 사이로 온종일 오가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넓게 뚫린 도로 사이로 지나는 차량 행렬은 이 곳이 또 하나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아셈타워와 무역센터의 웅장한 건물 맞은편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전력이 있고 빨간 로고가 인상적인 현대산업개발 건물도 보인다.
이런 화려함 속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히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떠 올리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진리를 찾아가는 ‘진여문’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잡은 봉은사는 12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천년 고찰이다. 신라 원성왕 10년인 794년 연회국사가 창건했으며,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는 보우스님의 노력으로 불교 중흥의 주춧돌이 됐다.


# 칠월칠석을 앞두고 견우와 직녀 조형물이 세워졌다.


현재 코엑스 자리인 승과평에선 승려를 선발하는 승과를 실시했는데 유명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모두 이 곳에서 배출됐다.
조선후기엔 판전을 세워 화엄경 81권을 판각해 판전에 봉안했다. 당시 대학자이자 유명한 서예가인 김정희 선생은 봉은사에 머물며 추사체를 완성시켰다. 근대 들어 존립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영암스님의 노력으로 땅을 거둬들이면서 오늘날 2만평 가까운 대도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인터컨티넨털 호텔 맞은편으로 코끼리 상 두 개가 보인다. 마치 여기서부턴 성스러운 곳이나 옷깃을 여미라고 말하는 듯 싶다.
그 뒤로 음력 칠월칠석날 눈물 속에 상봉을 하는 견우와 직녀 상이 보인다. 불교에선 칠월칠석을 ‘우란분절(백중)’이라 부르며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새기고 극락행을 기원한다고 한다.
 



# 보통 무서운 표정의 사천왕상이 이 곳에선 온화하고
익살맞게 표현됐다.


사찰의 첫 번째 문을 보통 일주문으로 부르는데 봉은사는 ‘진여문’으로 부른다. 진여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 진여문 아래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된 사천왕상이 있다. 동서남북 각 방위를 지키는 봉은사의 사천왕상은 일반적으로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곳은 그렇지 않다. 온화하고 익살맞은 모습이 특징이다.
큰 스님들의 사리를 보신 부도와 탑비 등이 줄 지어선 부도전을 지나면 법왕루다. 문자 그대로 법의 왕인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는데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다. 3300분의 관세음보살 원불상을 앞으로 기도하는 불신자들이 하루종일 끊이지 않는다.
법왕루와 대웅전 사이 앞마당은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하다. 칠월칠석을 앞두고 부모의 극락행을 기원하는 마음이 푸른 여름 하늘을 수놓고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선불당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조선 중기 이후 승과를 실시하던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절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 봉은사 편액



# 부도전


# 법왕루


# 선불당

평일 낮에도 ‘불심 가득’

봉은사의 중심인 대웅전 앞 계단엔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용이 새겨져 있다. 기둥과 창호, 지붕, 추녀의 모습과 용마루까지 모두 한국 전통 목재 건축물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중앙에 있는 석가불과 양쪽의 아미타불, 악사여래불 모두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오른쪽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기자가 찾은 시간에도 많은 불신도들이 스님의 염불과 맞춰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 대웅전과 삼존불


봉은사에서 가장 전경이 좋은 곳인 영산전은 온후한 기도처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석가모니부처를 주불로 좌우에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7호)를 모셨다. 그 옆으론 16아라한(나한)이 옹휘하고 있는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돼 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북극보전은 다른 사찰에선 칠성각으로 자주 불린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하는 신으로 믿어왔다. 역시 칠월칠석을 맞아 주위를 빙 두른 복주머니들이 인상적이다. 7월 7일 견우와 직녀의 만남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의 별을 뜨게 하는 소망과 행복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곳의 칠성도 또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3호로 지정됐다.


# ‘우란분절(백중)’을 앞두고 대웅전 앞마당은
하얀 연등으로 가득하다.



영각을 지나면 높이 23미터의 미륵대불과 미륵전이 나온다. 미륵전 옆으로 있는 판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은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화엄경소초 등 3438점의 경판을 안치했다. 이 곳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라고 한다.
종루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이 있다.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을 시작할 때 사물을 친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한다고 한다.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영산전의 16 나한상


# 영각




# 미륵대불과 미륵전





# 편전과 김정희 선생이 쓴 편액



보우당과 공양간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작은 연못 가운데로 해수관음상을 만날 수 있다. 관음상의 손엔 감로수 병이 들려 있고 보관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연못은 극락세계의 연꽃이 핀 9개의 연못 중 하나를 표현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인간을 비롯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든 중생들의 고통까지 구원하는 자비의 화신이다.





# 사물인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

‘나를 찾는 여행’ 탬플스테이

봉은사는 이명박 정부가 불교계와 극심한 갈등을 보일 때 강북의 조계사와 함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만큼 한국 불교에서 지니고 있는 위상과 상징성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강남의 현대식 건물 속에서 자기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며 여유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장소다. 이를 위해 템플스테이와 템플라이프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무더운 여름, 멀지 않은 봉은사에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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