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소설 ‘낯익은 세상’을 읽고



‘낯익은 세상’의 주무대인 꽃섬은 쓰레기장이다.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넘쳐나는 이 세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쓰레기장,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물건들이 산을 이루는 진짜 쓰레기장이다.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쓰레기매립지인 이곳이 생활의 터전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꽃섬’ 사람들이다.
황석영이 그려내는 꽃섬(쓰레기매립지)과 거기에서 폐품 수집으로 먹고사는 빈민들의 생활풍속은 그 디테일이 풍부하며 상당한 박진감을 띠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도시로부터 내몰린 사람들. 그들의 야생적 삶을 그려내는 솜씨는 역시 황석영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한 주인공이랄 수 있는 소년 딱부리에게 꽃섬은 한편으론 빈곤하고 더럽고 삭막하기 짝이 없으나 다른 한편으론 경이로움이 가득한 성장환경이다. 비록 산동네이긴 하나 도시에 속해 있었던 딱부리는 어느 날 갑자기 쓰레기장이라는 도시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왔고, 그 속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조우하며 인간과 사회 학습의 길로 나아간다. 딱부리의 이야기는 학교교육과 대척적인 자리에 놓이는, 이성과 규율로부터 자유로운 자아의 성장을 예시한다. 
언뜻 보기에 대가의 따뜻하고 슬픈 동화 같은 ‘낯익은 세상’은, 꽃섬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보느냐, 딱부리의 경험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 전자의 관점을 택하면 소비의 낙원을 구가하는 문명의 이면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이 돋보이고, 후자의 시각을 취하면 최하층 사회 속에서 형성기를 보내는 한 소년의 학습과 각성에 관한 성장소설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황석영의 소설은 이미 학교 교과서에 게재돼있는 것은 물론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과도 만나보았다. 소박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황석영은 이번에도 ‘쓰레기장’이라는 작은 스케일 안으로 독자를 이끈다. 한국 소설은 그저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기자. 하지만 황석영의 소설만 읽으면 마치 책속으로 흡입되는 기분이 든다. 기자가 딱부리가 되고, 땜통이가 되고, 빼빼엄마가 되는 등 책을 읽는 동안 모든 상황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쉽게 쉽게 풀어써가는 황석영의 글 솜씨에도 절로 감탄이 난다.
낯익은 세상, 황석영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 되기가 어렵거나 어른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함,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 전원시적인 농촌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세계의 마법을 기억하는 동화적 이야기구조에 힘을 기울인다.
황석영은 늘 우리 곁에 있되 우리가 잊고 사는 그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마지막으로 가 닿은 그곳. ‘작가의 말’에 표제의 의미가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소박하면서도 강한 메시지, 아이들의 천진함을 느끼고 싶다면 ‘낯익은 세상’을 읽어보길 바란다. “역시 황석영”이라는 말이 나오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정다은 기자 panda1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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