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이 시대 서민들의 삶 녹록하게 묻어나는 익산떡 부부

왜 갑자기 익산떡네 부부타령이라고 누가 그랬다. 왜 변절했느냐고 또 누가 그랬다. 이 글을 보고 하는 말이다. 이 코너, 즉 `숭인동 길레스토랑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의 특성을 꼬집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전문에 나와 있듯 이 연재물은 익산떡네 포장마차(여기선 숭인동 길레스토랑이라고 칭하는)를 통해 서민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중간 중간 샛길로 빠져나간 적이 있음을 인정한다.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려던 곁가지가 몸통보다 더 굵어진 일이 빈번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한 번 더 변명하겠다. 그 샛길 역시 서민들의 그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곁가지도 물론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이거 익산떡네 포장마차 홍보해주는 글 아냐?" "별 의미가 없잖아!!"
화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만약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화자의 말솜씨 부족이다. 아니 어쩌면 화자가 익산떡에게, 익산떡네 길레스토랑에, 익산떡네 길레스토랑에 들르는 숱한 발걸음들에, 익산떡네 길레스토랑에서 사먹는 황금색 막걸리 맛에 너무 푸욱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더 변명하겠다. 여기서 소개하는 삶들은 모두가 서민들의 그것이다. 서민들이라고 막걸리에 소주잔만 기울이라는 법 있겠는가. 때론 그들 앞에 바다 건너온 시뻘건 액체가 놓일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론 그들 입으로 몇십만원짜리 랍스터 요리도 들어갈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왜냐, 서민들 역시 똑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똑같은 욕구를 가진 그래서 어쩌다 뒷걸음질치다 한 두 번 밟을 수도 있는 비싼 양주나 꼬냑에 몇십만원짜리 랍스터 요리를 거드름 피우며 먹고 마실 수 있는, 그런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 억지가 끼어들은 면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떡 부부 얘기는 좀 더 욕심을 부려야 하겠다. 왜냐? 그들 부부 살아가는 모습, 너무 애잔하기 때문이다. 그 애잔 함 속엔 결코 꼬냑을 마시고, 랍스터 요리를 먹고, 기름진 입가를 닦아내면서는 느끼기 힘든 깊은 즐거움이 있다. 깊은 웃음이 있다. 깊은 아픔이 있다. 깊은 감동이 있다. 깊은 서민들의 삶이 있다.
화자 솜씨가 부족해 그들 삶의 이런 것들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1%라도 표현해낼 수 있다면 만족한다. 사설이 길었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익산떡네 부부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혹 지난번 게재됐던 익산떡네 부부 얘기, 읽어보지 못한 독자님들은 위클리서울 인터넷신문(weeklyseoul.net) `문화마당`을 참조하면 된다. 먼저 읽어보고 이번 글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지난번에 익산떡네 부부 사이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겨나고 있다 했다. 한 사람은 윽박지르고, 다른 한사람은 허허 웃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뭐 별일 있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 달랐다. 최근엔….
익산떡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의 강도가 달랐다. 말 끝에 느껴지던 애잔함도 많이 사그라졌다. 그 애잔함 사그라진 말을 듣는 바깥 사장님의 표정도 달랐다. 허허…하는 웃음소리도 들을 수 없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진 게야…, 추측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막걸리가 몇 사발 비워졌고, 그러면서도 다른 때와는 확연히 다른 길레스토랑 안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해했고, 그 사이 바깥 사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익산떡네 부부간에 일어나는 심상찮은 기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글쓴이: 정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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