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이 노래 역시 동학농민혁명 전후 시골아이들이 새를 쫓으며 불렀던 노래인데 전봉준 장군의 키가 작고 성품이 곧으며 야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점을 비유하여 ‘녹두’라고 별명을 붙여 당시 민간에 ‘동학대장 전녹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답니다. 당시 ‘새야 새야’와 함께 널리 불려졌던 참요 하나 더 살펴보지요.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

어디인가를 향해서 바삐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이토록 미적거리다가 아예 병신 되어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크게 우려하는 내용이지요. 앞서서 참요란 예언이나 은어 암시 같은 표현방식을 쓴다고 했지요. 이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가보세’는 갑오년(1894년)을, ‘을미적’은 을미년(1895년)을, 그리고 ‘병신’은 병신년(1896년)을 의미하지요. 그러니까 이 시기에 농민군과 함께 새 세상을 만들지 못하면 영영 이 나라와 민족을 부패한 봉건정부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노래이지요.
아이들에게서 세대차이 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요즘 유행하는 가수들의 노래 한 곡 정도는 부를 줄 알아야 하지요. 그래서 비교적 따라 하기 좋은 노래를 하나 골라 열심히 배운답니다. 그런데 어찌나 빠르고 가사도 안 외워지던지…. 그래도 겨우 외워 더듬더듬 할 양이면 배우던 노래는 이미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버리고 새로운 노래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니 세대 차 극복은 물 건너 간 거지요.
정말 요즘은 노래의 생명력이 짧아진 것 같아요.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노래들도 불과 한 달도 못되어 잊혀진 노래가 되어 버리니까요. 그런데 보세요. 이 ‘새야 새야’란 노래는 백년이 넘어도 우리 할머니가 그 할머니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날에 이르는데 온 국민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요. 아마 여러분 또한 여러분 자식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할 거예요.

풍속화를 보면 조선사회가 보인다? 

조선후기 양반중심의 신분제도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한 단면을 풍속화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지요. 18세기 조선 화가 김후신(金厚臣: 생몰연대 미상)의 〈대쾌도(大快圖)그림〉를 보면 만취하여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인물의 표정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는데, 형색으로 보아 양반으로 보이지만 양반도 술에 취하면 모든 체면과 허식을 다 버리고 이렇게 엉망이 된다는 것을 풍자한 듯합니다.
또 다른 그림은 김득신(1754-1822)의 〈양반과 상민〉, 〈반상도〉, 〈노상알현도〉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진 풍속화입니다.
원래 옛날 그림에는 제목이란게 없답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화가가 그림을 그려놓고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럼 지금 불려지는 제목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요? 그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편의상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주로 그림의 내용이나 그림에 덧붙여진 싯구를 따서 이름을 붙이죠. 그러니까 아주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면 이름이 여러 개일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양반과 상민〉이라는 제목으로 소장돼 있기에 그쪽 이름을 따라 편의상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세태를 반영한 풍속화 중에서도 가장 신분계급의 격차에서 오는 실상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 친 양반과 상민(평민) 부부의 모습을 통해 한 눈에 보여주고 있지요. 그림은 거만한 표정으로 나귀 위에 앉아 있는 양반의 모습과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는 남편과 두 손을 모으고 막 절을 하고 난 후(또는 하기 전) 부인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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