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골프장 추진, 분노한 지역 주민들 시청 노숙농성 20여일

골프장 인허가 절차를 두고 강릉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지어야 할 바쁜 시기,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주민들은 논밭이 아닌 강릉시청 앞에 모여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인허가 절차에 강력히 항의하며 강릉시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년 여간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자의 토지적성평가서 임상도 반영의 적정성 ▲강릉시의 서류 조작 의혹 등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그러나 최명희 강릉시장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7․80대 주민들은 강릉시청의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서 지난달 18일부터 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벌써 20여일을 넘겼다.



“보상금 못 받고 모두 고향서 쫓겨날 수도”

지난달 18일 강릉시는 ‘강릉CC 골프장의 인허가 절차에는 문제가 없으므로 골프장을 추진하겠다’는 일방적 입장을 밝혔다. 이후 주민들은 행정의 공정성과 주민과의 약속마저 져버린 최명희 시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최 시장은 인허가권자로서 50여 공무원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규정위반과 공문서 조작, 이에 항의하는 지역주민과의 약속 일방적 파기, 거기에다 의혹투성이 불법 인허가 골프장 강행까지, 억울한 지역주민들은 강릉 시청 앞에서 노숙하며 항의를 시작했다. 여전히 강릉시장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지역주민들에게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노숙 농성이 시작된 지 14일 만에 시청 앞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항의하는 주민들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골프장이 만들어지면 식수 오염 및 지하수 고갈 등이 불가피하다. 주민 조모 씨는 “골프장 잔디 제초제를 살포해 지하수 오염으로 식수가 오염될 것”이라며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다보니 각종 농산물도 오염될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주민들은 또 한 부락에 해당하는 20여 가구의 마당 앞까지 골프공이 날아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민 박모 씨는 “우리 동네는 다른 골프장 주변과 달리 각 가구들이 골프장 경계와 인접해 있다”며 “골프공이 바깥까지 날아가는 걸 감안하면 골프장 주변에서 농사짓는 곳까지 공이 날아와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실제 인접하지 않았더라도 슬레이트 지붕이 뚫린 경우 등이 흔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단 측에 집단 이주 등을 요청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박 씨는 “강릉 시장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사업이어서 사업단이 기고만장하고 있다”며 “보상금도 못 받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고향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민 김모 씨는 “최 시장이 우리를 피하는 이유는 단 한 하나다. 인허가 문서를 조작해 주민들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라며 “공정성, 규정준수 따위는 막가파식 개발논리에 밀린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주민과의 약속보다는 불·탈법 인허가를 추진한 골프장이 중요할 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 씨는 “지역주민의 억울함만 남고 생태계 훼손만을 불러오는 골프장 사업을 이렇게 진행해도 되는 것이냐”며 “주민 상당수가 농민인데 가을 농산물도 재배하지 못하고 이렇게 거리로 나섰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골프장이 공익시설? 법 규정이 문제

골프장 건설과 관련된 이해하기 힘든 법 규정도 문제시 되고 있다. 현행법상 골프장은 ‘공익시설’로 규정돼 있다. 때문에 관련법에 따라 시행사가 사업부지의 80%를 확보하면 나머지 20%는 땅 주인의 반대에도 강제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골프장이 공익시설에서 빠지기 전까지 골프장 사업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 분명하지만 그 사이 주민들의 원성은 커져만 가고 있다. 윤도현 주민대책위원장은 “골프장이 어떻게 공익사업일 수 있느냐”며 “사기업 골프장이 들어와서 시에서 허가해줬다는 조건으로 토지 강제수용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골프장은 더 이상 공익시설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러나 내년까지 현행법을 유예하도록 결정하면서 당장 관련 피해를 구제하거나 앞으로 진행 중인 사업의 횡포를 막을 길이 없어졌다.

지난 4년 여간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자의 토지적성평가서 임상도 반영의 적정성 ▲강릉시의 서류 조작 의혹 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지만, 최명희 강릉 시장을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9월 9일 학수고대했던 최 시장과의 공개 면담이 이뤄졌다. 공대위는 강릉CC의 토지적성평가서 임상도 반영 과정의 문제 등에 대해 국토해양부와 LH공사에 질의하기로 했다.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양측이 함께 하는 실무회의에서 적정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달 14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강릉시와 강릉CC 공대위가 실무회의를 진행한 결과, 강릉시는 LH 공사와 국토해양부에 대한 질의를 추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강릉시는 국토해양부의 질의 답변서라며, 강릉CC 사업자가 국토해양부에 질의한 결과를 주민들 앞에 내놓기도 했다.

이에 주민들이 항의하자 배석한 강릉시 공무원은 지역주민들에게 “토지적성평가 임상도의 작성 기준 시점을 확인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는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지난 2009년 국정감사 때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질의를 받은 뒤 보낸 회신에서 “강릉CC의 임상도 적용은 적법하지 않으며 그 책임은 강릉시장에게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상도 조작해놓고 일방적으로 우겨”

산림청은 나무의 나이를 기준으로 10년마다 한번씩 임상도를 만든다. 나무의 나이를 10년 기준으로 산정해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이때 나무의 나이가 41~50년생 이상, 5영급 이상이 될 경우 골프장과 같은 개발 행위는 불가능하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필요한 오래된 숲을 지키기 위한 과정인데, 골프장의 개발을 위한 인허가 과정 중 토지적성평가 과정에서 이를 검토하게 돼 있다.

토지적성평가 과정에서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임상도를 사용한다. 임상도는 10년마다 작성되므로 임상도 작성 이후 반영되지 못한 현재까지의 나무 나이를 합산해 토지적성평가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강릉CC 사업자는 1997년에 작성된 산림청 4차 임상도를 두고, 1986년에 작성된 3차 임상도를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자는 1986년 이후 늘어난 소나무의 나이도 반영하지 않은 채 골프장 개발 대상지의 나무 나이를 산정해 강릉시에 제출했고, 강릉시는 이를 승인한 상태다.

‘강릉CC 반대 공대위’ 조승진 위원장은 “1986년에 30년생 소나무였다면 25년이 지난 지금, 소나무는 50년생 이상 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토지적성평가 기준에 따라 50년생이 넘은 소나무로 가득 찬 구정리는 골프장 사업대상지에서 당연히 제외돼야 한다”며 “또 이를 검토하는 강릉시도 강릉CC의 토지적성평가서를 통과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주민들은 강릉시가 1986년 작성된 토지적성평가 임상도를 2010년 작성된 것처럼 조작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임상도 등 기초자료의 작성 시기는 토지적성평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강릉시는 토지적성평가의 기초자료 체크리스트에서 DB기준 시점을 2010년으로 일괄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강릉시는 DB기준 시점이 임상도가 제작된 년도가 아니라, 사업자가 토지적성평가서를 제출한 시기라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며 “장정 한 사람이 두 팔을 뻗어 안아도 한아름에 품지 못하는 소나무는 구정리 뿐 아니라 강릉의 자랑이다. 골프장 사업자와 강릉시는 구정리의 금강소나무 나이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주민들은 시장과 약속을 한 바 있다. 임상도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맞다면 사업을 취소를 할 것이고, 시의 내용이 맞다면 추진할 것이란 약속을 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그 약속을 어기고 있다. 임상도면이 문제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우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혀를 찼다.

한편 강릉시 한 관계자는 “LH공사의 경우 필요에 따라서 사업과 관련한 권장사항이 있다”며 “공사 측에서 86년 임상도를 권장했고, 강릉시는 거기에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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