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선비는 없고 양반만 있다

그렇다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좌절된 동학농민혁명의 꿈, 다시 말해서 전봉준과 조선 민중들이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들은 수 천년동안 내려온 불평등한 신분제도를 바꾸어 양반이나 관리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농민대중이 중심이 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세상을 이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평등(내가 보기엔 아직도 불평등한 요소가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 때에 비하면)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그 당시 농민대중들이 받던 불평등한 처우를 잘 모르고 있지요. 당시의 눈이 아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잘 안되거나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그 당시에 태어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연 어떤 신분이었을까요? 나는 오랫 동안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쳐오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답니다. ‘여러분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신분이었을까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양반’이라고 대답하지요. 다시 ‘그럼 난 어떤 신분이었을까요?’ 역시 아이들은 입을 모아 ‘상놈’이라고 하며 마구 웃는답니다. 물론 내가 유도해낸 답이지요.

그때부터 난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그래 난 ‘상놈’이었을 것이다. 아니 상놈으로 태어났기를 바란다. 양반이랍시고 손에 물 한방울 안 적시고 흙 한번 만지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천시여긴 ‘상놈’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것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양반들보다는 정직하게 하루하루 땀흘려 일하고 부족하나마 그것으로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런 ‘상놈’이고 싶단다.

평소 땐 가장 나라를 생각하는 척 하며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 무리 지어 싸우다가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백성들을 등지고 가장 먼저 도망치는 ‘양반’들보다는 인간대접도 받지 못했던 이 땅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의병’으로 나섰던 미련한 ‘상놈’이고 싶단다. 그런 ‘양반’과 ‘상놈’ 중 누가 진정한 나라의 주인인가?”

어느새 아이들은 내 얘기에 빠져들고 우린 ‘상놈’으로 불리는 ‘천민’의 입장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예로부터 ‘선비’란 학문하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양반’이 주는 ‘상놈’과 대비되는 신분적 명칭이 아닌 문화적 명칭이지요. 그리고 그 ‘선비’가 학문을 하는 목적은 경세(經世), 즉 언젠가 세상을 경영하며 스스로 학문을 통해 새긴 뜻을 펼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몸을 먼저 갈고 닦아야 이를 바탕으로 타인을 위한 경륜을 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선비’란 명칭에 종종 붙는 수식어가 있지요. 바로 ‘대쪽같은’이란 단어랍니다. ‘선비’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즉, 앎과 삶이 따로 놀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엔 이런 ‘선비’는 보기 힘들고 양반만 있었답니다.

강아지 복구에게도 벼슬을 주고 벼슬 값을 독촉하다 
 
갑오년 이전 당시 전해 내려오는 실화 하나 소개하지요.
충청도 바닷가 강씨 집안에 늙은 과부가 하나 살았는데 살림은 다소 여유가 있었지만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이름을 복구(福狗)라고 하였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가 복구를 부르는 과부의 목소리를 듣고 그만 과부의 아들로 착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그 나그네는 손색을 밝히고 과부댁에 강복구(姜福九)라는 이름으로 감역(監役, 조선시대 선공감에 속한 종9품 관직으로 궁궐·관청의 건축과 수리공사를 감독하였다) 벼슬을 강제로 떠맡기고 그 벼슬 값으로 돈을 요구하게 되자 과부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손님께서 복구를 보시겠소?” 하고는 소리를 내어 복구를 크게 부르니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습니다. 이에 나그네는 멋쩍은 웃음을 남기고 돌아갔답니다. 이로 말미암아 충청도에는 개 감역이 있게 되었다고 하니 다른 일들은 미루어 짐작이 가지요.

그럼 이토록 조선후기 양반사회가 부패 타락한 원인은 무엇이고 그 모습은 어떠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조선건국이래 국가가 안정되고 문화발달의 최고 전성시기는 세종∼성종의 시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이하여 조선 사회는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