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승인 2011.11.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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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깨끗한 척 하던 실, 결국 바늘 따라가다?

익산떡네 부부 바늘과 실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늘 따라가는 실이 아니고, 실 따라가는 바늘이라고 했다. 익산떡 위세가 더 세다는 얘기다. 그런데, 딱 한 번 전세가 역전될 때도 있었다. 실이 바늘을 따라 간 일도 있었다는 얘기다. 바로 지난 주 언급했던 사행성 게임장과 관련해서다. 차차 얘기 보따리 풀기로 하고….
사실 사행성 게임장 열이면 열, 다 잃는다. 따는 사람 못봤다. 어쩌다 한 번씩 왕건이를 터트리기도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그놈의 왕건이는 미끼다. 한 번 걸려들면 옴쭉달싹 못한다. 오늘은 왠지 꼬옥 딸 것 같은 느낌…그 왕건이의 추억이 촉매제다. 그 때의 짜릿했던 기분에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찾아가고, 또 그렇게 잃어대는 것이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행성 게임장 뿐 아니다. 경마장도 마찬가지다. 이곳 숭인동에 위치한 두 개의 경마장 장외발매소, 말꼬리 잡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자주 근처를 지나 다니다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한 번 왔던 사람들이 또 오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왕건이 큰 놈 한 방을 노린다. 매끈하게 빠진 말의 꼬리를 붙잡느라 쾡한 눈을 빛낸다.
익산떡 바깥 양반은 사실 좀 다른 경우다. 그리고 화자가 보기에 중독이나 뭐 그런 용어를 갖다 댈 정도로 심각한 편도 아니다. 몇차례 간 것이다. 그리고 처음 그곳을 찾게 된 사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익산떡이 가스통 들고 `항거`해서 얻어낸 쉼터가 있는 상암동에서 일터가 있는 이곳 숭인동에 나오는 시간은 보통 늦은 4시경. 바깥 양반이 운전해주는 하얀색 봉고차가 이동수단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화자의 사무실 창으로 익산떡 일터가 있는 주차장을 내려다보면 정확히 4시면 하얀색 봉고차가 들어와 세워진다. 물론 당장 길레스토랑 문을 여는 건 아니다. 사전 준비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 안주부터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는 게 익산떡의 얘기다.
그리고 5시30분 경이면 길레스토랑을 열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익산떡 큰 소리 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바깥 양반과 함께 포장을 치면서 매 번 소요가 일어난다. 바깥 양반이 `허허허…` 멋쩍은 웃음을 짓게 하는 소요다.
길레스토랑이 완공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0여분. 그 다음 익산떡은 가스불을 켜고, 불 위에 홍합이 가득 들은 커다란 양푼을 올리고, 이날 팔 안주거리들을 전시용 냉장고에 진열한다.
바깥 양반은 기름 난로를 켜고, 탁자와 의자를 배열하고, 길레스토랑 안을 밝혀줄 전기선을 연결시키고, 화자의 목을 축여줄 막걸리를 사온다. 
이쯤되면 영업을 위한 작업 끝. 그리고 슬슬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익산떡 바빠진다. 바깥 양반 한가해진다. 왜냐고? 익산떡 도와서 서빙이라도 하면 될 거 아니냐고? 맞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 불행히도 익산떡이나, 바깥 양반이나 둘 모두 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따로 서빙하는 걸 도와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길레스토랑 안에는 바깥 양반이 앉아 있을 만한 곳도 없다. 기껏해야 바로 옆에 세워둔 하얀색 봉고차 안인데, 그것도 한 두시간이지….
한동안 바깥 양반은 길레스토랑이 완공되고 나면, 운동을 하러 나갔다. 바로 인근에 있는 청계천이다.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종로 쪽까지 쭈욱 걸어서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바깥 양반의 이마는 온통 땀으로 젖었다.
그런데 어느날 바깥 양반이 운동을 중단했다. 청계천으로 향하던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바로 게임장이다. 바다이야기 광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처음엔 익산떡도 이해를 했다. 길레스토랑 영업이 끝나는 새벽까지 아무 하는 일 없이 익산떡을 기다려야만 하는 바깥 양반의 사정이 워낙 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의 돈을 쥐어주기까지도 했다. 시간 때우다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본인이 직접 바깥 양반과 함께 게임장에 간 경우도 있었다. 이게 바로 실이 바늘 따라 간 일이다.

<글: 정서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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