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벌, 벌, 벌과의 한철: 열여섯 번째


# 별장부지



대부도 입도 사흘째, 관광을 나섰다. 다리 건너 영흥도에도 가보고, 요트 경기장에도 가보고, ‘한국의 나폴리’리라 해서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수많은 중장비가 동원되어 꽤나 오랜 기간 공사를 했다는 개발 현장에도 가서 한참씩 앉았다가 섰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식의 관광 아닌 관광을 했다.

산 하나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지고, 거대한 바위가 다이너마이트로 깨져서 바닥에 깔리고, 나무들이 베어진 자리에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고, 해안가의 전망이 괜찮다 싶은 곳마다 계단식 택지가 조성되어 있고, 컨테이너 박스를 실어다가 내려놓고 분양사무실로 썼던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도처에 택지분양이며 땅상담 등의 입간판이 선 채로 썩어가는 풍경들이 뭐라고나 할까. 쓸쓸하고 황량하다. 아니 재미있다.

이거 괜찮다, 싶으면 그대로 두고는 못 보는 개발지상주의자들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렇다. 쓸쓸하고 황량하게 재미있다. 누군가는 돈푼이나 만졌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돈푼이나 날려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체불임금도 숱하게 발생했을 것이다. 분양만 다 되면 노다지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있는 돈에 없는 돈까지 끌어들였다가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바닷물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사람도 두셋쯤은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한국의 나폴리’였을까. 은근 짜증이 난다. 짜증스럽다고 생각하고 나니 화도 난다. 이런 빌어먹을 인간들, 어쩌고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자니 후배 녀석이 옆에서 한 말씀 추임새를 넣고 나선다.



# 달랑 한채 지어진 별장부지


“아따 형님도 참 에너지도 많은갑소. 나폴리든 뭐든 신경 쓸 거 뭐라요.”

“넌 저걸 보고 승질도 안 나냐. 한국의 나폴리? 이것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나는 기분 참 상말로 엿 같다. 한국의 어디어디라고 하면 쪽 팔리냐? 아니면 나폴리를 한국에 들여오겠다는 것이냐? 것도 아니면 한국의 어디어디를 나폴리에 팔아먹겠다는 수작이냐?”

“얼래, 참 나, 참, 벌이라도 쏘였소? 어째서 펄떡펄떡 뛰고 난리라요?”

“생각해봐라. 먼 훗날 여기가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되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응? 아마도 이런 인간들이 오렌지를 어뤤쥐라고 해야 옳다는 둥으로 사람을 자꾸 자기 식으로 개종 내지 가르치려고 하는 인종들일 것이다. 안 그러냐?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 동네의 고인돌도 한국의 스톤헨지라고 이름붙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미칠 지결일 것이다, 안 그러냐? 그런 얼빠진 사대주의자들이 우리 자신들을 아무 까닭도 이유도 없이 초라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거지같다고 여기게 만드는 거다, 안 그러냐?”

“애국가나 부릅시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우리나라 만세에.”

뭐라고 할까. 후배 녀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무슨 애국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예민해져 있을 뿐이었다. 꿀벌이 집에 꿀이 없으면 날카로워져서 아무에게나 달려들어 침을 박고 죽어 버리듯이, 우리는 그렇게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고, 시빗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랬다. 대부도의 아카시아 꽃에도 꿀은 들어 있지 않았다. 있기는 있지만 평균치에서 한참 멀어져 있었다. 하루를 지켜보고, 이틀을 지켜봐도 벌들이 물어오는 꿀이란 저희들 먹을 양식에서 살짝 웃도는 정도일 뿐이었다. 설탕을 먹여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하지 않기만을 바래야하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관광을 해도 관광이 아니었다. 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도처에 횟집이다 뭐다 해서 어서 오시라고 손을 까불어대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가난뱅이들이었다. 낚시나 잘 한다면 해변에 쭈그려 앉아 횟감을 스스로 건져 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쪽으로는 또 엉망진창이어서 꿈도 꿔볼 수 없었다. 신통하게도 우리는 다같이 낚시에 취미는커녕 소질이 없었다. 고창에서 온 양봉원 사장은 혹시 어떨까 해서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낚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저 여기저기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헤매고 다니는 것밖에 없었다. 기분이 그렇다 보니 좋은 것은 안 보이고 눈에 거슬리는 것만 보이는 것이었다. 멀쩡한 산을 자르고 깎아서 택지를 조성했으면 집을 지어야지 이게 무슨 흉물이냐. 바닷가 전망 좋은 곳이랍시고 밀고 깎아서 별장부지라 이름을 붙였으면 별장을 짓든가 해야지 이게 무슨 벌거숭이냐. 이래놓고 한국의 나폴리라고? 아나, 나폴리다 이놈들아.

사실 그것은 누가 봐도 인상을 찡그릴 만했다. 멀쩡한 산을 자르고 깎아서 흉물을 만들어놓은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부도와 영흥도 두 섬 구석구석이 그렇게 잘려지고 깎여져 있었다. 한때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공사였겠지만, 된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주저앉아 버린 택지 곳곳에 철근이며 철골이 박힌 채로 녹슬어 있었고, 딴에는 집을 짓는다고 기초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흔적으로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도처에 널부러져 있었다. 

중장비로 밀어서 돌로 축대를 쌓은 계단식의 택지는 어디에나 당연하게도 풀로 뒤덮여 있었다. 풀이란 당연히 여러 가지가 섞인 잡초였다. 그런데 잡초들 속에서 한 종류가 내 시선을 끌었다. 대구의 약령시장 구경을 갔을 때 보았던, 서울 청량리 약령시장에서도 보았던, 그리고 또 어디냐 하여튼 어딘가에서 보았던 약초 하나, 제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는, 그리하여 그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는 야관문, 그것들이 전쟁 뒤의 폐허처럼 황량해져 버린 택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얼래, 이게 뭐냐. 야관문인디, 이제 보니 여기가 야관문 천지네에.”

“야관문이 뭐이다요?”

“얼래, 그 이름도 못 들어봤냐? 밤야(夜)자에 뚫을관(貫), 문문(門). 밤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직역을 하자면 요런 것이여. 이름하여 천연비아그라. 알긋냐? 저기 어디냐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이후 가장 먼저 흙을 밀고 나온 것이 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요것, 야관문이라는 말도 있거든.”

그러자 양봉원 사장의 눈에 불이 붙었다.

“나도 말은 들어봤는디, 오호, 요것이 고것이여? 아 그러믄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제.”



# 사람 없는 분양사무소


양봉원 사장은 즉각 자동차로 돌아가서 낫을 들고 나왔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아하, 요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꿀은 이제 가망이 없고, 비아그라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천연비아그라를 생산해서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즉석에서 터져나온 거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야흐로 천연 비아그라 생산업자로 대번에 업종변경을 하기에 이르렀다.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여. 뭣도 모르고 돈, 돈, 하는 사람은 돈 못 벌어, 그러엄. 돈이란 놈이 어떤 놈이라고 아무한테나 함부로…….”

양봉원 사장이 낫을 휘둘러대며 키득거렸다. 그는 사실 돈 버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충청도 산골짜기에서 인구 이십만을 헤아리는, 바다도 있고 평야도 있고 온통 널따란 세상천지인 고창땅에 발을 디딘 이후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실속만 차리는 자린고비라는 말도 더러 듣기는 했지만, “겁나게 착실한 사람” 내지 “양심이 아주 바른 사람”으로 소문나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평판은 곧 그의 부로 귀결되었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고창에서 벌어들인 재산이 얼마인가는 그 자신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그의 재력은 탄탄했다. 벌꿀 하나만 보고 살아온 것은 물론 아니었다. 시장통에 아주 초라한 양봉원을 갖고 있는데 그 안에서 건강원도 겸했다. 고창의 특산품 복분자 수확 철이 되면 즙을 내고자 하는 사람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일손도 당연히 모자라서 시집간 딸내미에 사위에 가용 가능한 모든 친인척들이 달려들었다. 바로 옆의 건강원은 파리를 날리는 날에도 그의 건강원은 밤에도 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대체 어떻게 하길래 손님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것인가, 하고 물어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 폐허가 된 도로


“뭔가 효과가 제대로 있는 것을 연구해서 값싸게 내주는 거여. 옆에서 볼 때는 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을 연구하는 나한테는 암 것도 아닌 것이 아니제. 몇날며칠 몇 달 몇 밤씩 잠도 못 자고 연구한 것이란 말이거든. 바로 이것이 핵심이여. 나는 엄청시리 고생해서 만든 것이지만 아무한테도 그런 얘기를 안 하는 거. 얘기하면 그 순간부터 야 그거 대단한가 보다, 하고 게나 고둥이나 다 덤벼들거든. 아무 말도 안 하고 손님한테 기냥 팔기만 하믄 으떻게 되나. 알게 모르게 다 느끼거든. 야 이거 괜찮네, 다음에도 또 가야지, 하고 말이지. 이것이 중요하당께.”

돈을 버는 그의 비결이란 것은 그렇게도 간단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 것, 사물의 이치를 깊이 생각해서 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얄팍한 속임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등등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손해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그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단돈 일 원이라도 이익이 되었다.

그런 그가 연구했다는 것 중에 하나가 잡꿀이었다. 이 꽃 저 꽃 온갖 꽃들에서 나온 꿀을 복분자 즙에 혼합하는 방식, 단 그것을 어떻게 어느 시점에서 혼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이었다. 어쨌든 잡꿀에 대한 그의 철학은 명료했다. 사람들은 대개 잡꿀을 지저분하다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색깔도 탁하고 향기도 그리 썩 유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꿀은 아카시아 꿀인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카시아 꿀이야말로 가장 ‘하빠리’란다. 마-알갛게 보기 좋고 향기도 그럴싸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아카시아일 뿐이라는 것이다.

복분자 즙을 내서 먹는 사람들은 사실 여부야 어쨌든 그것이 양생술과 관련이 깊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꽤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다고 복분자 즙이 먹기에 편하거나 즐거운 것도 아니다. 전라도 말로 살짝 ‘껄쩍지근’한 맛을 내는 게 복분자 즙이다.

그런데도 즐겁다고,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먹어준다. 그렇다면 ‘꿀 중에 꿀 잡꿀’을 살짝 섞는다 해서 안 먹거나 못 먹을 이유가 없다. 일단 정기적으로 먹기만 한다면 뭔가 어느 쪽으로든 약발이 있을 것이다. 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요강을 깨든 난리를 치든 뭐를 하든 말이다. 양봉원 사장의 관심은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 야관문


그러니까 양봉원 사장의 천연비아그라 야관문에 대한 관점 또한 명확한 셈이었다.  복분자 즙을 짜러 오는 단골손님들에게 잡꿀을 섞어 먹였듯이 천연 비아그라 야관문을 섞어서 먹이겠다는 발상인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분해해서 복분자 즙에 섞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부터 그가 연구해야 할 과제일 터이었다. 그 대단한 프로 의식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우리는 그것을 채취해서 뭐에 쓰려 하는가? 한참 동안 부지런히 야관문을 뜯다 말고 우리는 불현듯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양봉원 사장이야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으니 판로가 벌써 열려 있다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물건을 만들어서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말인가. 아이고 모르겠다. 어쨌든 견물생심이다. 눈에 보이니까 일단 수집을 하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대안도 대책도 없이 야관문을 정신없이 채취했던 것인데, 그런데 불행일까, 다행일까, 다음날 새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하루에 끝내지 않고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하늘이 온통 구름에 덮인 채로 해를 넘겼다. 바야흐로 장마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야관문은 초벌 말리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맞고 그만 검게 변색이 되면서 희뿌연 곰팡이를 피워내다가는 썩어 버렸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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