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한반도 태풍의 핵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한반도가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향후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이 가장 큰 화두다.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착 여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후계체제를 공식화한 만큼 당장 이를 뒤흔들 급변적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김 위원장의 급사로 초래된 권력 공백 상황에서 파워엘리트 간의 권력암투가 벌어지면서 북한의 권력구도가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의위원장 맡았다는 것, 이상 없다는 얘기”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7일 갑작스럽게 사망함에 따라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착 여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지난해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기용되고, 대장 칭호를 받는 등 후계체제를 공식화한 만큼 당장 이를 뒤흔들 급변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 2년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서 권력 승계과정을 밟아온 만큼 앞으로도 이 기조에 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28일 열린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지 하루 만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등극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김정은을 후계자이자 3대 세습자임을 대내외에 공식화했다. 이후 북한은 각종 매체를 총동원해 김정은의 위상을 끌어올리기에 열을 올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수행단에서 서열 5, 6번째로 오르내리던 그의 이름은 이제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김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거론됐다. 조선중앙TV 등에는 김기남 최태복 비서 같은 원로 인사들이 깊이 허리를 숙여 김정은에게 인사하기도 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지난 1년간 북한 권력의 60∼70%가 김정은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아버지의 급사로 나머지 권력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이 ‘제왕학’ 수업을 착실히 밟았고, 지난 1년간 아버지의 후광과 핵심실세들의 지원으로 후계구도를 나름대로 공고화해 당분간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권력구조의 대대적인 재편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 중 하나는 군부세력의 쿠데타 가능성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권력핵심부의 진공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되겠지만 북한체제의 특성상 군부 주도의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당뿐만 아니라 군대와 공안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며 “국가안전보위부장 자리도 2009년 4월에 맡았다.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 군대의 군사지휘권은 당에 철저히 예속돼 있다. 총정치국은 국방위원회의 명을 받아 군내 정치활동을 직접 통제하는 당 집행기구이다. 총정치국장의 당내 서열은 국방위원장 다음인 제1부위원장으로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과 총참모장보다 높다.

6·25전쟁 이전까지 당과 군의 관계는 독립적이었다. 하지만 전후 ‘인민의 군대’는 ‘당의 군대’가 됐다. 군에 당 정치조직이 생기고 당에 군사기구가 생기면서 군 지도부가 당 주요 직책까지 겸임하고 있다. 당과 군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또 평소에도 군부가 사실상 국가통치에 동참하고 군부 핵심인사들이 당 중앙위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위원을 겸직하는 상황에서 군이 체제를 전복시킬 군사정변을 일으킬 확률은 낮다는 설명이다.

정 위원은 또 “북한에서 김정은을 포함해 232명 국가 장의위원회를 발표했는데, 김정은 이름이 맨 앞에 나온다. 장의위원장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장의위원장을 맡은 사람이 대개 권력 승계자가 된다”며 “김정은이 장의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은 권력 승계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안정적으로 갈 것이며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분석했다. 17일 북한은 김 위원장의 장례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을 가장 앞세운 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등 김정은을 보좌하는 핵심실세를 거명했다.

군, 전면에 나서고 싶은 유혹도…

반면 김 위원장의 급사로 초래된 권력 공백 상황에서 국정 경험 운영이 없는 김정은의 후계체제가 안착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북한 내 파워엘리트 간의 권력암투가 벌어지거나 ‘반김정일 세력’의 모종의 움직임이 표면화될 경우 앞으로 북한의 권력구도가 요동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북한 권력엘리트들이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갈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폭력적인 급변사태 및 붕괴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관건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을 두고 “어린 게 무슨 통치를 하느냐”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이런 불만이 폭발돼 ‘민중혁명’ 등이 일어날 경우 군부는 체제의 핵심가치와 지도체제 유지를 명분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 권력의 진공상태가 지속되면서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이 가중돼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악재가 재연될 경우 더는 당의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향후 북한 내 체제 불안의 수위가 높아질 경우 군부가 ‘거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당이 더 이상 국가통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위기사태가 계속될수록 군은 전면에 나서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지난해 김정은 후계그룹이 만들어졌는데 지금까지 발표문 내용을 보면 현재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도 “그러나 장례식 이후 양상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북한 내부 정세가 3대 세습이 안착될지, 권력투쟁이 일어날지에 대해 장례시기 이후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북한은 지금 북·미 사이에 만들어 놓은 틀을 이용해 북핵 6자회담으로 갈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김정은 후계그룹은 자기들의 정통성을 제도화하는 쪽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지만 아직은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선군정치’를 활용했지만 군을 중시한 통치방식이 불씨를 남긴 셈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일성은 생전에 권력 세습체제를 굳힌 뒤 군을 서서히 당에서 분리시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 반면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남용함으로써 군이 북한 체제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집단이 됐다는 설명이다.

조문단 보내야

북한이 남한, 미국과의 관계에 일시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겠지만, 조만간 일상적인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또 당분간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신중한 대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는 전문가들이 인식을 같이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상황을 북한 붕괴로 간주하고 위협을 가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우리로서는 북한이 어떤 상황에 있든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북한이 김정일 사망이라는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남북대화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설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권력구도가 안정되면 남북 구도는 나아질 수 있다”며 “김정은이 제도적으로는 대를 이어 군부를 통솔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만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가 후견그룹이 돼 당중앙군사위원회가 비상체제를 구성하면 중국 측에서 신속하게 군사적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움츠러드는 체제이므로 이 상황에서 군사 도발이나 쓸데없는 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일상적인 남북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정일 직계가족 내에서 내분이 생기지 않고 당과 군이 충성한다면 큰 변화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이제는 애도의 뜻을 표시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잘 이끌어가고 싶다면 이희호·권양숙 여사 등 정상회담 주체의 배우자들을 조문사절단으로 보내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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