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총도 없고, 동원할 조폭도 없는 바깥양반 열받다

익산떡이 죽을 뻔했다는 사건의 발단은 그렇게 해서 일어났다. 이 땅의 99%를 차지한다는 서민들의 싸움, 뭐 항상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익산떡 얘기 빌리자면 처음엔 말이 오갔다. 소리가 커졌다. 말투가 거칠어졌다. 이쯤되면 안봐도 그림이다. 말싸움은 자연 몸싸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쉼터 지키기 위해 가스통 들었던 불같은 성격의 익산떡 나선다. "이 사람이 하늘같은 내 남편을…!!" 겉으론 아니었겠지만 마음 속으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남 익산떡을 밀어버렸다. 불같고 억세다는 익산떡, 아무리 그래도 여자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연약한(?) 여자다. 길바닥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허리가 시멘트에 부딪혔고, "아이고, 나 죽네…" 소리가 나왔을 법하다.

안동 권씨 후손이라는 바깥양반이지만, 이쯤되면 열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재벌은 아들 두들겨 맞았다고 열 받아 조직폭력배에 총까지 동원했다. 두들겨 팼다. 몇 대 맞았다고 수십배로 갚았다. 경찰이고 법이고 필요 없었다. 사후 문제는 걱정할 것 없었다. 돈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돈에서 잉태된 권력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유치장 갔다. 유치장 나중에서야 가게 한 권력의 하수인들 줄줄이 사표 썼다.

"이 사람이 하늘같은 내 마누라를…!!" 겉으론 아니었겠지만 마음 속으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안동 권씨 바깥양반 돈 없다. 동원할 조직폭력배도 없다. 총도 없다. 돈으로 회유할 권력의 하수인들도 없다. 동원할 것이라곤 달랑 주먹 하나. 싸웠다. 다쳤다. 병원 갔다. 상대남도 갔고 익산떡도 갔다.

다음은 어찌됐을까. 돈 없는 서민들 싸움이었다. 그것도 시비를 건 쪽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양측 또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다. 이쯤 되면 결론 나온다.
 
화해했다. 병원비도 그럭저럭 해결했다. 그걸로 끝이다. 남은 건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픈 익산떡의 허리다.

"그때 머리 부딪쳤어봐…큰 일 나부렀제."

`죽을 뻔 했당게`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다행히 허리가 먼저 시멘트 바닥에 닿았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는 얘기다.

숭인동 길레스토랑 주변에선 한낮에도 이런 저런 소요가 일어난다. 때론 주먹이 오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뿐이다. 경찰 한 번 출동하는 법 없다. 그저 그렇게 싸우고 또 그저 그렇게 화해한다. 또 그렇게 살아간다. 그게 서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글: 정서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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