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상토론회 : 포스트 김정일 시대, 한반도는 어디로-1>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한반도가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향후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이 가장 큰 화두다. 김정은의 후계체제 안착 여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후계체제를 공식화한 만큼 당장 이를 뒤흔들 급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급사로 초래된 권력 공백 상황에서 파워엘리트 간의 권력암투가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북한의 권력구도가 요동칠 가능성은 미비해 보인다.
<위클리서울>은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가나다 순)과 가진 지상토론회에서 바야흐로 막이 오른 포스트 김정일 시대 북한 체제의 전환 과정을 조심스럽게 짚어봤다.
   




# 토론참석자: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가나다 순)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후계 체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 고유환(이하 고) :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함으로써 무엇보다 김정일에 비해 후계 구축 기간이 짧은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북한은 오랜 기간 김일성 가계 중심의 유일체제를 구축해 왔기 때문에 김정일 사후 곧바로 ‘야심가’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분간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존의 ‘군사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후계가 공고화될 때까지 위기관리체제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을 곧바로 다음 지도자로 내세울지, 아니면 과도체제를 유지하면서 후계체제를 준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장의위원 명단에 김정은을 수위로 내세운 것을 볼 때 김정은이 후계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곧바로 최고지도자로 추대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김일성 주석 사후 북한은 3년상을 치른 이후 당과 국가의 최고 직위를 김정일에게 이양한 전례가 있다. 김정은을 곧바로 최고지도자로 내세우지 않을 경우 ‘김정은 후견체제’ 형태로 친인척과 측근 군부세력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20대 후반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은으로의 후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김정일 시대처럼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강조하면서 과거 지향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가계라는 것만으로는 통치하기는 어렵다.
▲ 문정인(이하 문) : 김정은은 현재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인민군 대장 칭호까지 받았다. 서열에 관계없이 후계구도에 들어섰다. 3중의 후계구도가 있다. 장성택(고모부)과 김경희(고모)라는 가족 중심의 후견세력이 있다. 조선노동당 중심의 국가운영체제가 지지하고 있으며 군부의 단결과 충성은 변함이 없다. 단기적으로는 큰 일이 없을 것이다.
▲ 양무진(이하 양) :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북한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 사망이 발표된 지난 달 19일 하루 동안 이에 대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인지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씁쓸한 웃음이 나오게 하는 대목이다.
막상 김 위원장이 사망하고 보니 어떤 이들의 희망과는 달리 지금 당장 북한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많은 전문가들은 앞다퉈 김정은의 단지 28살이라는 나이와 2년 남짓한 짧은 후계수업 기간을 내세워가며 권력승계의 불안과 이에 따른 혼란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일성이 죽고 난 후 한 북한학 관련 교수가 5년 내에 북한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의 지도에 존재한다면 교수직을 그만두겠다고 호언장담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마치 그 당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했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정성장(이하 정) : 김정일은 주변인들에 대해 자상한 태도를 보여 왔으나 죽기 전까지 의사들의 규칙적인 생활 권고에도 부담스럽다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요한 정책의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서 초조한 모습을 보이는 등 측근들은 이미 건강회복이 가능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은 이미 북한에서 군대를 지도할 수 있는 핵심 직책을 맡고 있으며 평화체제 구축을 비롯해 북?미 및 남북관계 개선, 경제개혁과 개방, 인민생활과 관련된 경제정책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 체제가 견고했던 것이다.
다만 북한 체제가 일정기간 혼돈 속에서 강경기류로 흐를 수도 있다.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더라도 군대에 대한 장악력이 약하기 때문에 비핵화에 부정적인 군부의 입장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선 군대의 지지가 필수적이므로 군부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이 대외적으로 강경한 군부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경우에 따라 본인을 ‘담대한 군사의 영재’로 내세우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킬 수도 있다.

- 김정은의 권력 장악,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판단하나.
▲ 문 : 김정은이 젊은 나이여서 우려가 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이라는 정통성도 없고, 김정일의 카리스마에도 못 미칠 수 있다. 북한 헌법 자체가 김일성의 나라로 규정하고, 모든 힘은 백두혈통에서 나온다. 김 씨 가문에서 권력을 잡지 않으면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고 지배층이 모두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 결국 김정은 이외에 대안이 없다. 북한 나름의 시스템이 있다. 정치국 위원들 중 군대는 리영호가, 외교와 핵문제는 강석주가, 대남관계는 김양건이, 경제는 홍석형?최영림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중요정책은 기존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 정 : 김정일 위원장 생존시 장성택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 그에게 대장 계급을 수여하지 않았는데, 지난 달 24일부터 김정은이 ‘당 총비서’ 직과 ‘군 최고사령관’ 직을 사실상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될 정도로 김정은이 전체권력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상황이다.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 과정에서 초기에 중심적 역할을 한 고모부 장성택에 대해서는 적절한 배려를 할 필요가 있어 대장직을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 양 : 군대가 상당히 중요한 위상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책만 가지고도 당 전반을 이끌어 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게 볼 수가 있다. 여기에 고모부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권력 승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장성택은 공안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부장도 맡고 있는데다, 측근들이 대거 권력 핵심부에 진출해 있어 김정은에게 권력을 순순히 넘겨줄 지는 미지수다. 또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20년 동안 차근차근 권력을 장악해온 김정일에 비해 김정은은 2년 반 만에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점도 권력 장악에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 북한의 권력 중추를 담당하는 부서들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는데.
▲ 문 : 국방위 비중이 약화되고 당 중앙군사위 위상은 올라가는 듯하다. 국방위가 강해진 것은 선군정치라는 구호 때문이었다. 강성국가는 핵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포함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선군이 아니라 선경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당과 내각에 힘이 실려야 한다. 국방위 위상이 재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정통성을 갖기 위해 인민의 경제생활을 향상시켜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 관성과 새로운 제도 사이에서 고민할 것 같다. 경제를 향상시키려면 원조와 투자가 들어와야 한다. 핵문제 양보가 불가피하다. 군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김정은이 어떤 결단력을 보이느냐가 문제다.
김정일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난 이후 태국과 스웨덴의 입헌 군주국에 많은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 태국은 군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으면서 왕권을 수호한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실질적으로 왕권 세습국가이다. 주변국들이 불확실성을 원치 않기 때문에 3대 세습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정 : 국방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총정치국, 북한의 군 관련 조직들이다. 각기 어떤 역할과 기능이 겹치면서 혼선을 주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국방위와 당 중앙군사위, 총참모부와 인민무력부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민군 지도기관은 현재 헌법에서는 국방위원회로, 당 규약에서는 중앙군사위원회로 규정돼 있다. 국방위는 선군정치의 핵심기구로 평가받는다.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국방위 인사는 국가기구에 대한 결정을 의결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한다.
당 중앙군사위는 지난해 9월 당 대표자회의에서 후계자 김정은이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후계체제의 핵심조직으로 떠올랐다. 그 전까지 구체적인 활동이 알려져 있지 않아 국방위에 밀려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평가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 중앙군사위의 결정 중에는 대외적으로 보안에 부쳐지는 군사기밀이 많아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실상 군사 분야에서는 국방위보다 영향력이 있다. 실질적으로 군사작전 및 훈련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조직이다.

- 향후 북의 대외관계의 변화 가능성도 관심을 모으는 부분이다.
▲ 고 : 내부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외관계 확장이다. 외부로부터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이 6자회담과 남북대화 재개를 재촉했던 것도 제재 등으로 막힌 대외관계를 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보듯 김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미 핵협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3차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김정일 사망이란 돌발변수가 생겼지만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 생존의 중심 고리는 중국의 후원과 함께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푸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체제와 정권유지 차원에서 북?미 협상을 적극 모색할 것이다.
▲ 양 : 지금 북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을 대신할 수 없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에서는 이미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이해관계와 계산법이 다르겠지만 대부분 국가도 김정은의 승계를 받아들이고 안정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도 일단 김정은 체제를 3대 세습이라는 도덕이나 규범과는 구분해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과 안정을 대비함이 마땅하다.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지금의 한반도 주변 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이 더욱 증대됐지만 실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분명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의 호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동북아 안보판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상위에 미·중 관계가 있고, 그 아래 북·미관계와 북·중 관계, 그리고 가장 최하위에 남북관계가 있다는 점은 무척 안타깝다.
<위의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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